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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30제] 28. 스승과 제자

반성문 1.
스피더 주인 아저씨께
잘못했습니다. 어, 그러니까, 아, 스피더 허락 없이 몰고 나간 거요. 지난번에 오비, 아니 스승님이 여기 있는 건 다 우리 거라 그래서 그냥 아무 때나 조종해도 되는 줄만 알았어요. 허락을 맡아야 하는지는 진짜 몰랐어요. 어,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어, 그리고 우리 스승님 너무 혼내지 마세요. 제가 시골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서 그래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아나킨 스카이워커 올림

편지 1
제다이 템플 물자보급부서 R3-6A4 선착장 담당자 귀하
제 어린 파다완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저지른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모든 것이 제 불찰입니다. 파다완 스카이워커는 겨우 몇 달 전에 제다이 템플에 도착했으며 한번도 자기 소유의 스피더를 가져본 적이 없기에 “이 곳에 있는 모든 비행선은 우리 모두의 소유이며 신청서만 내고 허가를 받으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제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합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 했건만, 전적으로 마스터인 제 잘못입니다. 아직 템플 생활에 익숙치 못하고 본인도 반성 중이므로 특별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알아듣도록 설명했으니 앞으로는 절대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스터로서의 자격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상기 우주선의 손상에 대해서는 제가 모두 책임지겠으니 청구서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사죄하는 바입니다.

포스가 함께하시길 빕니다.
오비완 케노비

반성문 2
제다이 템플 외부분규 담당자께
어젯밤 다른 파다완들과 함께 몰래 스피더를 타고 템플을 빠져나가 코루스칸트 제 3 구역에서 사고를 일으켜 진짜 죄송합니다. 설마 그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평소에도 자주 스피더를 몰래 몰고 나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큰 사고를 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구요. 사고가 난 건 전적으로 비행을 못하는 녀석들이 끼어있었던 탓입니다. 코헬 녀석이 글쎄 도로를 거꾸로 달리지 뭡니까. 전 그러면 시끄러워진다고 오히려 말렸는데.
죄송합니다. 다음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 아, 그리고 제 스피더에 규격에 어긋나는 파워 부스터 단 것도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저 말고 딴 사람이 몰면 안 된다고 그렇게 누누이 말했는데 다들 왜 내 말을 그렇게 안 듣는지. 잘못하면 진짜로 터지거든요. 일부러 오버히트 시켜놓아서.
정말로 죄송하구요, 아차, 그 때 스승님은 꿈나라에 계셨습니다. 요즘 뭔가 바쁘신 것 같아서 돌아오시기만 하면 침대로 직행이거든요. 저한테 좀 더 관심을 보여주지 않으면 앞으로 하루에 한번씩 이런 사건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좀 전해주실래요?

아나킨 스카이워커 올림

편지 2
제다이 템플 외부분규 담당자 귀하
지난번 제 파다완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저지른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다시금 정중히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모든 게 그 아이에게서 눈을 떼고 있던 제 불찰입니다. 그러고 보니 외부분규 쪽에는 1년 만에 보내는 서신이군요. 지난 5년간 제 파다완이 쓴, 반성문이 갖춰야 할 본연의 모습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그 수많은 반성문들과 제가 각 부처에 보낸 사과문을 모두 쌓으면 코루스칸트에 건물 두 개쯤은 간단히 건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다시 한번 무릎 꿇고 사죄드립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템플 외부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마스터로서 더더욱 얼굴을 들 수가 없군요. 오랜 시간 동안 주의를 주었으며 앞으로 수행에 전념하도록 충고하였으니 앞으로는, 아니 적어도 얼마 동안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부상을 입은 다른 파다완들과 그들의 마스터들에게도 직접 찾아가 정중한 사과의 말을 전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10대 초반 피 끓는 나이의 파다완이라면 이런 일을 한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쁠 것 없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저만 해도 스피더를 탈취해 날진 않았지만 술집에서 곤드레만드…….지금 마스터의 위치에 오른 수많은 훌륭한 제다이들도 어린 파다완 시절에는 그런 말썽을 한번쯤 피워보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점과 이번 사고가 파다완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조금이나마 선처해주시길 바랍니다.

