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굉장히 독특한 영화다.

원작이 있다고 들었는데,
설마 원작은 영화와 다른 분위기겠지?
아무리 블랙 유머와 비아냥이 넘치는 도메스틱 스릴러라도 내용상 이런 분위기는 아닐 것 같은데.

감독이 천재거나 또라이가 아닐까.
페이그 감독의 작품을 몇 개 전에도 봤지만 정말 특기 하나는 기가 막히네.

영화 자체의 톤과 그 안에 담긴 내용의 괴리감이 굉장한데
그럼에도 굉장히 잘 엮어내서
영화 전체가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반응을 의도적으로 끌어내고 있는데도
순간순간의 위트에 그 머뭇거리는 감정적 어색함을 금세 잊어버리고 허탈한 반응을 하게 된다.
심각해지는 순간 치고 들어오는 유머감각이 인물들에 대한 의심을 자꾸 거두게 만들어서
끊임없이 나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배우들이 그만큼 뻔뻔해.
안나 켄드릭 정말… 그 순진함 속에서도 끝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의뭉스러움을 거두지 않고 있어서 좀 감탄스럽고.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이름만 들은 배우인데 정장 입은 모습에 정말 반하겠다.

신년을 이 영화로 열다니.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블랙미러 시리즈는 사실 본 적이 없는데
넷플릭스에서 인터랙티브 영화를 내놓았다고 해서 호기심이 동하는 바람에.

웹버전에서는 실행 불가, 전화기나 타블렛 등 휴대용 기기에서만 탭으로만 실행이 가능하다.

초반에 보면서도 이렇게 분기점마다 관객이 선택할 수 있다면 실질적으로 게임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실제로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고, 잘못된 선택지를 택하면 끊임없이 앞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관객의 선택을 몇 가지로 한정해 유도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엔딩을 세 개 봤는데 아마 총 대여섯 개 쯤 있을 것 같고 그 외 크게 호기심이 일진 않아서 다 찾아보진 않았다. 그 외의 다른 엔딩들에 ‘이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가 설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영화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고전적인 엔딩이 있는가 하면,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넷플릭스 엔딩도 있다. 일부러 피해가려고 노력했는데, ㅋㅋ 나머지가 하도 정석의 길을 걷다 보니 오히려 그 결말이 제일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영화에서 이런 형식을 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라 이런 것도 있구나, 라고 경험한 것으로만 만족한다. 관객이 참여하는 이 같은 형태는 이미 게임에서 숱하게 다루고 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형식은 오히려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현실감을 주입시키는 감이 있다. 실제로 이 영상 자체도 조금 어수선하고, 같은 내용을 다시 봐야한다는 점에서 외려 시간낭비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역시 구식인가봐.

범블비(2018)

트랜스포머는 2편까지 보고는 말았다.
아니, 3편은 봤는지 안 봤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


프리퀄이지만 동시에 소품과도 같은 영화고
영화 전체의 규모는 작지만 의외로 전투장면이 꽤 들어 있어서 그게 더 놀라울 지경.
무엇보다 범블비와 다른 디셉티콘 기체들의 변신 장면을 쉴새없이 넣어주어서
부품들이 움직이는 걸 볼 때마다 부족했던 기계 분을 채워준다.
그것만으로도 좋았어.

내용도 그렇고 무엇보다 시대적 배경이 80년대인지라
아무래도 ET를 많이 연상시키는데다
인물들마저 그 시대를 반영했다기보다는
우리가 보고 자란 그 시절의 영화를 반영했다는 느낌이 물씬 난다.
찰리의 가족과 동생과 옆집 남자아이를 그리는 방식 전체가 그런데
그런데 그 중심이 소년이 아니라 소녀이고,
소녀의 관점에서 그릴 때에는 무엇이 다른지 “우린 아직 그런 사이 아냐”에서 특히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범블비와 찰리의 사랑스러움이 실질적으로 영화의 모든 걸 차지한다.
라디오로 소통하는 부분은 언제봐도 재미있지.
액션영화라기보다는 크리스마스 가족영화.
마지막에 자신의 손으로 고쳐낸 근사한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찰리가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