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

“여자들의 왕”

기대와는 조금 달랐는데, 모험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전부 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다지 전복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고, 다만 첫 번째 연작은 처음에 흔한 소재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진행될수록 결말이 어디로 흘러갈지 잘 보이지 않아 흥미롭게 충격적이었다. 역시 공포 쪽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이 나 역시 어릴 적 아버지께 “네가 커서 우리 집안 이야기를 쓰면 좋을 텐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가족묘에 갔다가 전쟁이 끝나고 가세가 기울어 결국에는 집안에서 일하던 사람에게 조각조각 넘어갔다는 옛 집터를 앞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한참 후 머리가 좀 굵어졌을 때, 참 아이러니한 말씀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대가족의 막내이고 나 역시 그런 아버지의 늦둥이 막내이기에. 아마도 우리는 직접 겪은 것보다 옆에서 피상적인 부분만 보거나 귀로 들은 것이 더 많은 이들일 것이라. 그래, 어쩌면 그런 입장이 더욱 자유로울 수는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정말 금세 후루룩 읽었다. 요즘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아 이렇게 매끄럽게 책장이 넘어간 게 얼마 만인지.

 

“엘리멘탈”(2023)

원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유니버스”를 볼 예정이었는데
극장을 착각하는 바람에 예매를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ㅠ.ㅠ
그래도 엘리멘탈도 원래 보고 싶었던 영화였으니까.

오랜만에 본 디즈니/픽사 작품인데, 이민자 서사라는 정보를 꽤 많이 주워들어서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었던 상태.

나도 이미 나이가 들었고, 저 시기는 꽤 오래 전에 지났다고 생각하건만
그럼에도 소리 없이 사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이 영화.
정신 차리고 보니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고. (웨이드만큼은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착한 딸을 위해서.

그러고 보니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사춘기 때 반항하지 못했던 메이의 분노가 성인이 된 후 엠버처럼 폭발하게 되는 거겠지. 동양인 여성의 억눌린 감정이란.

책상 앞에서 일하다 보니 영화를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컴퓨터로 보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넷플릭스에서도 중간에 보다 만 영화만 쌓여 있고.
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할텐데.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2023)

지나가다 예고편을 보고 유쾌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평이 좋아서 기분전환 삼아 보러 갔다.

RPG는 딱 한번 어떤 식인지 친구들과 한번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딱 평범한 판타지 독자의 정도의 지식만 있는 편. D&D 설정은 그저 단어들만 몇 개 알고 있는 정도고.

영화는 재미있는 가족용 판타지 영화로 기분 좋게 즐기고 나올 정도.
유머가 꽤 유쾌하고 딱히 크게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도 나쁘지 않고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는 사람이라면 중간중간 나오는 설정들도 작품 내에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고. 실제 D&D를 해본 사람들 감상은 굉장히 호평이라고 한다. 그 기분을 조금은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난 겨우 직업적 특성이 강조되는 부분만 알아볼 수 있어서. 모든 설정을 알고 있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 주사위 굴리는 타이밍도 ㅋㅋ

다만 복식과 크리쳐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울베어 기괴해서 너무 좋아!!!! 뚱뚱한 드래곤 최고야~!!!!!!!!!

그리고 휴 그랜트 씨는 아예 이쪽으로 전향한 거냐고.
사기꾼 전문배우가 되어가고 있잖아!
(사기꾼은 매력 수치가 높구나. 처음 알았어. 영화 본 사람 중 누군가는 캐릭터 시트 만들어놨을 거 같다. 캬캬캬 )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

대세에 굴복했다…
…기보다는 너무 오랫동안 밖에 나가지 않아서 이러다간 안 될 것 같아 급하게 예매해서 보러 갔다.
스타워즈 소리를 듣던 앤트맨도 궁금하긴 했는데 그래도 극장에서 봐야 할 작품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 두 시간이 정말 훌쩍 지나갔어.
극장에서 나와서 이렇게 긴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놀랄 정도였다.

나는 학창시절 슬램덩크를 읽지 않았는데
내가 영화고 만화고 당대 모두가 봤던 것들 중 이상하게 안 보고 지나간 게 많아서 그렇다.
중간중간 한 권씩 친구들이 보던 걸 옆에서 같이 본 데다 워낙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 대충은 알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각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질 못했달까.
이번 열풍이 불어서 조금 깊이 생각해 보니 당시 책 한 권에 시합 5분이라는 데 좀 거부반응이 있었던 것 같아. 나이 들어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어린 시절 특히 사춘기 때는 취향에 대한 이상한 고집이 있지.

여하튼 그래서 배경 지식에는 별 문제가 없었고,
팬도 아닌데도 오프닝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더라. 음악과 화면이 정말 근사해서. 지면 위에서 펜선이었던 캐릭터들이 살아 나와 움직인다는 전제를 시작부터 박아 놓고 시작하다니 반칙이잖아 이거.

각 캐릭터에 대해 기본에 깔려 있는 편애적인 애정이 없다 보니 오히려 시합에 중점을 둬 더욱 스포츠를 관람하는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실제 관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어렸을 땐 백호가 너무 어수선하고 바보 같아 별로 안 좋아했는데 나이 들고 보니 정말 하는 짓 하나하나가 너무 귀엽더라. 모든 선수들을  ’10대 어린애’로 볼 수 있는 어른이 되어 보니 작가가 왜 당시 캐릭터들을 그렇게 그렸는지 이제야 좀 이해할 것 같고.

배경과 캐릭터들이 따로 놀아 뭔가 배경막 앞에서 종이 인형으로 연극을 하는 느낌이 좀 있는데,
일부러 한 연출인가? 라고 생각했으나 3D에 2D를 입히는 요즘 기법이라는 말을 들었다. 흠. 이 기법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이 정도로 애들이 느릿느릿하진 않았지 않나. 시합 때는 안 그런데 다른 배경에서는 프레임이 적은가? 는 느낌이 들 정도로 느리다.

여하튼 너무 궁금해서 다음주에는 어케든 시간을 내서 더빙을 한번 보러갈 예정.

덧. 이름도 안나오는 태섭이 친구 A가 마음에 들어 물어봤더니 이름이 달재래.
아, 이 세상 모든 친구 A 취향의 팬들에게 건배! 하긴 나 당시에도 안경선배가 가장 호감이었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