포스가 함께 하길
오비완 케노비

편지 3
제다이 템플 평의회 귀하
어제 제 마스터가 회의에 참가하지 못하신 것은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마스터와 함께 스피더를 몰고나갔다가 파티를 준비 중이던 가정집 뒷마당에 스피더를 들이박았거든요. 정말 제 잘못입니다. 진심으로 반성 중입니다. 마스터는 그렇게 수직으로 하강하지 말라고 말리셨는데, 제가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거든요. 조금만 빨리 조종간을 잡아당겼더라면 이런 일은 안 생겼을 텐데 말입니다.
게다가 조수석에 앉아있던 마스터 케노비가 부상을 당하셔서 더더욱 면목 없습니다. 아, 하지만 그리 세게 박은 건 아닙니다. 마스터가 다치신 건 사고 때문이 아니에요. 아무리 포스가 강하다 해도 그 뒷마당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모두 미중년 수염패치였다는 걸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냥 데려와 달라고만 해서….. 어, 정말로, 진짜로 그럴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마스터는 처음에 그 사람들에게 끌려 나가시더니 나중에는 라이트세이버를 휘두르시대요? 혹시 일반인에게 라이트세이버를 휘둘렀다는 죄명으로 마스터가 징계에 처해질지도 몰라서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 상황에서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정당방위였어요.
마스터 케노비께서는 아직도 의무실에 누워 계시며, 저도 아직 면회를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빨리 쾌차하셔야 할 텐데요. 이로 인해 제다이 평의회에 염려를 끼쳐드리고 진행해야할 일의 진척을 늦추게 된데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께서는 곧 나으실 겁니다. 너무 걱정마시고요. 코렐리아 산 복숭아를 좋아하시니 문병 선물은 그걸로 부탁드립니다.

포스가 함께하시길
아나킨 스카이워커

편지 4
제다이 템플 평의회 귀하

……….@#$&$&#…….@#$^37…….%^&*!@……그 빌어먹을 자식을!!!! @#R%@#&@

오비3*$ %&!@#$

별첨 서신
제다이 템플 평의회 귀하
병실에 누워계신 마스터 케노비는 현재 도저히 서신을 쓰거나 전달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마스터 케노비는 상당히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이며 처음 의무실로 실려 왔을 때에는 수염과 옷가지가 절반 정도 뜯겨져 나간 상태였습니다. 또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라이트세이버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에 대해 상당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면회는 한동안 금지이나, 마스터 요다와 마스터 윈두께서는 특별히 오늘 오후 의무실로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포스가 함께 하시길
힐러 샤말란 코스

편지 5
파다완 아나킨 스카이워커 귀하
며칠 전 귀하가 새로 보급 받은 스피더를 정기점검 하던 중 시가 1천 크레디트에 상응하는 최신형 파워 부스터가 설치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파다완의 용돈 수준을 고려해볼 때 지나친 물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납득할만한 설명을 기다리겠습니다.

포스가 함께 하시길
QW1-9 정비부서 샤 칼라트 파

플루토님 감사합니다!!!

그림 못 그리는 게 서러울 때….ㅠ.ㅠ

아핫, 어제 플루토 님께 아주 멋진 선물을 받았습니다. ^^*
다름아닌…….




여왕님 레이아!!!!!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 날카로운 눈이 예술입니다요!
“누군가 그려주세요!”라고 징징거린 보람이 있었군요!!!! >.<

