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보관물: lukesky

이제야 좀 패닉에서 벗어나서

콩쥐가 연속 사흘 동안 구토가 심해서
– 평소에도 심하긴 하지만 마지막 날은 정말 밤새도록 토해서 –
화요일에 동물병원에 다녀왔는데
신장수치가 최악이 나왔습니다. 기계 측정한도를 넘어선 최고치를 기록했어요.

안그래도 만성신부전이라 콩팥이 하나 밖에 없는 상태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일단 입원을 시켰는데
콩쥐는 사람도, 낯선 환경도 극도로 싫어하거든요.
이틀간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화장실도 사용하지 않고 몸을 적시고,
사료는 입도 대지 않고,
치료가 불가하다고 판단,
제가 직접 피하주사를 놓기로 하고 집으로 데려왔어요.

집에서는 좀 진정이 되었는지 화장실도 사용하는데
여전히 입맛은 돌지 않고 억지로 주사기로 적은 양이나마 습식사료를 주입 중입니다.
활력도 확실히 줄었고요.
오후에는 늘 밑으로 내려와서 일하는 저를 붙잡고 놀아달라 찡찡거렸는데
오늘은 화장실 갈 때 말고는 내려오지 않는군요.

올해 초만 하더라도 나름 안정적인 수치를 유지 중이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집에 돌아온 뒤에 평소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역으로 생각하면 평소에도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닌가도 싶습니다.

저도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되긴 했는데
이틀 동안 병원에서 수액을 맞았어도 수치는 조금 도 변화가 없고….
조금 장기전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 남은 신장 하나도 망가져서 최악의 예후가 될 각오도 해두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일단 12월 말에 예정되어 있던 스타워즈 관련 행사를 전부 취소했어요.
– 흑흑 대만에 가서 에피 9을 보려고 했는데 ㅠㅠ 결국 한국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3주일이나 늦은 1월 8일 개봉이더군요.
콩쥐도 미오도 나이가 있다 보니 이번 여행이 앞으로 오랫동안 마지막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 마지막마저 불가능하게 되었군요.
더욱 걱정스러운 건 제가 내년 언젠가는 허리 재시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소 사흘, 최장 일주일은 자리를 비워야할 것 같은데
콩쥐에게 약을 먹일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콩쥐가 지금 고비부터 넘기는 게 급선무겠지요.
나중 일은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죠.

아, 제발 내일 검사에서는 조금이라도 수치가 나아졌으면. ㅠ.ㅠ

“나이브스 아웃” (2019)

오랜만에 극장행.

원체 크리스티 류의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제작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궁금했던 작품인데
기대만큼 잘 나왔다.

이른바 대저택 추리물의 배경을 미국으로 옮기고
시대에 뒤떨어진 듯 보이는 탐정을 – 지독한 남부사투리 때문에 외부인으로 보이는 – 가져다놓고는
익숙한 플롯의 앙상블 추리물, 나아가 스릴러물을 만들어놨는데
그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메시지 자체가 워낙 노골적이고
천연덕스러워서 웃느라고 죽는 줄 알았어.

보는 내내 라이언 존슨 이렇게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어서 자기 욕하던 애들 대놓고 비웃어도 되냐!! 키득거리느라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니 범인을 초반에 밝혀서 방향을 틀어버린 게 아주 유효한 전략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그게 아니다보니.
라스트 제다이가 이 감독한테는 경력에 있어서나 개인적인 배짱에 있어서나 좋은 쪽으로 작용했네 싶어.

다만 탐정이 눈에 띄는 듯 안 띄는 듯 하다가 활약을 하긴 하는데
여전히 별로 안 어울리는 자리에 앉아 있는 듯이 보인다.
혼자만 이질적인 조각이라 – 심지어 경찰도 적절해 보이는데
그가 영화 밖에 따로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알겠다만
문득문득 과장이 좀 심해서 이입을 방해해.

주인공인 아나 데 아르마스 배우가 인상적이었고
토니 콜레트에게 저런 역할이라니 정말 미쳤나봐, 낄낄낄
등장할 때마다 진짜 웃겨 죽는 줄 알았어.
크리스토퍼 플로머와 프랭크 오즈가 아직도 저렇게 정정하다는 게 내 눈으로 보면서도 좀 믿기지 않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크리스 에반스는 역시 이런 역이 적격이지.

사장을 죽이고 싶나

 솔직히 정말 아무 정보도 없이 집어든지라 중국발 추리소설이라는 것도 몰랐다.
추리소설로서의 기본 트릭은 일본 쪽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 기저에 아마도 작가의 전문분야인 듯한 제1세계와 중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깃들어 있고, 거기에 고전적인 반전도 있어 굉장히 현대적? 아니야, 국제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여하튼 이제 정말로 많은 것들이 섞이고 있다는 걸 체감하겠다.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현실의 나와는 거리가 먼 배경과 더불어 이 장르를 일종의 판타지와 비슷하게 인식하는데, 이 작품은 트릭은 판타지지만 배경 자체는 서구권 작품들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다보니 가끔 그 양 경계를 넘다들 때 괴리감이 조금씩 느껴진다. 하나로 녹아들어가 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가 아직은 이질적으로 섞여 있는 느낌.

그렇지만 충분히 재미있었고, 궁금해서 순식간에 읽어치웠다. 제목이 다른 문장형이었다면 더 어울렸을 것 같은데.

토피아 단편선

유토피아 편을 먼저 읽었는데, 디스토피아를 그리기 위해 유토피아를 그릴 필요는 없지만 유토피아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디스토피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굳이 두 주제로 나눌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무엇보다 둘 다 결국에는 벗어나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반대로 디스토피아 편이 더 희망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흥미로웠고.

유토피아 편에서는 김초엽 작가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가 가장 좋았고, 가장 주제에 근접한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 디스토피아 쪽이 작가들도 더 편하게 쓴 것 같아서 나 자신도 더 몰입해 읽었는데, 가장 취향에 맞는 걸 꼽으라면 정도경 작가의 ‘너의 유토피아’였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