카테고리 보관물: 감상/보고

“화이트 타이거” (2021)

인도 빈민층 청년이 학대 받던 시골에서 벗어나 도시에 올라와 부잣집 도련님 밑에서 일하다 온갖 부당함을 보고 겪으며 결국 환멸을 느끼고 도망쳐 원하던 자유를 찾는 내용.

이라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에는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주인공 발람은 자신이 닭장 안 노예임을 깨달은 자이기는 하나 그 뿌리는 이기심에 있고 탈출구는 범죄 밖에 없으며 처음엔 순진해 뵈는 도련님 아쇽은 위선이란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고 인도계 미국인인 핑키 역시 미국인의 해맑음이라는 게 어떤 건지 드러내고 있어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어쨌든 머리로는 모든 이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설득력이 있다는 점에서 쉬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영화였다. 인도라는 특성이 있음에도 “기생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빈부와 계급 격차가 왜 시대 정신인지도 알 것 같다. 인간은 정말 끊임없이 가르고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구나.

주인공이 우러러보는 백호는 결국 우리에 갇혀 끊임없이 어슬렁거리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동물일 뿐이고 시스템이 거기 있는 한 아무도 탈출하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에 모여 있는 운전사들은 무수한 창살에 불과하고.

계속해서 썩어 들어가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볼 때마다 과연 현재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불안한 동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시각각 봉건제로 되돌아가고 있는 징후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바비(2023)

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온건하게 나와서 조금 다른 의미로 놀란 케이스.
모범적인 길을 택했구나 싶고.

난 어렸을 때 바비라는 인형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우리 땐 이런 형태의 인형을 전부 “마루인형”이라고 불렀으니까.
심지어 내 주위에선 이런 인간형 인형을 가진 친구들이 거의 없었고(부잣집 애들만 가질 수 있었지, 사실) 나는 종이 인형 파였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이 그렇듯이
존재와 해석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라고밖엔 할 수 없는 존재를
어찌 보면 한물 간 – 성별 반전 세계 –  소재와 결합시켰으니
아무래도 ‘영화 자체’보다는 메시지에 집중할 수 밖에 없긴 하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인간들이 많다는 것도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것도 많이 서럽고.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못 알아듣는 인간들이 많다는 게 최악이겠지.

모두가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생글생글 웃는 분홍색 화면 속에서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농담이 나올 때마다 통쾌하면서도 영화가 끝나 환상이 깨진 바비월드처럼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면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몇 년 전 넷플에서 “우리가 사랑한 장난감” 바비 편을 봤기에 거기서 얻은 배경 지식이 영화를 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걸 먼저 보고 가는 걸 추천.

“엘리멘탈”(2023)

원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유니버스”를 볼 예정이었는데
극장을 착각하는 바람에 예매를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ㅠ.ㅠ
그래도 엘리멘탈도 원래 보고 싶었던 영화였으니까.

오랜만에 본 디즈니/픽사 작품인데, 이민자 서사라는 정보를 꽤 많이 주워들어서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었던 상태.

나도 이미 나이가 들었고, 저 시기는 꽤 오래 전에 지났다고 생각하건만
그럼에도 소리 없이 사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이 영화.
정신 차리고 보니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고. (웨이드만큼은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착한 딸을 위해서.

그러고 보니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사춘기 때 반항하지 못했던 메이의 분노가 성인이 된 후 엠버처럼 폭발하게 되는 거겠지. 동양인 여성의 억눌린 감정이란.

책상 앞에서 일하다 보니 영화를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컴퓨터로 보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넷플릭스에서도 중간에 보다 만 영화만 쌓여 있고.
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할텐데.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2023)

지나가다 예고편을 보고 유쾌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평이 좋아서 기분전환 삼아 보러 갔다.

RPG는 딱 한번 어떤 식인지 친구들과 한번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딱 평범한 판타지 독자의 정도의 지식만 있는 편. D&D 설정은 그저 단어들만 몇 개 알고 있는 정도고.

영화는 재미있는 가족용 판타지 영화로 기분 좋게 즐기고 나올 정도.
유머가 꽤 유쾌하고 딱히 크게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도 나쁘지 않고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는 사람이라면 중간중간 나오는 설정들도 작품 내에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고. 실제 D&D를 해본 사람들 감상은 굉장히 호평이라고 한다. 그 기분을 조금은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난 겨우 직업적 특성이 강조되는 부분만 알아볼 수 있어서. 모든 설정을 알고 있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 주사위 굴리는 타이밍도 ㅋㅋ

다만 복식과 크리쳐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울베어 기괴해서 너무 좋아!!!! 뚱뚱한 드래곤 최고야~!!!!!!!!!

그리고 휴 그랜트 씨는 아예 이쪽으로 전향한 거냐고.
사기꾼 전문배우가 되어가고 있잖아!
(사기꾼은 매력 수치가 높구나. 처음 알았어. 영화 본 사람 중 누군가는 캐릭터 시트 만들어놨을 거 같다. 캬캬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