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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에 한 방을: 게임스톱 사가”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다큐를 좋아하시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나이 들고 나니 내가 딱 그짝이다.
시간 여유가 좀 들었을 때 밀린 드라마를 볼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요즘엔 창작물보다는 다큐멘터리에 먼저 눈길이 가게 된단 말이지.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트위터에서 실시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 추이를 목격했기에 넷플 추천 목록에 있길래 잽싸게 클릭했다. 처음엔 소위 네티즌들의 ‘어그로’로 보였고 나중에는 일종의 운동으로 번지는 걸 보면서도 기분이 묘했는데 (일단 큰손 투자가들이 끼어들면서 그마저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으니)
실은 그 전부터 내가 모르는 움직임이 있었음을 처음 알았다.
그래, 아무리 눈덩이처럼 굴러가기 시작한 사태라도 발단이 있었고, 일렁이는 불씨가 없었다면 말이 안 되지.
나도 꼬였는지 다큐에서 “모범적인” 말을 하는 헤지펀드 운용자들이 얼마나 얄미워 보였는지 모른다. 개미 투자가들을 염려해서 하는 말이 아닌, ‘업계를 어지럽힌 데 대한’ 훈계라니.

이 사태로 인하여 로빈후드의 뒷배와 ‘시스템’이 온천하에 까발려진 걸 가장 큰 수확으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시스템은 늘 놀라울 정도로 거대하고 교묘하게 숨어 있지.

그치만…..저기, 노래하시는 분들 음. 세상은 참 넓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이카로스(2017)

러시아 선수들 도핑에 관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이미 국가 이름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와중에
이번 베이징에서도 피겨에서 또 터진 걸 보고 찾아봤다.

이야기는 사이클링을 하는 감독이 암스트롱의 약물 소식에 놀라
스스로 약물을 투여하고 도핑 검사를 피해갈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걸로 시작되는데,
그 과정에서 러시아 반도핑 연구소 소장의 도움을 받게 되고,
다큐 촬영 도중 소장이 수사 대상이 되면서
미국으로 도피, 러시아 스포츠 선수들의 약물 투여가
러시아 정부 주도로 체계적으로 이뤄졌음을 폭로한다.

저 흐름 자체가 굉장히 놀라웠는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인맥으로 연결된 대상이
상당한 거물인 전 러시아 반도핑 연구소 소장이라는 것부터 일단 충격
그리고 후에 미국에서 사실을 폭로 후 목숨의 위험을 느끼는 와중에도
러시아에 있는 가족들과 무사히 화상통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상당히 놀라웠다.

한국인으로서 독재에 너무 익숙해진 건가 싶기도 하고.

중반까지 감독이 자신의 몸으로 실험을 하는 부분은 좀 지루함이 있었고
(특히 내가 이 다큐의 내용을 알고 있는 이상)
반면에 후반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빠르게 핵심만 짚고 간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개인적으로 “이렇게 다큐에서 얼굴이 다 공개되는데 증인 보호 프로그램 같은 게 효과가 있나”
하고 생각하는 걸 보니 역시 난 독재에 너무 익숙해진 한국인인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이런 증거가 다 밝혀졌음에도
국가의 이름은 아니더라도 러시아 협회 이름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도록 허가한
IOC에 환멸을 느낄 수 있다.
아마 그렇기에 이번에도 더욱 노골적으로 저질렀겠지.
이 경우엔 선수들이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어려운 게
처음에는 외부 압력에 의한 것이었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그걸 당연하게 여기며 승리의 환희와 결과를 만끽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작하기가 힘들다.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 (2019) – 넷플릭스

밖에 안 나가니 요즘 넷플릭스 작품들만 보고 있는 것 같네.

나름 동시대 미국 문화를 따라잡자 싶어 처음에 “아메리칸 밈”을 틀었는데
화면을 보고 있는 내가 같이 바보가 되는 것 같아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
누군가 대신에 이 다큐를 보라고 추천해주었다.

저쪽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 나는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심지어 누이마저 아는 걸 보니 꽤 떠들썩했던 사건인 모양이다. 이름깨나 있다는 사업가와 유명인사가 손을 잡고 ‘고급화’ 컨셉으로 음악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홍보했으나 실무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입으로만 떠들었을 뿐이었고 결과적으로 페스티벌은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하룻밤만에 취소되었으며, 고액 티켓을 산 피해자들은 기획자에게 역시 거액의 사기 및 피해 소송을 걸었다.

골자는 사실 어디서나 자주 봤던 평범한 이야기다. 무엇을 실제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른 채 이런 거 저런 거 하겠다고 머릿속에 공상만 잔뜩 하고 돈을 긁어 모았으나 당연한 귀결로 실패하게 되는 허황된 사업가 혹은 사기꾼의 이야기. 다만 이 사건은 관련 인물들 및 피해 규모가 상상 이상인데다 대대적으로 유명인사들을 홍보에 이용했는데, 그래서인지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이 떠오른다.

동시에 현대의 소셜 미디어가 얼마나 조작 및 선동에 손쉬운 플랫폼인지 짚어주는 것은 덤. 돈을 받고 이 행사를 홍보한 소위 인플루언서들은 피해자이며, 동시에 부분적인 가해자이기도 하다.

이 피상적인 작은 살아있는 사회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할지 모르겠다. 그 어떤 세상보다도 시끄럽고 북적거리는데 나 자신의 판단력을 성장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고. 늘 발을 디딜 때마다 조심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그러다보니 현실 사회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단 말이지.

증언을 보다 보면 직장인들의 애환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후회 없었어.

“코드걸” (2015)

넷플릭스에서 시청.

전세계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친화적 모바일앱 개발 콘테스트인 “테크노베이션” 을 배경으로
2015년에 참가한 팀들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여러가지 면에서 흥미로웠다.

1. 단순히 코드를 배우고 모바일 앱을 개발하는 팀 작업을 넘어 소녀들에게 ‘사업의 기초’를 가르친다는 점.  다시 말해 여자아이들에게 단순한 너드나 개발자가 되는 것을 넘어 운영가, 사업가가 되는 데 대한 흥미를 자극한다.

2. 실제로 어떤 점에서 이런 콘테스트는 온갖 차별적이고 불공평한 조건들을 넘어서야 하는데, 미국 팀들이 금전적으로,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훨씬 풍부하고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반면 사회적 의미를 지닌 콘테스트이기에 자신들 스스로도 ‘제3세계 경쟁자들’보다 덜 절박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며 실제로도 그렇다. 사고의 범위 자체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고 그들의 의도는 가끔은 무척 순진해보이기조차 하다. ‘주제와 의도’를 우선시할 것인가 앱의 ‘기능’을 우선시할 것인가라는 주체측의 고민과 결말까지도 왠지 빤히 보이는 느낌이고.  

3. 미국 동부의 명문학교 팀은 결승전에 진출한 이후 교장을 만나고, 주지사를 만나고, 사진을 찍고, 어른들 앞에서 성인처럼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학년의 85%가 사용하는 iOS를 기반으로 앱을 만든다. 브라질과 인도 팀은 자신의 언어가 아닌 영어로 앱을 만들고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고 나이지리아 팀은 내가 모르는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안드로이드 기반의 앱을 만들며 미국 비자 시스템 문제로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대회장에 도착한다.(유창한 영어를 보건대 사실 이들도 나름 상류층일텐데 여자들만 참가할 수 있는 IT 대회라니 사기나 인신매매 같은 게 아니냐고 말하는 부모들도 있고)

4. 소녀들의 도전의 세계를 맛봐야 했는데 내게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도리어 각 세계의 차이점이라니. 그래도 재미있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