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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Wars] DREAM- Back Side

DREAM – Front Side

전편의 미러 버전입니다.
길어져서 접습니다.


[#M_Dream – Back Side|less..|
그는 눈을 뜬다. 공허, 사방이 텅 빈 공허가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투박한 지평선. 휘파람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귓전을 스쳐 지나가며 두서없는 머리카락을 파헤친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하늘이 없다. 잿빛 천장이 찌푸린 얼굴로 공간을 우그러뜨리고 있을 뿐.

몽롱한 기시감이 가슴을 찌른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것이 있어야할 자리로 시선을 돌린다. 묵직한 형체 하나가 밤자락처럼 검은 망토를 모래 바람에 휘날리며 서 있다. 그는 한참동안 의자 깊숙이 걸터앉아 조용히 그 커단 등을 바라본다. 낯설지만,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뒷모습.

검고 고독한 등. 그리고 불투명한 얼굴.
그는 보이지 않는 저 얼굴을 안다고 생각한다.
청년의 얼굴이 눈앞에 또렷이 보이는 듯 하다.
그는 무심코 입을 연다.

“여전히 오만한 표정을 하고 있구나, 옛 제자야.”

느닷없이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청년이 황급히 몸을 돌린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길고 검은 망토 자락이 서둘러 반원을 그리며 춤춘다.
멀리서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눈가를 찡그린다. 하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치 사방에 눈이 달린 것처럼, 모든 각도로 비치는 청년의 얼굴이 뇌리에 인식된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전지전능한 시선으로 제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청년은 지난번 그와 헤어진 이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자 갈기처럼 탐스러운 갈색 머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오만한 턱과 고집 센 입술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완고함을 흘린다. 눈 옆의 희미한 상저 자국이 빛을 발하며 얼굴에 강한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그 푸른 눈동자, 절대로 곁눈질하는 법 없는 그 눈동자가 불꽃을 넘실대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태양이라도 되는 듯.

“그래, 그리고 여전히 어린애 같은 얼굴을 하고 있구나.”

버릇처럼 비꼬는 언사가 튀어나온다.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이미 희끗희끗 해져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하나둘 피어오르는 주름살의 존재를 느낀다. 한때 강인했던 자신의 손이, 이제는 섬세함이라고는 망각의 개울에 던져버린 듯 거칠게 무뎌졌음을 실감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늙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의 옛 제자는 전혀 늙지 않았다.

전혀 변하지 않았어.

“하지만 당신은 많이 변했군, 옛 마스터여.”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옛 제자가 응수해온다. 그리운 목소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꿈속에서 들어왔던 목소리. 이런 만남이 아니라면 벌써 오래 전에 잊어버렸을 목소리. 더 이상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 청년의 목소리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가느다랗게 떨리기 시작한다.

그는 눈을 감는다.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똑같은 장면을 보고 똑같은 일을 겪고 똑같은 결과를 본다. 그는 과거를 경험하듯 미래를 경험한다. 미래를 보듯 과거를 본다.

그래, 바로 지금.

바닥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한, 굵고 묵직한 숨소리가 말한다.

“당신은 죽었어.”

분노와 증오. 망치처럼 그의 몸을 내려치는 격렬함의 무게. 이 목소리의 주인은 그의 제자가 아니다. 그의 옛 제자는, 그의 옛 동료는, 이런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이건 그가 아는 목소리가 아니다. 아나킨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래.”

그는 천천히,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너의 환상일지도 모르지.”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눈앞에 선 커다란 검은 형체에게로. 얼마 전까지 그의 어린 파다완이었고, 그의 어린 친구였으며, 그의 형제였던 자에게.
이제는 그의 적이 된 자를 향해.

“하지만 너도, 과연 살아있는 것일까?”

그는 발을 멈춘다. 마주하고 있는 청년의 얼굴이 실룩거린다. 금방이라도 욕설을 뱉어낼 것 같은 입술이 으르렁거린다. 그는 조용히, 옛 제자의 아름다운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너도, 나의 환상은 아닐까?”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나킨.”

순간적으로 커다란 검은 몸이 움찔거린다.

