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읽고

“살아남은 왕녀의 웃음 뒤에는”

개정판은 19금.

네이버에서 연재 중에 보다가 말았는데 외전에 개정판까지 나오는 바람에 이북으로 재구매.
역시 연재본은 이런 문제가. ㅠ,ㅠ

여주인공 미에사가 초반에 워낙 잘 묘사되어 있어서
성장기를 따라가는 맛이 있다.

미에사 뿐만이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입체적이고
정치적으로도 “할 일을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스토리도 소위 판에 박힌 ‘답정너’가 아니라 인물들의 특성에 따라 가야 할 방향으로 간다.
어찌 보면 정말 무서울 정도로 건조한 말투로 사람 목숨이 휙휙 날아가는데
그럼에도 미에사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오랜만에 본 수작.

에이릭이 너무 완벽해 가끔은 당황스러울 정도인데
생각해보면 로판에는 이렇게 정석적으로 완벽한 남주가 오히려 보기 드물기도 하지.

 

“사천당가의 장녀는 가문을 지킨다”

네이버 독점 연재 중.

페이지 터너로는 모든 장르를 통틀어 역시 무협을 따라갈 부문이 없다.

아직 연재 중이고 겨우 100화를 조금 넘겼는데 내용 상 꽤나 길어질 것 같고,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문체가 굉장히 전문작가답다.
음, 그러니까 그만큼 내가 읽은 수많은 웹소설들이 습작 같은 녀석들이 많았다는 의미라고 해야 할까.

장르적으로도 굉장히 편안한데 고리타분한 구식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현대식으로 끼를 부리려는 부분도 없다. 말하자면 과하지가 않아.

여기서 잘못된 게 있다면 또 다시 어리석게도 연재작을 잡은 나다, 나. ㅠ.ㅠ
이제 다시 몇 달 동안 까먹고 있어야 하잖아.

“살인자와 프로파일러”

본진이 수사 및 추리 쪽이다 보니 어렸을 적부터 로버트 레슬러 책도 읽었고 존 더글러스 책도 읽었다. 3인방의 마지막 앤 버지스의 저서까지 이제 완성.

다른 두 사람의 책은 워낙 읽은 지가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하긴 한데, 저자 세 명의 성격이 모두 다르다 보니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확실히 버지스가 가장 체계적이고, 학구적이며, 무엇보다 이 팀에 합류하게 된 이유에 걸맞게 피해자 중심적이다.  그의 대중서가 가장 늦게 출간된 여러 이유 중에서 이 부분도 특히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언론과 미디어, 창작물이 “범죄자”에게 들이대는 관심의 돋보기를 생각해 보면, 피해자를 부각시킬 경우 대중이 갖고 있던 “흥미”와 “재미”는 죄책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감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뛰는 교수이자 학자다 보니, 확실히 ‘수사관’들과는 다르다. 수사관들이 “이런 험악한 사진을 견딜 수 있을까” 하며 들이미는 (물론 성차별이지만, 당시의 본인들 입장에서는 배려였을 것이다.)  온갖 시험대와 장애물도 버지스의 책에서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들과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범죄자”에게 오히려 가까운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남성 수사관들과 관점 자체가 다르다. (FBI 강의에서 반론을 던져대던 생도들은 과연 버지스가 남성 강사였다면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것인가?)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팀을 구성할 때 동질성도 동질성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다각도에서, 서로가 놓친 것들을 짚어나가며 보완하는 과정들. 주먹구구식의 직감도 수치화된 이론과 척도도 양쪽 모두가 서로를 지탱하지 않으면 그저 모래 위의 누각일 뿐이라는 것도 새삼.

덧붙여, 이러한 연구의 결과로 인해 창작계에 일어난 바람을 내가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는 것도 기분이 묘하다.
실제로 십대 시절부터 연쇄살인범에 대한 책과 소설을 즐겨 읽었고(이 풍조가 돌기 전에는 아무래도 냉전의 여파로 정치, 테러 등이 얽힌 이야기가 주였지), 그들이 스크린 속에 등장하는 것을 보았고, 극한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돌연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TV에서 과거 범죄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제 한 바퀴가 돌아서 다시 영웅의 시대가 돌아오는 것도.

 

“암컷들”

암컷이라는 성이 소극적, 수동적 존재이며 항상 부차적인 존재에 머물러 있다는 편견을 여러 동물 사회를 예로 들어 반박하는 책.

내가 후대에 받은 교육 탓이겠지만, 나는 암컷이 자연에서 주로 짝짓기 ‘선택’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진화적 관점에서 더 우위에 서 있다는 게 당연히 기본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통적인 생물학 – 그리고 남성적 – 관점에서는 이를 가만히 앉아서 선택만 하면 되기 때문에 수동적이라고 반대로 해석했다는 게 약간 충격적이었다. 그들이야 당연하다고 여겼겠지만 만일 동물 암수의 역할이 바뀌었다면 반대로 “여성이 남성의 선택을 받기 위해 화려한 춤을 추는 걸로 보야 역시 남성이 우위에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겠지. 하나의, 그것도 자연 현상을 두고 어떻게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기존에 대략적으로만 알던 사실들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조금 더 심화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고래 사회. 사자나 하이에나,나아가 침팬지나 코끼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확실히 해상동물에 대해서는 내가 조금 더 무지하구나 싶고.

저자인 루시 쿡이 리처드 도킨스를 사사했고,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책이라고도 하는데 이쯤 되면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야 하나. -_-;;; “만들어진 신”은 읽었는데 “이기적 유전자”는 당시에 번역 때문에 말이 좀 많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