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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걸”

나는 늘 내가 과학자가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궁금했다. 숫자는 싫어하지만 개념은 재미있었고 지루한 일을 싫어하면서도 동시에 결과를 얻기 위한 반복적인 일은 별로 꺼려하지 않고,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사실과 일들을 연결해 연관성을 찾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학교 교육에서 나가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동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식물학을 연구하고, 동시에 지질학과 역사학을 접목시킨 연구를 한다. 그 모든 것들의 뿌리와 과정이 그가 연구하는 식물의 구조를 그린 듯이 얽혀서 뻗어나가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다.

스스로 주변과 구분짓는 북유럽계 혈통에서 시작해 문학으로부터 시작된 특이한 경력과 여성과학자로서 겪어야했던 수많은 일들까지, 어디서나 무리 없이 섞이는 것이 가능하되 동시에 늘 이방인 같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읽다보면 자꾸만 시대적으로 내가 살아온 시절과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계속해서 실제 시점보다 십수년 앞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어쩌면 그만큼 내게는 낯선 환경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간접적으로도 이정도로 밀접하게 엿본 적이 없기에 소설보다 더욱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배경.

굉장히 독특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인류의 기원” – 이상희

요즘 이상하게 소설이 끌리지 않아서.

그런데 내가 확실히 요즘 사전정보 없이 뭔가를 접하는 걸 선호하게 되긴 했어.
좀 더 알아보고 책을 골랐어야 했는데.
인류의 기원과 계속해서 변화하는 학설에 관해 과학동아에 연재했던 글이라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말랑하고 대중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내 지식이 워낙 오래 전에 기본적인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 보니 여러 가지를 배우긴 했다.
이미 알고 있던 지식들도 많았지만 책 안의 말처럼 “그것을 연결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도 깨달았고. 이것도 들어봤고 이것도 들어봤고 이것도 들어봤지만 그걸 다 모으면 이런 내용이 되는구나 싶더라. 그런 파편적인 지식들의 연결고리를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게 이런 대중서의 목적이겠지.

가볍게 쓱쓱 넘기며 읽기 좋았지만
좀 더 머리를 쓸 수 있는 녀석이 필요했기에 목적을 따지자면 실패한 선택이었다.

고고인류학을 하는 사람이라 역시 모든 걸 길게 본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예전에는 현생인류가 시간이 갈수록 뇌용량은 늘어나고 근육은 쇠퇴하고
손가락 기능은 늘어나는, 이티의 모습과 가까워 질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외장두뇌로 인해 정말로 뇌기능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갈지 그게 제일 궁금해.

“나를 보내지 마”

삶이란 참으로 아름답고도 덧없는 것이라.

책장이 온통 장르문학투성이였는데
이상하게도 한동안 어떤 책을 잡아도 진도가 안 나갔건만
이 녀석은 붙들고 단숨에 읽어치웠다.
그만큼 흡인력이 출중하다.

성장과 우정, 애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일종의 미스터리이기도 하며
마지막에는 여기까지 도달한 독자가 숨이 막힐 정도로 마구 질문을 던지는데
그런데도 과연 나의 생각과 의견이 그저 살아갈 뿐인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리곤 그런 나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는 거지.

소설 속 ‘나’는 소설 속 ‘나’를 보는 나만큼이나 관조적이라
계속해서 멀어져만 가는데
그 간극을 좁힐 길은 없고
이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좌절감과 혐오감이 사람을 먹먹하게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