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감상/보고

“오티스의 비밀상담소”(2019) (넷플릭스)

영국 채널4 제작 넷플릭스 드라마.
원제는 Sex Education(성교육)

성 상담사를 어머니로 둔 16세 오티스가
우연한 계기로 교내에서 헤프기로 유명한 메이브와 함께 친구들의 성/관계 상담을 시작하는 이야기.

19세 관람가이기도 하고
(사실 청소년이 대상인 이야기는 청소년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첫 장면부터 꽤 수위가 세게 시작해서 또 이런 류의 코미디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1화부터 정말 정신없이 보기 시작해서 심지어 하루만에 다 끝냈어.
처음의 그 가벼운 분위기 – 아이들이 어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마 털어놓지 못할 성과 관련된 이야기들 – 을 조금씩 끌어 올리더니
순식간에 우리 주위에 있는 심각한 주제로 이어지고
그러면서도 그 주제들을 결코 지나치게 무겁게 다루지도 않는다.
머릿속으로 이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들로 던져주어 반론과 반론을 끄집어 내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는 현실적인 상황들을, 결국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임을 보여주고
결국 인간과 인간의 문제로 다가가는데

흥미로운 건 청소년과 청소년 – 청소년과 사회 – 청소년과 어른들(부모들)
그리고 어른들과 어른들의 세계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는 것.
1화를 볼 때부터 오티스와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잖아! 라고 울부짖었는데
그 갈등과 해결을 향해 찬찬히 풀어가고
초반에 친구 에릭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약간은 우려스러웠는데
놀랍게도 가장 크고 높이 성장한 것도, 나를 가장 많이 울린 것도 에릭이었다.

그리고 릴리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죽는 줄 알았어. ㅋㅋㅋㅋ
아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얼굴이라서 더욱 그랬을 수도 있고.

메이브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2시즌 빨리 나와줬으면 좋겠어.

덧. 오티스를 보고 쟤 되게 에이사 버터필드 닮았다, 했는데 본인이었고
어머니인 진 역할은 질리언 앤더슨. 뭐죠, 이 너무나도 설득력있는 캐스팅은.
덧2. 로그원에서 드레이븐 장군 역을 맡았던 알리스테어 아저씨가 나오는데, 아들 역이 정말 너무나도 빼어 닮아서 친부자인줄만 알았다.

“버드박스”(2018)

넷플릭스 오리지널.

몇 개 안 되긴 하지만 내가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에서 제일 좋았다.

눈으로 목격하면 비정상적인 자살 충동을 느끼게하는 어떠한 존재가 세상을 휩쓸고
그 와중에 살아남으려는 사람들과,
아이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려는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데

이제껏 수없이 반복되고 변주된 미지의 공포,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다루면서도
익숙하다거나 지루함 없이 끌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이고
산드라 블록의 연기도 굉장해.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묘하게 가식적이거나 인위적인 부분이 없다.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어. 분명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설정들이고 평소 보던 위치를 맡은 구성원들인데도 이들의 행동방식은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 언제든 이 중 누구에게라도 이입할 수 있는 듯 보여서 – 정의롭다기보다 인간적이고 친절한 이들이고, 야비한 이들도 왜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서 – 굉장히 환상적인 설정인데도 현실감이 있다. 시각적인 것의 현실감, 잔혹하거나 냉정하고 잔혹한 것이 곧 현실이다라고 외치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원초적인지 새삼 깨닫게 되고.

바깥 세상을 알지 못하고, 심지어 바깥을 내다보지도 못하는 캄캄한 버드 박스.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한다.
궁금하네.

“그린북”(2018)

친구 덕분에 시사회로.

제목은 아직 미국 내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절, 도로를 이용해 미국을 여행하는 흑인들을 위한 안내서를 가리킨다.
유명한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와 어쩌다 그의 운전사로서 함께 투어 여행에 나서게 된 전형적인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이야기.

보는 내내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아주 크고 심각한 사건 없이 – 이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 무사히 여정을 마치고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헐리우드스러운 스토리에 익숙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돈 셜리라는 인물이 굉장히 복합적인데,
흑인이지만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았고, 자신이 대표하고 있는 집단을 알고 있기에 의도적으로 상류층으로서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하며 또한 동성애자이기도 하다(바이라고 해야할지도). 즉 사회 집단의 어떤 곳에서도 주류로 속하지 못하며 동시에 그러기를 거부하는 인물. 인간이란 역시 하나의 기준으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여러 각도와 관점에서 서로 다른 위치와 입장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근데 이 사람 그 시절에 박사학위가 세 개나 돼…인간이냐구.

당시 이탈리아계 이민자도 사실 소수라면 소수에 해당하고 스테레오 타입에 얽매어 있긴 한데, 유럽인 남성으로서 토니가 누리는 자유란 극중에서 정말 순진해빠질 정도라 실소가 나오다 못해 점점 얼굴이 굳어가게 된다. 비고 씨 스페인어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왜 이탈리아어도 하는 거요.

실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 사실 대부분의 실화 기반이 그렇기도 하지만 – 동화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각색이 들어갔겠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크리스마스에 잘 어울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