플루토 님,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스타워즈 30제] 1. 내기

1. 내기

그날은 둘 다 정찰 임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공주가 날 쳐다보는 눈빛이 영 심상치가 않아. 아, 거기 케이블 하나만 던져줘.”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여깄어요.”
“헛소리라니, 무슨 소리야. 넌 경험이 없어서 그런 모양인데, 그 정도면 눈치 까야지. 지난번에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옆에서 우물쭈물하는 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더라니까. 아무래도 언젠가 둘이 있을 기회를 만들어봐야겠어.”
“지난번에도 그렇게 깝죽대다가 레이아가 모는 톤톤에 밟힐 뻔 하지 않았어요? 아, 추이, 그건 연결하면 안 돼.”
“여심을 모르는구나, 꼬마야. 그건 부끄러워서 그런 거란다. 악, 안 돼, 추이 이 멍청아! 그건 연결하면 안 된다니까!”
“두 번 부끄러워했다간 데이트도 하기 전에 오징어가 되겠군요. 누누이 이야기하는데, 레이아는 당신한텐 관심이 없다니까요.”
“훗, 그건 네 희망사항이겠지. 질투하는 거냐? 으악, 추이~~~!!! 전기 통했잖아!”
“난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구요. 한이야말로 ‘희망사항’에 집착하는 거 아니에요? 애꿎은 추이 잡지 말아요, 한. 아까 회로 거꾸로 연결한 거 당신이에요.”
“이런 제기랄. 아, 그러니까 아까 하던 이야기 말인데. 공주도 내 매력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된 게 틀림없다니까.”
“무슨 매력이요? 돈 좋아하는 거? 잔머리 굴리는 거? 느끼한 거? 건달 같은 거?”
“루크, 이 애송이 친구야. 원래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좋아한단다. 맨날 싫다싫다 그러는 주제에 예기치 못한 순간에 허리를 휙 잡아채서 품에 안으면 순순히 입술을…..”
“레이아라면 차라리 카페트한테 키스를 할 걸요. 아, 미안, 추이. 너 말고.”
“오호, 그래애? 내기할래?”
“무슨 내기요?”
“공주가 누구한테 키스하는지?”
“뭘 모르시는 모양인데요, 한. 난 키스 정도는 레이아와 일상적으로 나누고 있어요.”
“야야, 빰에다가 쪽!이 무슨 키스냐. 그건 뽀뽀라고 한단다, 아가야. 자고로 진짜 키스란 살과 살을 맞대고 뜨거운 타액과 타액을…….시끄러, 추이. 루크도 이제 어른이라고. 이 정도로 얼굴이 빨개지면 그거야말로 창피해야할 일이지.”
“레이아를 내기 대상으로 삼다니 그거야 말로 건달들이나 할 짓인데요. 아, 아냐, 알투. 나 아픈 거 아냐.”
“꽁무니 빼는 거냐?”
“꽁무니는 무슨. 알투, 나 아파서 열나는 거 아니라니까.”
“자신 없다 이거지? 뭐, 당연하겠지. 공주는 날 좋아하거든.”
“한………..나중에 후회할 말은 안하는 게 좋아요.”
“후회는 뭔 후회? 내기를 해도 당연히 내가 이길 텐데.”
“오호, 진짜 자신만만한데요? 정말로 나중에 후회 안하죠?”
“당연하지. 아, 추이 거기 공구상자 좀 줘.”
“좋아요. 하죠, 내기! 누가 레이아한테 진.짜. 키스를 받나.”
“좋았어! 당연히 이길 테니까 좀 큰 걸 걸어볼까? 천 크레딧?”
“으아, 어차피 돈이에요? 좀 실용적인 걸로 합시다, 실용적인 걸로.”
“돈보다 더 실용적인 게 어디 있다고 그러냐. 보초 대신 서 주기? 우주선 부품?”
“보초 서다 장군님한테 걸리면 낭패고, 팔콘 부품이야 고물상한테 거저 준다 그래도 안 가져갈 거고…..으음, 뭐 좋은 거 없나.”
“아아, 맞다, 맞다. 내기에 이긴 사람이 시키는 거 무조건 하기, 어때?”
“엑?”
“왜, 불안하냐?‘
“그럴 리가요! 어차피 내가 이길 테니까 상관없어요. 아얏!”
“푸하하하하하하하! 좋아, 내가 이기면 널 발가벗겨서 기지 밖으로 쫓아낼테다!”
“아, 걱정 말아요. 난 라이트세이버 켜놓고 그 위에서 맨발로 탭댄스 추라고 할 테니까.”
“증인은 츄이로 할까?”
“음, 역시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오호,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라. 그거 좋은데. 도장 쾅쾅 찍고도 남겠어. 누가 이기든 간에 나중에 앙심 품기 없기다. ‘그녀’의 선택이니까 말이야. 오케이? 으흐흐흐흐, 뭐야, 추이, 너 지금 비웃는 거냐? 두고 보라고. 누가 이길지.”
“아, 예. 그럼요. 허세 부리지말고 발바닥 강화 훈련이나 해 두는 게 좋을걸요. 어, 뭐라고, 쓰리피오? 레이아가 불러? 오호, 역시 당신보다는 내가 더 보고 싶은 모양이네요, 한. 그럼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래그래, 가서 공주랑 소꿉장난이나 하고 오라고, 어른 역할은 내가 다 해줄테니까 말이야.”