“아니. 베이더.”

한숨을 내쉰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다.

“그래, 내가 잘못 봤다. 넌 아나킨이 아냐. 적어도 더 이상은 아니지.”

자신의 눈을 속이고, 마음을 속이고, 아무리 진실을 덮어버리고 싶더라도,
진실은 진실이다.

“아무리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너는 죽은 자다. 아무 곳에도 존재치 않는, 꿈속의 추억. 그 뿐이야.”

그래서 그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내가, 너를 죽였구나.”

그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다시금 눈을 감고 싶다. 그러나 그는 결코 고개를 떨구지 않는다. 의무감이 그의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그는 처연하게 서서 기다린다. 스스로 자초한 결과를 의연히 맞이한다.

청년의 눈동자가 샛노랗게 빛나는 순간, 검은 몸뚱이가 하늘 높이 부풀어 오른다. 익숙한 얼굴 위에 낯설고 차가운 마스크가 내려 꽂힌다. 탁한 핏빛이 검은 인공 안구 위에서 번들거린다. 날카로운 기계음이 사납게 튀어 오른다. 사막 깊숙이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렇게 거듭해서 친구를 잃는다.

회색빛 천정을 뚫고 나갈 정도로 거대해진 그 사악한 기계덩어리가 무기를 빼어든다.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든다. 그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그것을 올려다본다.

고통에는 익숙해져있다.
그는 잠자코 운명을 기다린다.
붉은 칼날이 그를 가로지르기를.







그는 눈을 꼭 감았다. 이것이 꿈이라면, 눈을 감았을 때에만 확실한 결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미 잠에서 깨어났음을, 슬픈 꿈은 이미 끝났으며 가혹한 현실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천천히,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10년 동안 보아온 갈색 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벤은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키며 조그맣게 신음을 내뱉었다. 비현실에서의 고통은 현실 세계에도 못지않은 여파를 끼쳤다. 완벽한 제다이라면 그러한 부조화를 극복할 수 있으련만, 그는 더 이상 제다이가 아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두 손에 피곤한 얼굴을 파묻었다. 베이더를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옛 제자를 칼로 베고 은둔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만 해도 그는 심심찮게 꿈속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더랬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붉은 행성에서 청년은 그에게 기계 팔을 내밀며 절규했다. “도와줘요. 도와줘요, 오비완.” 핏발어린 눈동자가 측은해 가슴에 피멍이 들 정도로 처절하게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러나 그는 꿈속에서조차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에.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며 교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도 과거를 바꾸려들지 않았다. 포스에 사무치게 후회한다 하더라도, 해야 했던 일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도움을 울부짖던 청년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구석에 앉아 눈물짓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동안 그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아나킨을 내려다보는 꿈이 계속되었다.

벤은 청년이 눈물과 고독을 극복하고,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로 똑바로 걷기 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의 표정이 단단해지고 그의 몸짓과 걸음걸이가 위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나킨이 베이더로, 청년의 얼굴이 검은 마스크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냉소 또한 늘어갔다. 자신의 무기력을 탓하며.

꿈속의 베이더가 자신을 관찰하는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과 동시에 꿈의 간격 또한 서서히 늘어갔다. 이렇게 죽어본 것은 실로 몇 년 만이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나타난 베이더는 지난번과 달리 일말의 주저도 없이 라이트세이버를 휘둘렀다.

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몇 년 뒤의 베이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어쩌면 오늘이 아나킨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니었을까. 완전히 어둠에 잠식되면, 더 이상 베이더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그는 징조를 무시하도록 교육받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베이더의 꿈은 이중의 칼날이었다. 그는 아나킨을, 아니 베이더를 만날 때마다 새록새록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에 중독이라도 된 듯 잠자리에 들 때마다 헛된 기대를 품었고, 동시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될까봐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다. 발각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베이더 또한 그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소년의 정체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공포.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실수만은 절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벤은 창문을 열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누르스름한 지평선 너머 오렌지색 태양 하나가 슬며시 얼굴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곧 또 하나의 태양이 나타나면 언제나 다름없이 타투인의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언제나와 다름없이.
때가 올 때까지.

