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30제] 22. 고백

스타워즈 30제 가운데 22. 고백편입니다.

……….쓰다보니 왠지 고백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한 이야기가 된 듯 합니다만……
거기다가 이상하게 호러물의 분위기가 물씬……크헉.
납량특집이라고 생각하며 읽어주십시오. ^^*


[#M_생각보다 길어져 접습니다.|닫아주세요|22. 고백

오늘은 내 열 번째 생일이다. 오늘 아침, 아버지는 어딘가 약간 어두운 얼굴로 내게 축하의 말을 건네셨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아버지, 어째서 그런 표정을 하고 계세요? 나는 옛날 옛적,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이런 데에는 눈치가 빨랐더랬다. 아버지가 눈웃음을 지으시더니 말씀하셨다. 네가 너무나도 빨리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제 금방 자라서 내 곁을 떠나게 되지 않겠니. 그래서 나는 말씀드렸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빨리 크면 그만큼 아버지 일을 더 많이 도와드릴 수 있잖아요. 아버지는 다시 웃으셨다. 정말 고맙구나. 난 정말 자식복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오늘 저녁에는 둘이서 아주 멋진 식사를 하도록 하자. 커다란 케이크에, 과일을 많이 얹은 것으로. 그리고…..오늘은 네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마. 네가 어른이 된 기념으로 말이다, 레이아. 아버지는 그 커다란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시더니, 등을 돌리고 떠나셨다. 넓고 포근한 등을 돌리고.

나는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난 분명 알고 있다.

그건 내가 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그 때 나는 편찮으신 엄마의 침대 옆에서 데이터 패드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엄마는, 무척 아름다우신 분이었지만 당시 몸이 많이 약해서 침대에 누워계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 옆에서 무언가를 하며 놀곤 했다. 나는 상냥한 엄마가 좋았다. 그 나이 때 꼬마들이라면 다들 그렇듯이.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멍하니 앉아 침대 위의 엄마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유 따위는 모른다. 엄마가 갑자기 평소보다 좀 더 괴로운 듯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한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 장소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노라면 시야가 막 소용돌이치는 느낌, 누구라도 겪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눈도 한번 깜박이지 않고 나는 그렇게 앉아있었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마치 한 가닥 빛줄기가 비추듯 눈앞이 환해졌다. 꼭 엄마에게만 모든 조명이 집중되는 것 같았다. 엄마의 신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이제는 거의 비명에 가깝게 들렸다. 평소라면 시녀나 항상 대기하고 있는 의료 드로이드를 불렀겠지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짓도 안 하고, 그저 바라보았다. 이유는 모른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엄마가 있는 힘껏 얼굴을 찡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나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엄마는 마치 맑은 여름날 우리집 지붕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처음으로 눈을 깜박였다. 엄마가 그렇게 눈부시게 빛나는 건, 엄마가 하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엄마는 그 때 푸른색 잠옷을 입고 계셨으니까. 그리고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그건 엄마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엄마가 아니었다. 그녀는 엄마보다 훨씬 젊고, 훨씬 작았고, 훨씬 가냘펐다. 그리고 훨씬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엄마였다. 우리 엄마였다. 왠지 모르지만, 그건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울고 있었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하얀 옷의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귀를 쫑긋 기울였다. 제발…….아나……….엄마는 몸을 심하게 뒤틀었다. 나는 엄마가 이불을 차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하얀 옷의 엄마는 이불을 덮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 작은 엄마가,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뺨 위로 한 방울, 눈물이 굴러 떨어지는 게 보였다. 엄마는 눈을 감더니, 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 어딘가 많이 힘든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멈추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하얀 옷의 엄마는 이제 잠이 들었는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디선가,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아장거리며 엄마의 침대 옆으로 걸어갔다. 엄마가 주무신다면, 아까 몸을 뒤척이느라 헐거워졌을지 모를 담요를 다시 덮어주기 위해서였다. 침대로 가까이 다가가자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익숙한 얼굴의 엄마가 잠들어 있었다. 푸른 옷을 걸친, 내가 아플 때 품에 안고 포근하게 얼러주는 우리 엄마가. 나는 잠시 동안, 엄마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하얀 옷의 엄마와는 비슷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 엄마의 침대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어쩌면 엄마가 침대 밑에 또 다른 엄마를 숨겨두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 엄마였다. 푸른 옷의 엄마도 우리 엄마였다. 나는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탓에 오히려 백지가 되어버린 머리를 감싸 안고, 나는 엄마의 방을 나왔다. 엄마가 둘일 수도 있나? 아빠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실까? 혹시 아빠가 모른다면 아빠한테 알려드려야 하나? 하지만 나는 아빠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정원으로 나왔다. 햇살이 눈부셔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햇빛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발밑에 나란히 줄지어 심어져 있는 푸른색의 꽃들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아이는 죽을 거야. 저거, 세 번째 거랑 여덟 번째 거. 뽑아서 다른 데 심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야. 나는 그 때에도 그런 데 감이 좋았더랬다.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어떻게 하면 저 세 번째 꽃송이를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건, 나흘 뒤의 일이었다.

