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일상

“씨너스: 죄인들” (2025)

뱀파이어 영화라는 건 알았고,
라이언 쿠글러와 마이클 B 조던이 뭉쳤으니 흑인 중심의 영화일 거라는 것만 짐작하며 아무 정보 없이 보러 갔는데,

극장에 보러 가길 정말 잘했다. 이 영화는 올해 반드시 뭐든 거창한 상을 타야 한다고 생각해.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800년대 서부영화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저들이 살던 세계가 시카고로 대변되는 도시에 비해 변화가 적었다는 의미도 되겠지. 중반까지도 배경과 인물들을 설명하는 데 한참 공을 쏟아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이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헐리우드 영화를 보아 왔음에도 흑인의 역사와 문화는 아직도 낯섦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기 익숙해지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주어서 그 시간들이 불만스럽지 않았다.

클럽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 뒤로는 급격히 음악이 영화의 중심을 꿰차는데 그 매개가 되는 어린 주인공이 다른 사건에 있어서는 존재감이 굉장히 희미하다는 점에서 뱀파이어들의 말대로 그가 영혼을 뒤흔드는 ‘음악’을 전달하는 통로일 뿐이라는 이중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살아있는 역사’이고 그래서 반드시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야 현재를 미래로 이어나갈 수 있기에.

그리고 보고 온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그 장면’은 너무 아름다워서 표현할 말이 없다. 아, 아직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미지를 감정을 그려낼 수 있구나. 아직도 창작에는 남은 공간이 있구나. 이렇게 어우러지는 한과 흥이라니.

“블랙 팬서”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아시아, 특히 북동아시아에서 자라 온 나는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무엇을 자신의 뿌리로 여길지 짐작하기가 힘들다. 1, 2대 이민자라면 모를까 떠나온 지가 너무 오래된 이들은 이제 출신 부족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졌을텐데, 그렇다면 노예시절에 발전시킨 저 문화일까.

신기할 정도로 계속 장르가 바뀌는데 위화감은 크지 않다. 나는 봉준호 이후로 이런 식의 장르섞음이 이제 또 하나의 장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후반부는 호러 영화로서도 나쁘지 않고, 백인들이 또 다른 한과 흥을 지닌 아이리시계 음악을 들고 오는 것도 유쾌했다. 그래, 블루스에 밀리지 않고 대항할만한 건 찾기가 어렵지. 심지어 그 둘의 대립 역사도 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굳이 섹스장면이 그렇게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렇게 거침없는 것도 그들의 특성이니까.

영화가 정말 많은 것을 말하고 있고, 과거의 많은 것을 이어받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크게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들이고.

캐릭터가 너무 ‘여신’처럼 그려진 건 아닌가 하지만 애니 배우가 좋았다. 헤일리는 이제 완전히 성인이 되었구나 싶고. 쿠글러여, 당신이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마이클 좀 그만 벗겨 ㅋㅋㅋㅋㅋ 그리고 중국계 부부로 나오는 두 배우도 좋았다. 특히 부인인 그레이스는 배우도 캐릭터도 좋았어.

스크린X로 봤는데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 기회가 생기면 좋겠지만…과연 내가 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나갈지 모르겠네.

걸레 사망

나는 선천적으로 게으른 인간이다.
그래도 어릴 적엔 주변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바쁘게 살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 게으름이 후천적인 노력을 뚫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체력 문제일지도.

여하튼 요 며칠 동안 오랫동안 미뤄뒀던 청소를 구획별로 끝마쳤고
결과는….집안 공기가 한층 나아진 건 사실이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별로 없다.
좁은 공간에 많은 물건들을 다 수납하지 못하고 흩어놓았으니
청소를 하든 말든 약간의 정리를 하든 말든
다 제자리로 귀환하고 나면 그럴 수 밖에 없지.

오늘 오랫동안 사용해 온 걸레에게 사망선고를 내리고
쓰레기봉지에 집어넣었다.
하도 닳아서 거의 투명해졌을만큼 혹사당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오래 사용했기에 부드럽고, 손에 익고,
다른 걸레가 있음에도 늘 찾게되는 녀석이었다.

나는 물건을 오래 사용하고 또 오래 보관해놓는 인간이라
낡은 수건도 많고
(얼마 전, 수건걸이에 걸린 수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내가 1990년대에 만들어진 수건을 아직 사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돌잔치의 주인공이었던 아이는 지금 20대 중반을 넘겼겠지.)
필요할 때마다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걸레로 강등시키는데,
몇 개의 다른 걸레들에게 추방 명령을 내리는 동안
이 녀석만은 못버리고 끈질기게 붙잡고 있었건만
결국엔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래돼 뻣뻣한 수건을 접어 쓰기 좋은 부드러운 걸레로 길들이려면
앞으로 청소를 더 자주 해야겠지.

요즘 세상엔 물걸레 청소포라는 것도 있건만,
그녀석은 국지적인 부위를 닦을 때 주로 사용한다면
마음먹고 온 집안을 헤집는 청소를 할 때는
옛날처럼 무릎을 꿇고 천걸레로 바닥을 문지르게 된다.

내가 이제는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지.
하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일회용 청소용품은
물에 흠뻑 젖은 면제품의 성능을 따라가지 못하는걸.
편리함은 좋지만 편리함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유용함이라는 게 있다.

….이런 걸 느낄 때마다 나 정말로 나이가 들었구나 하고 실감해.

오랜 친구의 뒤를 이어 새로 걸레의 지위를 습득한 녀석은
놀랍게도 90년대에 탄생한 오래묵은 수건이 아니라 아무 기록도 새겨져 있지 않은
평범한 기성 상품이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선택하고 나서 보니 그랬다.
아무래도 이 돌잔치 수건은 나와 함께 더 오래 갈 모양이다.

날도 풀렸으니 부디 이번 겨울만큼 게으름을 부리지 말아야 할텐데.

드디어 핀을 뽑았는데

손가락 인대 수술을 마치고
드디어 두달 간 손가락을 고정하고 있던 핀을 뽑았는데
아무래도 그른 것 같다.

수술 전과 휘어진 각도가 똑같고
힘을 줘도 펴지지 않는다.

젠장.

게다가 퉁퉁 불어서 왜 물리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는지도 이해했다.
뭐,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다고 하지만
워낙 자주 쓰는 손에 한 가운데 손가락이라 신경쓰여 흑흑흑.

평소처럼 사용하라고 하는데
통증이 있는데다
손으로 누르지 말라고 해서 왠지 타자칠 때 힘도 안 줘야 할 것 같아
아직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즉 물은 묻힐 수 있게 되었는데
여전히 설거지나 머리를 땋을 때 힘을 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

정상화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