_M#]
덧. 아아, 역시 내공이 너무 딸려요……ㅠ.ㅠ 글 잘쓰시는 분들이 진정 부럽군요.

[Star Wars] DREAM – Front Side

조금 길어져서 접습니다.

[#M_ more.. | less.. | 그는 주위를 둘러본다. 하얀 방. 그는 하얗고 텅 빈 방 한가운데 홀로 서 있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네 개의 벽과 머리 위 천장이 온 몸을 짓누른다. 숨이 턱 막혀온다. 자신이 들이내뱉는 숨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힌다. 터럭 하나하나가 곤두서는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고요한 방 안에서, 그는 자신의 숨소리에 눌려 질식해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여전히 오만한 표정을 하고 있구나, 옛 제자야.”

느닷없이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황급히 몸을 돌린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길고 검은 망토 자락이 서둘러 반원을 그리며 춤춘다. 
희미한 갈색 형체가 방구석 의자 위에서 말을 걸어온다. 뭉글뭉글 희미하던 형체가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을 갖춰가는 동안,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다가간다.

그는 얼굴을 찡그린다. 낯설지만 익숙한 누군가가 눈앞에 앉아 있다. 비스듬하게 팔걸이에 걸쳐진 팔꿈치. 한쪽 다리 위에 시원스레 꼬여있는 반대편 다리. 이마 위에 놓여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 등 뒤로 우아하게 늘어뜨린 포근한 로브 자락, 눈을 감고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눈에 익은 실루엣.

희끗희끗한 머리칼 아래 언제나 찌푸린 듯 고랑이 새겨진 미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는 슬며시 시선을 아래쪽으로 내린다. 비웃는 듯 마는 듯, 한쪽 구석을 미묘하게 치켜 올린 입술이 움직인다.

“그래, 그리고 여전히 어린애 같은 얼굴을 하고 있구나.”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본다. 그러나 그의 손끝에 느껴지는 것은 부드러운 피부가 아니라 딱딱한 금속. 아니, 느껴졌다는 것은 착각이다. 차가운 손이, 차가운 얼굴에 부딪쳐 갈 길을 잃는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검은 장갑에 뒤덮인 금속 손이 그를 올려다본다. 그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다시 눈길을 돌린다. 소름끼칠 정도로 낯선 눈동자가 그를 들여다보고 있다. 약간은 혼탁한, 바닥까지 가라앉은 녹회색 눈동자. 허무한 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나이 먹은 눈동자. 다시는 순수로 돌아갈 수 없는, 세상에 배신당한 눈동자.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아는 이들 중에는 저런 눈을 가진 자가 없다.
그에게 공포를 안겨줄 수 있는 눈을 지닌 자는.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당신은 많이 변했군, 옛 마스터여.”

그는 두 가지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담고 있는 내용. 이렇게 굵직한 기계음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다. 거칠고 허스키한 숨소리가 목덜미를 감싸고 있는 검은 가죽위로 흘러내린다. 

마스터? 
나의 마스터는 저 자가 아니다.
내가 알던 마스터는 저런 자가 아니다.
나의 마스터는………

오비완. 
오비완 케노비.

그는 깨닫는다. 
이건 꿈이다. 
케케묵은 속임수. 
정신의 나약한 부분만을 불시에 파고 들어와 심신을 좀먹는,
저급하고 초라한 생명체들의 전유물. 

갑자기 분노가 끓어오른다. 
감히, 감히, 감히!
그 분노를 분출하듯, 입술 사이로 거칠게 내뱉는다.

“당신은 죽었어.”
“그래.”

바스락거리는 소리 한 점 내지 않고, 죽은 자가 의자에서 일어난다.

“나는 너의 환상일지도 모르지.”

뚜벅. 뚜벅. 뚜벅.

“하지만 너도, 과연 살아있는 것일까?”

유령은 그의 얼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희끄무레한 손이 그의 턱을 감싼다. 슬프지만 차가운 시선이 그의 얼굴을 훑는다. 