내가 아빠의 손을 붙잡고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던 게 기억난다. 엄마는 작은 상자 안에 누워, 어딘가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 어제까지 내게 미소지어주던 입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무심코 엄마의 입술에 손을 대 보았다. 차가웠다. 아주 많이. 하지만 엄마는 머리에 흩뿌려진 꽃들 덕분인지 정말 예뻐 보였다. 침대에 누워 계실 때보다도 훨씬 더. 수수한 푸른색 드레스도 엄마한테 정말 잘 어울렸다.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저렇게 배가 나왔어요? 아빠는 깜짝 놀란 듯 나를 쳐다보셨다. 배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레이아? 드레스 밑에 뭘 넣었나요? 배가 동그랗잖아요. 왜 그랬어요? 안 그래도 창백한 아빠의 얼굴이 더더욱 하얘졌다. 내 손을 꼭 붙들고 있는 아빠의 손이 조금씩 떨리더니, 아까보다도 더욱 세게 내 손을 눌러왔다. 레이아, 엄마는 예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으셨단다. 아주 편안하게, 고통 없이 떠나셨거든. 다시 한번 엄마의 모습을 잘 보렴. 네가 뭔가 착각한 게 아닐까 싶구나.

나는 다시, 눈에 익은 엄마의 얼굴과 가슴과 배를 쳐다보았다. 머리의 화관은 그대로였지만, 분명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대로 날씬한 모습이셨다. 하얀색 드레스가 눈부셨다. 하얀색.

나는 아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누워있는 엄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깨달았다. 저건 우리 엄마가 아냐. 아니, 분명 우리 엄마야, 하지만 우리 엄마가 아냐. 나는 따뜻한 아빠의 손을 꼭 쥐었다. 우리 아빠야. 하지만 우리 아빠가 아냐.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평소에 내가 울면 다들 달려와 어떻게든 날 그치게 하려고 했건만, 이번만큼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심지어 옆에 서 있는 아빠마저도. 나는 더욱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나를 안아 올려주었다. 나는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빠의 옷깃이 내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드는 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우리 엄만데, 우리 엄마가 아냐. 우리 아빠지만, 우리 아빠가 아냐.

그래, 난 오늘 밤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고 있다.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원래부터, 이런 일에는 감이 좋았으니까. 내 예감은 빗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고민하는 부분은, 과연 오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토록 감춰온 이야기를 듣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까 하는가이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고백해버릴까? 아니, 안 돼. 그것만은 안 된다. 아버지는 슬퍼하실 거다. 아주 많이. 그것만은 싫다. 나는 아버지의 슬픈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버지가 오늘 밤 직접 말씀하실 때까지,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차마 오늘 말씀하지 못하신다 해도, 결코 아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윈터가 부르러 왔다. 저녁 식사가 준비된 모양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아버지를 만나러 갈 채비를 한다. 아버지가 이제껏 마음 속 깊이 숨겨놓은 이야기를 들으러. 모두 알지만 전혀 모르는 척 내 마음 속에 간직해온 이야기를 들으러. 하지만 오늘 밤에는, 절대로 울지 않을 것이다.

_M#]

[스타워즈 30제] 22. 고백”에 대한 14개의 생각

  1. qwan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루크보다는 어쩐지 레이아에게서 인생의 깊이가 깊게 느껴져요. 루크님의 글을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둘 다 좋아하긴 하지만…이 글을 보니 레이아가 더 좋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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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u_k

    공주님 너무 멋지십니다. 어릴 때도 저토록 강하셨다니!
    (그런데 어디가 호러물이라는건가요? 통 감이 안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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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ㅁAㅁ

    에피6의 "아름다운 분이셨지요. 하지만 어쩐지 슬퍼보였어요." 라는 대사는, 이 글로 인해 비로소 에피3과 이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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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rucien

    공주님…ㅠㅠ/ 과연. 에피 3와 에피 6을 이렇게 이어지게도 할 수 있군요. 잘 보았습니다. 아아. 공주님. 훌륭하게 성장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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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lukesky

    asura / 레이아는 엄마를 닮아서 어린시절부터 똑똑하고 어른스러웠을 것 같아요. 동시에 어린애적인 부분도 조금 있고….
    THX1138 / 레이아는 루크보다 훨씬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겠지요. T.T
    qwan / 예. 정치계에서 자란데다가, 어머니도 빨리 돌아가셨을 테니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루크보다 확실히 많은 걸 많이 보고 들으며 자랐을 것 같죠?
    yu_k / 공주님은 정말 여왕님이 될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아, 레이아가 환상을 보는 게 왠지 귀신보는 것 같지 않나요? 어제 새벽에 다 쓰고 읽어보는데 진짜 딱 공포영화 분위기가 나더라구요.
    ㅁAㅁ / 감독의 설정 미스를 팬들이 이런 식으로 이어나가는 거죠. ^^*
    몬드 / 아아, 공주니임!!!!!
    rucien / 훌륭하게 성장하실 겁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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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체샤고양이

    에피 3과 6사이의 간극을 이렇게 메워주시는군요. 강하고 씩씩한 공주님께도 포스는 늘 함께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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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곤도르의딸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겹쳐보는 10살의 소녀…(그것도 죽음 앞에서요.) 그런 잔혹한 힘을 견뎌나가는 레이아는 정말 레이아다워요. 잘 읽었습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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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lukesky

    돌균/ 스카이워커 집안에서 최강이라고 볼 수 있을걸, 레이아는.
    체샤고양이/ 그럼요…ㅠ.ㅠ 아마 레이아는 능력을 많이 죽이고 자라났을 것 같아요.
    사과주스/ 조숙하죠!
    세이/ 아나킨이 꿈을 꾸는 장면과 맞춰보려고 했는데..역시 역부족입니다.
    곤도르의딸/ 음,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다섯 살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어린나이라 오히려 충격도 컸고 동시에 깨달음도 빨랐다는 설정이지요.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코믹물을 쓰고 싶어요….아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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