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

“케이팝 데몬 헌터스” (2025)

처음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는 불안했고
트레일러가 나왔을 때는 기대치가 좀 올라갔는데

이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고 유쾌했다. 진심 즐거웠어.

게다가 어떤 식으로 케이팝을 접목시킬 거지? 했더니,
뮤직비디오 형식의 뮤지컬 영화를 만들었어!

케이팝의 가장 무서운 점이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의 짜깁기’인데 그마저도 그대로 연상시켜서 훌륭하다. 솔직히 디자인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노래들이 하나같이 잘 뽑혀서 뮤지컬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매우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표. 난 요즘 나오는 아이돌 노래들을 안 좋아하거든. 장르를 조각조각 해체해서 뜬금없이 여기저기 붙여놓은 느낌이라서. 적어도 이 영화에 삽입된 노래들은 전통적인 팝의 전통을 어느 정도 잇고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이 있는데다 이야기의 진행과도 찰떡같이 연결된다.

한국적인 감성을 과하지 않게 접목시켰다. “소다팝”에서는 공감성수치를 느끼긴 했지만 (캬캬캬캬캬캬캬) 나머지 부분은 이제까지 다른 나라에서 다룬 한국 묘사에 있어 가장 어색하지 않고 훌륭한 것 같아. 역시 보여주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듯.

일단 영어판으로 봤는데 진우 성우가 한국 배우라고 해서 놀랐다. 배우인데 더빙을 잘하잖아!!! 감동이로세. 그리고 영어판이 오리지널이기 때문인지 더빙도 좋았어. 크레딧을 보니 정말 한국계 총출동에 호화판이던데.  영화가 꽤 마음에 들어서 시간이 나면 한국판도 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까치와 호랭이 최고야. 솔직히 이 둘의 영상을 보고 영화를 틀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 우아앙, 너무나 사랑스러워. 엉엉엉

“댐즐” (2024)

가난한 나라의 공주님이 머나먼 부자나라 왕자님의 청혼을 받고 가족과 함께 혼인식을 치르러갔으나 실은 용의 제물이 되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오, 재미있었다.
고전적인 동화 비틀기일뿐만 아니라
화면이 화려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혼례복 입는 장면이 너무너무 내 취향이라 즐거웠는데 나중에 단순히 눈의 즐거움을 위한 게 아니라 스토리적으로 이유가 있음을 보여주는 게 좋았어.

아버지의 등장이 내게는 꽤나 반전이었는데, 비록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뒤늦게 뉘우치긴 해도 사실을 알면서 딸을 팔아 넘겼다는 점에서 동화의 탈을 쓴 이 스토리 안에서는 그런 결말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납득했다. 새엄마의 캐릭터도 좋았어. 특히 ‘밧줄 장인의 딸’이라는 세세한 설정이 붙어 있는 부분으로 두 집안의 차이를 뚜렷하게 확인시켜주었고.

내 기억속의 밀리 바비 브라운은 어린아이였는데, 이젠 정말 다 컸구나.
하기야, 난 스칼렛 요한슨도 축구 영화로 처음 접했기에 그가 섹스심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

….밀리 바비 제발 스타워즈 성인 레이아 공주 역할로 영화 하나만 찍어주면 안 될까. ㅠㅠㅠㅠㅠㅠ

하이 포텐셜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온 범죄수사물.
프랑스 드라마 리메이크작이라고 한다.

굉장히 빼어난 지능과 인지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나
평소 소소한 직장을 전전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주인공이
경찰서 청소부로 일하던 중 우연히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지적한 일을 계기로
수사 자문으로 발탁되어 진행되는 이야기.

이런 수사물이 너무 오랜만이라 대단히 반가웠다.
미국 내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한 것도 있지만
OTT 시대로 오면서 이런 옴니버스 류 수사물이 대거로 줄어서 아쉬웠는데
오랜만에 빈 자리를 채워주었어.