“너도, 나의 환상은 아닐까?”
차갑지도, 따스하지도 않은 메마른 목소리. 몇날 며칠을 사막에서 보내고 모든 수분을 빼앗겨 시들어버린 듯한 목소리. 

“아나킨.”

뭐?“

“아니. 베이더.”

건조한 한숨. 

“그래, 내가 잘못 봤다. 넌 아나킨이 아냐. 적어도 더 이상은 아니지.”

따스한 손이 그의 얼굴에 작별인사를 고한다. 아니, 따스하다고 느낀 것은 착각이다. 그에게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너는 죽은 자다. 아무 곳에도 존재치 않는, 꿈속의 추억. 그 뿐이야.”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받아낸 듯한 얼굴의 옛 스승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내가, 너를 죽였구나.”

그 한 마디에,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 온 몸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 고통, 고통.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몸에 고통만이 그득하게 흘러넘친다.

죽여버릴테다, 죽여버릴테다, 죽여버릴테다, 죽여버릴테다, 죽여버릴테다, 죽여버릴테다, 죽여버릴테다, 죽여버릴테다!

그는 허리춤에서 제 2의 손을 끄집어내 손아귀에 쥔다. 새하얀 방이 붉은 물결로 넘실댄다.

“죽여버릴테다!”




그는 눈을 떴다. 언제나처럼 익숙한 검은 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차갑고 무거운 농도짙은 산소가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는 한두 번 길게 숨을 내쉰 다음, 묘하게 몽롱하고 불편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거운 마스크를 뒤집어쓰게 된 이후로, 그 쓰디쓴 죽음을 맛본 이후로, 그가 몸을 편히 누울 수 있는 곳은 이 방 뿐이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그때 이후 그는 정확한 의미로는 한번도 몸을 누여본 적이 없었다. 침대가 아닌 수면의자에서 수면을 취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방에서만큼은 검은 옷을 벗어던지고, 검은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무거운 생명유지장치 없이도 어느 정도 자력으로 호흡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만큼은 유일하게, 기계장치를 내던지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한번도 거울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했다. 기계 팔, 기계 다리, 언제 그것들이 붙어있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얼굴. 그래, 얼굴. 자신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어떤 표정을 할 수 있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는 몸뚱이의 일부가 되어 버린 듯한 호흡기 위에 과연 그의 얼굴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왠지 모를 충동에 이끌려, 그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 보았다. 마치 자신의 손이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갓난아기처럼 거리를 재보며, 천천히, 조심스레. 

무언가 딱딱한 것이 얼굴 거죽 위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황급히 얼굴에서 오른손을 떼어내어 내려다보았다. 거기 손이 있었다. 그에게 속한,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익숙한 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느껴지는 이 이물감은 뭐지?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한 항상 거기 붙어있던 손을 이용해, 이번에는 조금 익숙한 움직임으로 얼굴을 긁어 내렸다. 그의 명령에 충실하게 복종한 손끝에 축축한 물기가 묻어나왔다가 금세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그는 불쾌한 기분으로 손을 털어냈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뻑뻑한 눈꺼풀이 오늘따라 더욱 깜박이기 힘들었다. 이런 느낌은……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결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는 어느새 검은 갑옷을 들고 대기하고 있는 의료 드로이드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필요한 휴식은 모두 취했다. 잠시나마 인간이었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이제 다스 베이더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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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버전 Back Side는 언제 쓴다지………ㅠ.ㅠ 
아니, 것보다………제국의 그림자 번역은 언제하지….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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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가든 – 황제님을 모시는 착한 제다이가 되고 싶어요!

[스타워즈 30제] 4. 머리카락

scene 1:
전 은하계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코루스칸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서, 나부의 젊은 여성의원 파드메가 아름다운 갈색의 곱슬머리를 브러시로 빗어 내리고 있다. 흐뭇한 미소를 얼굴 가득 떠올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제다이 아나킨 스카이워커.

