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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 – 이상희

요즘 이상하게 소설이 끌리지 않아서.

그런데 내가 확실히 요즘 사전정보 없이 뭔가를 접하는 걸 선호하게 되긴 했어.
좀 더 알아보고 책을 골랐어야 했는데.
인류의 기원과 계속해서 변화하는 학설에 관해 과학동아에 연재했던 글이라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말랑하고 대중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내 지식이 워낙 오래 전에 기본적인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 보니 여러 가지를 배우긴 했다.
이미 알고 있던 지식들도 많았지만 책 안의 말처럼 “그것을 연결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도 깨달았고. 이것도 들어봤고 이것도 들어봤고 이것도 들어봤지만 그걸 다 모으면 이런 내용이 되는구나 싶더라. 그런 파편적인 지식들의 연결고리를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게 이런 대중서의 목적이겠지.

가볍게 쓱쓱 넘기며 읽기 좋았지만
좀 더 머리를 쓸 수 있는 녀석이 필요했기에 목적을 따지자면 실패한 선택이었다.

고고인류학을 하는 사람이라 역시 모든 걸 길게 본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예전에는 현생인류가 시간이 갈수록 뇌용량은 늘어나고 근육은 쇠퇴하고
손가락 기능은 늘어나는, 이티의 모습과 가까워 질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외장두뇌로 인해 정말로 뇌기능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갈지 그게 제일 궁금해.

“나를 보내지 마”

삶이란 참으로 아름답고도 덧없는 것이라.

책장이 온통 장르문학투성이였는데
이상하게도 한동안 어떤 책을 잡아도 진도가 안 나갔건만
이 녀석은 붙들고 단숨에 읽어치웠다.
그만큼 흡인력이 출중하다.

성장과 우정, 애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일종의 미스터리이기도 하며
마지막에는 여기까지 도달한 독자가 숨이 막힐 정도로 마구 질문을 던지는데
그런데도 과연 나의 생각과 의견이 그저 살아갈 뿐인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리곤 그런 나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는 거지.

소설 속 ‘나’는 소설 속 ‘나’를 보는 나만큼이나 관조적이라
계속해서 멀어져만 가는데
그 간극을 좁힐 길은 없고
이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좌절감과 혐오감이 사람을 먹먹하게 만들어.

“파과”

어렸을 때부터 한국 소설을 많이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도 그쪽은 잘 모르는 편인데
요즘 조금씩 눈에 띄는 이름들의 작품을 읽기 위해 노력중이다.

작가를 소개받았고 그중에서도 이 소설을 소개받았다.
주인공 때문인지 작가의 나이에 비해 굉장히 옛스러운 글이라
많이 신기하다.

내가 학창시절에 읽었던
나보다 약간 윗세대의 한국식 장르소설이나 드라마를 연상케하는 스토리와 구조라고 해야 하나.
특히 의사에 대해 조금 뜬금없는 주인공의 호의가 그러했고
두 사람의 관계성도 흔하디 흔한 것이고 특히 마지막 혈투는 그 시절의 전형적인 “맞다이”인데
그 주인공이 60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독특해진다.
이제껏 그 역할은 마초적이고 홀로 고독을 씹는 느와르풍의 아저씨들이 담당했으니까.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넷플릭스에서 은퇴에 임박한 킬러 이야기인 “폴라”를 봐서
더더욱 시차없이 비교할 수 있었고.

작가의 다른 글과는 조금 다르다는 평이 있는 것 같아서
다른 작품을 몇 개 더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