뭐, 능력은 뛰어난데 성격적인 결함이 있다, 는 건 수사물 주인공의 클리셰인데 그보다도 주인공이 애 셋을 키우는 싱글맘이라는 사실이 독특하다. 생각보다 성격도 상당히 무난하다. 처음에는 어딘가 괴팍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 것 같으나 두 화만 정도만 지나도 본인이 예민한 인지능력으로 고생한다는 점만 빼면 아이 셋을 키우면서 참을성도 꽤 강하고, 이해심도 있고, 다른 작품들의 반사회성 주인공들과 달리 사회성도 좋고 사교성도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클로저”의 브랜다 리 존슨이 더 독특한 편이었지. (으앙, 너무 좋아 ㅠㅠㅠㅠ 왜 얘는 OTT에도 안 들어와 있는 거야….ㅠ.ㅠ 가끔 “클로저”랑 “메이저 크라임스”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단 말야. 왜 없는데 ㅠㅠㅠㅠㅠㅠㅠ)

파일럿 이후 캐릭터를 개성적으로 밀고 가지 못하고 처음부터 아예 ‘착한 드라마’로 노선을 잡은 걸로 보인다. 실제로 수사물의 질로 따지자면 절반 정도의 에피소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데… 2시즌도 아니고 1시즌 13화짜리 작품이 벌써부터 이러면 조금 문제가 있다. 작가진의 능력 부족인 건지, 아니면 2시즌에 가서야 자리를 잡을 건지.

대신 캐러덱과 소토를 비롯해 오즈와 대프니까지 팀원들은 모두 귀여워서 마음에 들어.
그게 참 장점과 단점이 현저하게 존재하는지라 이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렵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니까.

중국 여성 SF 걸작선

사놓기만 하고 미뤄뒀던 책과 영상들을 해치우는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도망가는 별”, “우주 끝 네스토랑”, “평형 공식”.
“도룡”은 중간에 내용을 짐작했음에도 취향인 내용이라 흥미진진했고 “얼굴없는 여자아이 연화”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괴담이나 설화의 형식을 띠고 있는 작품들이 많은데 편집자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중국적인 색채를 지닌 작품들을 선별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듯 하다. 민간설화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하고, 괴담은 그것과 곧장 이어지니까.

읽으면서 작품 외적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나 개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나는 한국에 아직 중국과 일본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으나 동시에 서구세계를 지향하던 시기에 성장한 사람으로서 자의와 취향에 따라 후자의 문화를 선택한 인간이라 첫 몇 편을 읽기까지 이 분위기에 선뜻 익숙해지지 못했다. 일본만 해도 문화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중국은 일단 문화고 역사고 너무 방대하여 고대 신화라고 해봤자 기초적인 것밖에 알지 못하고 고전 쪽은 완전히 문외한이다 보니 자주 등장하는 주석이 반갑지 그지 없었다. 하기야 접한 총량이 다르니 영미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용이나 레퍼런스를 지금 수준으로 당연하게 여기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나마 중국은 우리와 역사적으로 깊이 얽힌 나라인지라 이런 생각이라도 하는 것이겠지. 같은 한자문화권이고, 서양문화보다 친숙하며,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우리와의 국제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솔직히 남미 문학을 읽을 때는 비슷하게 낯설면서도 여기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여성 및 논바이너리 작가들의 작품 모음집인데, 작품 자체들이 낯설다 보니 작가들에 대해 자세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그 때문에 주인공이 주로 여성일 것이라 예상했으나 생각 외로 소년이 많이 등장했다는 정도. 중국 문학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오히려 남성을 대변하게 되었다는 편집자의 해설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어쩌면 그것과 관련이 있다고도 볼 수 있을까.

여하튼 지금의 중국은 처음 개방하던 시기, 내가 기억하던 중국이 아니고 오히려 멀어진 느낌이기에 그래서 더 많이 접해보고 싶다. 궁금하잖아. 너무 궁금해. 언정소설이라도 많이 읽어봐야 하나. 그치만…그치만 길어!! 누가 중국 작가들 아니랄까봐 다들 길다고 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