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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 (2019) – 넷플릭스

밖에 안 나가니 요즘 넷플릭스 작품들만 보고 있는 것 같네.

나름 동시대 미국 문화를 따라잡자 싶어 처음에 “아메리칸 밈”을 틀었는데
화면을 보고 있는 내가 같이 바보가 되는 것 같아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
누군가 대신에 이 다큐를 보라고 추천해주었다.

저쪽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 나는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심지어 누이마저 아는 걸 보니 꽤 떠들썩했던 사건인 모양이다. 이름깨나 있다는 사업가와 유명인사가 손을 잡고 ‘고급화’ 컨셉으로 음악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홍보했으나 실무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입으로만 떠들었을 뿐이었고 결과적으로 페스티벌은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하룻밤만에 취소되었으며, 고액 티켓을 산 피해자들은 기획자에게 역시 거액의 사기 및 피해 소송을 걸었다.

골자는 사실 어디서나 자주 봤던 평범한 이야기다. 무엇을 실제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른 채 이런 거 저런 거 하겠다고 머릿속에 공상만 잔뜩 하고 돈을 긁어 모았으나 당연한 귀결로 실패하게 되는 허황된 사업가 혹은 사기꾼의 이야기. 다만 이 사건은 관련 인물들 및 피해 규모가 상상 이상인데다 대대적으로 유명인사들을 홍보에 이용했는데, 그래서인지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이 떠오른다.

동시에 현대의 소셜 미디어가 얼마나 조작 및 선동에 손쉬운 플랫폼인지 짚어주는 것은 덤. 돈을 받고 이 행사를 홍보한 소위 인플루언서들은 피해자이며, 동시에 부분적인 가해자이기도 하다.

이 피상적인 작은 살아있는 사회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할지 모르겠다. 그 어떤 세상보다도 시끄럽고 북적거리는데 나 자신의 판단력을 성장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고. 늘 발을 디딜 때마다 조심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그러다보니 현실 사회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단 말이지.

증언을 보다 보면 직장인들의 애환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후회 없었어.

“코드걸” (2015)

넷플릭스에서 시청.

전세계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친화적 모바일앱 개발 콘테스트인 “테크노베이션” 을 배경으로
2015년에 참가한 팀들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여러가지 면에서 흥미로웠다.

1. 단순히 코드를 배우고 모바일 앱을 개발하는 팀 작업을 넘어 소녀들에게 ‘사업의 기초’를 가르친다는 점.  다시 말해 여자아이들에게 단순한 너드나 개발자가 되는 것을 넘어 운영가, 사업가가 되는 데 대한 흥미를 자극한다.

2. 실제로 어떤 점에서 이런 콘테스트는 온갖 차별적이고 불공평한 조건들을 넘어서야 하는데, 미국 팀들이 금전적으로,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훨씬 풍부하고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반면 사회적 의미를 지닌 콘테스트이기에 자신들 스스로도 ‘제3세계 경쟁자들’보다 덜 절박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며 실제로도 그렇다. 사고의 범위 자체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고 그들의 의도는 가끔은 무척 순진해보이기조차 하다. ‘주제와 의도’를 우선시할 것인가 앱의 ‘기능’을 우선시할 것인가라는 주체측의 고민과 결말까지도 왠지 빤히 보이는 느낌이고.  

3. 미국 동부의 명문학교 팀은 결승전에 진출한 이후 교장을 만나고, 주지사를 만나고, 사진을 찍고, 어른들 앞에서 성인처럼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학년의 85%가 사용하는 iOS를 기반으로 앱을 만든다. 브라질과 인도 팀은 자신의 언어가 아닌 영어로 앱을 만들고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고 나이지리아 팀은 내가 모르는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안드로이드 기반의 앱을 만들며 미국 비자 시스템 문제로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대회장에 도착한다.(유창한 영어를 보건대 사실 이들도 나름 상류층일텐데 여자들만 참가할 수 있는 IT 대회라니 사기나 인신매매 같은 게 아니냐고 말하는 부모들도 있고)

4. 소녀들의 도전의 세계를 맛봐야 했는데 내게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도리어 각 세계의 차이점이라니. 그래도 재미있긴 했지만.

“엔딩노트”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마지막 몇 달을

막내딸이 찍고 편집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극중의 “엔딩 노트”란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신변정리를 하며 적은 것들로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것들과
자신이 죽고난 뒤 사후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관한 일종의 유언장입니다.
딸의 목소리로 아버지의 1인칭 나레이션이 이어지기에 처음에는 조금 낯선 감도 있습니다만
그것이 ‘이제는 가고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집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저 아버지가 한 시대를 얼마나 전형적으로 살아왔는지
[일본의 황금기를 거친 대기업 샐러리맨 세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년퇴임 직후 찾아온 말기 암 진단.
배경은 일본이긴 하지만 정말 전형적인 아버지세대랄까요.
그래도 이 분은 참 깔끔하고 행복하게
모든 것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온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애정어린 작별인사를 나누고 눈을 감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부러운 마지막이죠.
보는 내내 계속해서 현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저 나이대의 부모님을 둔 분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고
그것이 비단 부모님 세대뿐만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느끼게 되지요.
앞으로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겪어야 하는[그리고 겪었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미리 보고 느끼는 것도 좋겠지요.
 

When You’re Strange

사용자 삽입 이미지더 도어즈, 정확히 말하자면 가수 짐 모리슨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상영 시간은 90분 정도로 짧고, 그런만큼 굵직합니다. 시간순으로 따라가며 뉴스와 교차편집하는 정공법을 사용하는데 굳이 신파조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데가 있어요. 좋네요. ㅠ.ㅠ 오랜만에 듣는 도어즈의 노래도 좋고. 

제가 도어즈를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였는데, 한창 올리버 스톤 감독 영화를 훑던 시절이었죠. 90년대에 미국이 주로 베트남전을 중심으로 그 시절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다면 대충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은 당시의 문화를 재조명하는 바람이 부는 듯 합니다. 직접 보고들은 세대와 한 세대를 건너 뛰고 멀찍이 동경을 키워온 다음 세대의 차이인 걸까요.

우리는 과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상태로라면 겨우 겨우 한국전쟁을 넘어선 채 그 뒷부분은 아직 정치적 종결을 맺지 못하고 어영부영 암흑기로 들어선 상황인데 말입니다. 설령 후에 기회가 다시 오더라도 세대가 바뀌면 감성에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죠. 아쉬운 일입니다. 

덧. 차라리 한국어 제목을 달지를 말든가. “도어즈와 짐 모리슨” 이라는 식으로 새로운 제목을 달든가. -_-;;; 가사 살린답시고 “왠 유어…”는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