루크가 왐파에게 납치[????]당한 건 그 다음 날의 일이었다.




[스타워즈 30제] 22. 고백

스타워즈 30제 가운데 22. 고백편입니다.

……….쓰다보니 왠지 고백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한 이야기가 된 듯 합니다만……
거기다가 이상하게 호러물의 분위기가 물씬……크헉.
납량특집이라고 생각하며 읽어주십시오. ^^*


[#M_생각보다 길어져 접습니다.|닫아주세요|22. 고백

오늘은 내 열 번째 생일이다. 오늘 아침, 아버지는 어딘가 약간 어두운 얼굴로 내게 축하의 말을 건네셨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아버지, 어째서 그런 표정을 하고 계세요? 나는 옛날 옛적,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이런 데에는 눈치가 빨랐더랬다. 아버지가 눈웃음을 지으시더니 말씀하셨다. 네가 너무나도 빨리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제 금방 자라서 내 곁을 떠나게 되지 않겠니. 그래서 나는 말씀드렸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빨리 크면 그만큼 아버지 일을 더 많이 도와드릴 수 있잖아요. 아버지는 다시 웃으셨다. 정말 고맙구나. 난 정말 자식복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오늘 저녁에는 둘이서 아주 멋진 식사를 하도록 하자. 커다란 케이크에, 과일을 많이 얹은 것으로. 그리고…..오늘은 네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마. 네가 어른이 된 기념으로 말이다, 레이아. 아버지는 그 커다란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시더니, 등을 돌리고 떠나셨다. 넓고 포근한 등을 돌리고.

나는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난 분명 알고 있다.

그건 내가 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그 때 나는 편찮으신 엄마의 침대 옆에서 데이터 패드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엄마는, 무척 아름다우신 분이었지만 당시 몸이 많이 약해서 침대에 누워계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 옆에서 무언가를 하며 놀곤 했다. 나는 상냥한 엄마가 좋았다. 그 나이 때 꼬마들이라면 다들 그렇듯이.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멍하니 앉아 침대 위의 엄마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유 따위는 모른다. 엄마가 갑자기 평소보다 좀 더 괴로운 듯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한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 장소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노라면 시야가 막 소용돌이치는 느낌, 누구라도 겪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눈도 한번 깜박이지 않고 나는 그렇게 앉아있었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마치 한 가닥 빛줄기가 비추듯 눈앞이 환해졌다. 꼭 엄마에게만 모든 조명이 집중되는 것 같았다. 엄마의 신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이제는 거의 비명에 가깝게 들렸다. 평소라면 시녀나 항상 대기하고 있는 의료 드로이드를 불렀겠지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짓도 안 하고, 그저 바라보았다. 이유는 모른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엄마가 있는 힘껏 얼굴을 찡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나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엄마는 마치 맑은 여름날 우리집 지붕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처음으로 눈을 깜박였다. 엄마가 그렇게 눈부시게 빛나는 건, 엄마가 하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엄마는 그 때 푸른색 잠옷을 입고 계셨으니까. 그리고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그건 엄마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엄마가 아니었다. 그녀는 엄마보다 훨씬 젊고, 훨씬 작았고, 훨씬 가냘펐다. 그리고 훨씬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엄마였다. 우리 엄마였다. 왠지 모르지만, 그건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울고 있었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하얀 옷의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귀를 쫑긋 기울였다. 제발…….아나……….엄마는 몸을 심하게 뒤틀었다. 나는 엄마가 이불을 차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하얀 옷의 엄마는 이불을 덮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 작은 엄마가,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뺨 위로 한 방울, 눈물이 굴러 떨어지는 게 보였다. 엄마는 눈을 감더니, 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 어딘가 많이 힘든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멈추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하얀 옷의 엄마는 이제 잠이 들었는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디선가,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아장거리며 엄마의 침대 옆으로 걸어갔다. 엄마가 주무신다면, 아까 몸을 뒤척이느라 헐거워졌을지 모를 담요를 다시 덮어주기 위해서였다. 침대로 가까이 다가가자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익숙한 얼굴의 엄마가 잠들어 있었다. 푸른 옷을 걸친, 내가 아플 때 품에 안고 포근하게 얼러주는 우리 엄마가. 나는 잠시 동안, 엄마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하얀 옷의 엄마와는 비슷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 엄마의 침대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어쩌면 엄마가 침대 밑에 또 다른 엄마를 숨겨두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 엄마였다. 푸른 옷의 엄마도 우리 엄마였다. 나는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탓에 오히려 백지가 되어버린 머리를 감싸 안고, 나는 엄마의 방을 나왔다. 엄마가 둘일 수도 있나? 아빠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실까? 혹시 아빠가 모른다면 아빠한테 알려드려야 하나? 하지만 나는 아빠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정원으로 나왔다. 햇살이 눈부셔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햇빛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발밑에 나란히 줄지어 심어져 있는 푸른색의 꽃들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아이는 죽을 거야. 저거, 세 번째 거랑 여덟 번째 거. 뽑아서 다른 데 심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야. 나는 그 때에도 그런 데 감이 좋았더랬다.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어떻게 하면 저 세 번째 꽃송이를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건, 나흘 뒤의 일이었다.

