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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왕”

기대와는 조금 달랐는데, 모험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전부 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다지 전복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고, 다만 첫 번째 연작은 처음에 흔한 소재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진행될수록 결말이 어디로 흘러갈지 잘 보이지 않아 흥미롭게 충격적이었다. 역시 공포 쪽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이 나 역시 어릴 적 아버지께 “네가 커서 우리 집안 이야기를 쓰면 좋을 텐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가족묘에 갔다가 전쟁이 끝나고 가세가 기울어 결국에는 집안에서 일하던 사람에게 조각조각 넘어갔다는 옛 집터를 앞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한참 후 머리가 좀 굵어졌을 때, 참 아이러니한 말씀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대가족의 막내이고 나 역시 그런 아버지의 늦둥이 막내이기에. 아마도 우리는 직접 겪은 것보다 옆에서 피상적인 부분만 보거나 귀로 들은 것이 더 많은 이들일 것이라. 그래, 어쩌면 그런 입장이 더욱 자유로울 수는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정말 금세 후루룩 읽었다. 요즘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아 이렇게 매끄럽게 책장이 넘어간 게 얼마 만인지.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200

예전에 1회 차인 60화 중반까지 읽었다가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어 한동안 멈춰 있었는데 “광마회귀”로 일단 인류애를 충전하고 다시 잡았더니 현재 연재분에 가깝게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의 정신건강 상태에 감사한다. 창작물이 이렇게 영향이 크다.

주인공이 평범한 사람, 정말로 마음에 드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타인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걸 보고 있자니 가슴이 덜컹덜컹 내려앉는다. 이제는 그마저 자기 자신을 붙들기 위한 수준에 이르러 있고. 원래 이런 류의 도돌이표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회차마다 퍼즐을 풀듯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어 절망적인 분위기에서도 그걸 맞추는 재미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인 성향을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는 내면의 그 큰 기둥에 맞춰 선택하지만, 또한 세부적인 상황에 따라서는 갈래갈래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사이사이 환경과 인간,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그럴법한 현실과 판타지가 균형 있게 섞여 있어서 어느 쪽으로든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그 점에서 감탄.

진심으로 의사선생과 엔지니어 가팀 모두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네.  아, 정상현 그 자식 빼고.

광마회귀 1-350

아, 재미있네.

무협은 학창시절 김용으로 시작해서 그 뒤로 다른 작품들은 도저히 취향에 맞출 수 없어 포기한 케이스인데, 그래도 약간의 상식이 있다 보니 조금씩 설정이 풀릴 때마다 기발함에 감탄하며 봤다.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의 전생이 가장 흥미롭다.
자칭 ‘미친 놈’이라고 하나, 이건 그냥 미친 게 아니라 일단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부조리에 미친 게 하나, 두 번째는 나름 세상을 바로잡아보고자 큰 뜻을 품었으나 이를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하여 꿈이 좌절된 것에 원인이 있으니 이건 세상을 향해 미친 거지 자기 자신을 향해 미친 게 아니다. 현생에 와서도 수정된 경로를 거치면서도 결국엔 다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회귀물인 이유에 대해서도 납득이 가능하고.

결국 자하와 무림맹주는 종이의 양면이라, 서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자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이런 관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 취향 작렬이다.

일단 작가가 ‘정파’적이라고 해야 하나. 인터넷 글을 읽다 보면 주인공이 옳다는 전제 하에 얍삽하고 못된 쪽을 좋아하는 취향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쪽이 아니라 좋았다. 다만 악역도 너무 곧게 그리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묵직한 소설이라 좋다. 글을 허겁지겁 읽게 만들지도 않고 왠지 모를 리듬이 있고.

작가 전작을 찾아봐야 하나 생각 중

걸어다니는 어원사전

영어 어원에 대해 연재한 짧은 글들을 모은 책.

재미있었다.
몇 개는 아는 것들도 있었지만 정말 상상도 못한 어원이 나와서 새삼 새로운 것을 아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지, 하고 실감했어.

글쓴이의 유머러스한 말투도 계속해서 흥미를 잡아 놓는데다 무엇보다 구성이 연상 작용에 따라 이어져서 원래는 짧게 끊어 읽을 생각이었는데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마지막 장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완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