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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스 아웃” (2019)

오랜만에 극장행.

원체 크리스티 류의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제작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궁금했던 작품인데
기대만큼 잘 나왔다.

이른바 대저택 추리물의 배경을 미국으로 옮기고
시대에 뒤떨어진 듯 보이는 탐정을 – 지독한 남부사투리 때문에 외부인으로 보이는 – 가져다놓고는
익숙한 플롯의 앙상블 추리물, 나아가 스릴러물을 만들어놨는데
그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메시지 자체가 워낙 노골적이고
천연덕스러워서 웃느라고 죽는 줄 알았어.

보는 내내 라이언 존슨 이렇게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어서 자기 욕하던 애들 대놓고 비웃어도 되냐!! 키득거리느라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니 범인을 초반에 밝혀서 방향을 틀어버린 게 아주 유효한 전략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그게 아니다보니.
라스트 제다이가 이 감독한테는 경력에 있어서나 개인적인 배짱에 있어서나 좋은 쪽으로 작용했네 싶어.

다만 탐정이 눈에 띄는 듯 안 띄는 듯 하다가 활약을 하긴 하는데
여전히 별로 안 어울리는 자리에 앉아 있는 듯이 보인다.
혼자만 이질적인 조각이라 – 심지어 경찰도 적절해 보이는데
그가 영화 밖에 따로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알겠다만
문득문득 과장이 좀 심해서 이입을 방해해.

주인공인 아나 데 아르마스 배우가 인상적이었고
토니 콜레트에게 저런 역할이라니 정말 미쳤나봐, 낄낄낄
등장할 때마다 진짜 웃겨 죽는 줄 알았어.
크리스토퍼 플로머와 프랭크 오즈가 아직도 저렇게 정정하다는 게 내 눈으로 보면서도 좀 믿기지 않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크리스 에반스는 역시 이런 역이 적격이지.

사장을 죽이고 싶나

 솔직히 정말 아무 정보도 없이 집어든지라 중국발 추리소설이라는 것도 몰랐다.
추리소설로서의 기본 트릭은 일본 쪽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 기저에 아마도 작가의 전문분야인 듯한 제1세계와 중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깃들어 있고, 거기에 고전적인 반전도 있어 굉장히 현대적? 아니야, 국제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여하튼 이제 정말로 많은 것들이 섞이고 있다는 걸 체감하겠다.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현실의 나와는 거리가 먼 배경과 더불어 이 장르를 일종의 판타지와 비슷하게 인식하는데, 이 작품은 트릭은 판타지지만 배경 자체는 서구권 작품들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다보니 가끔 그 양 경계를 넘다들 때 괴리감이 조금씩 느껴진다. 하나로 녹아들어가 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가 아직은 이질적으로 섞여 있는 느낌.

그렇지만 충분히 재미있었고, 궁금해서 순식간에 읽어치웠다. 제목이 다른 문장형이었다면 더 어울렸을 것 같은데.

토피아 단편선

유토피아 편을 먼저 읽었는데, 디스토피아를 그리기 위해 유토피아를 그릴 필요는 없지만 유토피아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디스토피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굳이 두 주제로 나눌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무엇보다 둘 다 결국에는 벗어나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반대로 디스토피아 편이 더 희망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흥미로웠고.

유토피아 편에서는 김초엽 작가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가 가장 좋았고, 가장 주제에 근접한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 디스토피아 쪽이 작가들도 더 편하게 쓴 것 같아서 나 자신도 더 몰입해 읽었는데, 가장 취향에 맞는 걸 꼽으라면 정도경 작가의 ‘너의 유토피아’였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역시 애매해

스티븐 킹의 “자정 4분 뒤” 중편집을 읽고.

거참, 킹은 묘하게 안 맞는 듯 한 작가란 말이야.
필립 K. 딕은 내용 자체는 가물가물하더라도 적어도 핵심적인 대목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데
스티븐 킹은 이미 읽은 작품들도 강렬한 이미지 없이 두리뭉실한 스토리만 남아 있어.
처음과 중반 그리고 종반까지도 한참 몰두해서 흥미진진 속도감있게 읽다가도
결말이 늘 시시해서
앞부분까지 다 잡아먹어 버리는 느낌.
덕분에 책을 덮고 나면 다 까먹어 버리네.

그래도 “악몽과 몽상”은 읽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