내가 아빠의 손을 붙잡고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던 게 기억난다. 엄마는 작은 상자 안에 누워, 어딘가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 어제까지 내게 미소지어주던 입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무심코 엄마의 입술에 손을 대 보았다. 차가웠다. 아주 많이. 하지만 엄마는 머리에 흩뿌려진 꽃들 덕분인지 정말 예뻐 보였다. 침대에 누워 계실 때보다도 훨씬 더. 수수한 푸른색 드레스도 엄마한테 정말 잘 어울렸다.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저렇게 배가 나왔어요? 아빠는 깜짝 놀란 듯 나를 쳐다보셨다. 배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레이아? 드레스 밑에 뭘 넣었나요? 배가 동그랗잖아요. 왜 그랬어요? 안 그래도 창백한 아빠의 얼굴이 더더욱 하얘졌다. 내 손을 꼭 붙들고 있는 아빠의 손이 조금씩 떨리더니, 아까보다도 더욱 세게 내 손을 눌러왔다. 레이아, 엄마는 예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으셨단다. 아주 편안하게, 고통 없이 떠나셨거든. 다시 한번 엄마의 모습을 잘 보렴. 네가 뭔가 착각한 게 아닐까 싶구나.

나는 다시, 눈에 익은 엄마의 얼굴과 가슴과 배를 쳐다보았다. 머리의 화관은 그대로였지만, 분명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대로 날씬한 모습이셨다. 하얀색 드레스가 눈부셨다. 하얀색.

나는 아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누워있는 엄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깨달았다. 저건 우리 엄마가 아냐. 아니, 분명 우리 엄마야, 하지만 우리 엄마가 아냐. 나는 따뜻한 아빠의 손을 꼭 쥐었다. 우리 아빠야. 하지만 우리 아빠가 아냐.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평소에 내가 울면 다들 달려와 어떻게든 날 그치게 하려고 했건만, 이번만큼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심지어 옆에 서 있는 아빠마저도. 나는 더욱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나를 안아 올려주었다. 나는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빠의 옷깃이 내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드는 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우리 엄만데, 우리 엄마가 아냐. 우리 아빠지만, 우리 아빠가 아냐.

그래, 난 오늘 밤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고 있다.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원래부터, 이런 일에는 감이 좋았으니까. 내 예감은 빗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고민하는 부분은, 과연 오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토록 감춰온 이야기를 듣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까 하는가이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고백해버릴까? 아니, 안 돼. 그것만은 안 된다. 아버지는 슬퍼하실 거다. 아주 많이. 그것만은 싫다. 나는 아버지의 슬픈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버지가 오늘 밤 직접 말씀하실 때까지,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차마 오늘 말씀하지 못하신다 해도, 결코 아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윈터가 부르러 왔다. 저녁 식사가 준비된 모양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아버지를 만나러 갈 채비를 한다. 아버지가 이제껏 마음 속 깊이 숨겨놓은 이야기를 들으러. 모두 알지만 전혀 모르는 척 내 마음 속에 간직해온 이야기를 들으러. 하지만 오늘 밤에는, 절대로 울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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