아나킨: 정말……..아름답군요.
파드메: (유쾌하게) 그건 내가 지금 사랑에 빠져있기 때문이야.
아나킨: 아니, 아니죠.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구요.
파드메: 그럼 단순히 네 눈에 콩깍지가 씌워서 그런 거란 말야?
아나킨: (장난스런 웃음기)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군요. 하하하하하!
파드메: 호호호호호호~~

두 연인의 웃음소리
페이드 아웃

scene 2:
전 은하계에서 가장 화려하지만 동시에 지저분하다는 코루스칸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서, 신공화국의 정치지도자 레이아 올가나 솔로가 아름다운 갈색의 긴 곱슬머리를 브러시로 빗어 내리고 있다. 평소처럼 약간의 냉소가 감도는 미소를 얼굴 가득 떠올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전 밀수꾼이자 신 공화국의 영웅 제너럴 한 솔로.

한: 정말……..길군.
레이아: 내 여성적인 매력을 보여주려면 머리라도 길러야 한다구요. 이걸 자르면 감독이 의회에 나갈 때도 황금비키니를 입어야 한다고 할지도 몰라요.
한: (걱정되는 목소리로) 그런데 레이아……언제쯤 끝내고 자러 올 거요?
레이아: 왼쪽 허리 부근까지 빗었으니까 한 두 시간만 더 기다려요. 아얏! 또 걸렸네.
한: (한숨) 하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밤중에 바리깡으로라도 밀어버릴까. 이래서야 언제쯤 2세를 본단 말야.
레이아: (눈을 치켜뜨고) 지금 뭐라고 했어요? 머리를 어쩐다구요?

레이아, 브러시를 한에게 집어 던진다.
점점 커지는 두 사람의 목소리.
페이드 아웃.

scene 3:
한밤중. 어린 부부가 화려한 침대에 누워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아나킨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끙끙거리며 뒤척이다가 갑자기 눈을 뜬다.

아나킨: 헉!
파드메: (졸린 목소리) 애니? 무슨 일이야? 좋지 않은 꿈이라도 꾼 거야?
아나킨: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자요, 파드메.
파드메: 무슨 일인데? 솔직하게 말해봐.
아나킨: ….꿈속에서….당신이 바리깡으로 머리를 시퍼렇게 밀고 빨간 카펫 위에서 다른 남자와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봤어요….
파드메: 난 머리를 밀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 그러니까 그건 개꿈이야.
아나킨: 아니오! 내가 약속할게요! 당신이 빡빡머리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어!

페이드 아웃.

scene 4:
한밤중. 아까까지 날카롭게 대치하던 부부가 결국 침대에 함께 누워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레이아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끙끙거리며 뒤척이더니 갑자기 눈을 뜬다.

레이아: 헉!
한: 응? 왜 그래? 무슨 일이오? 아니, 땀을 흘리고 있잖아! (허둥지둥 상체를 일으킨다) 레이아?
레이아: 아, 아악!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지 못한다) 으….으….으윽.
한: 레이아! 왜 이러는 거야! 혹시 지금 가위에라도 눌리는 거요? 안 좋은 미래라도 본 거요?
레이아: (힘들여 입을 연다) ….당신, 지금 내 머리카락 깔고 앉았어.

한의 비명소리와 함께 페이드 아웃.


++++

하지만 나탈리는…머리를 빡빡 밀어도 예쁘기만 하던걸요. ㅠ.ㅠ
에피 6 이워크 마을에서 레이아의 머리를 볼 때마다 저걸 어케 빗나….하고 생각했었죠. -_-;;;; 그거 풀고자면 진짜 대박일 듯.

[스타워즈 30제] 8. 불시착

예전에 써 놓은 것까지..드디어 30 개의 주제들 가운데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에피소드 3의 약발은 놀랍군요. ^^*

쓰고 나서 깨달았는데…..전 평생 마이너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모양입니다. 큿.

덧. 기술적 오류에 대해서는 태클 받지 않겠습니다. 저 같은 기계치가 대체 뭘 알겠습니까. -_-;;;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세요. T.T


[#M_[스타워즈 30제] 8. 불시착|닫아주세요|“이런 빌어먹을!” 빅스 다크라이터는 밑바닥까지 꼭꼭 눌러 담아 놓았던 짜증이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손에 들고 있던 드라이버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평소에 그렇게나 정비를 철저히 하기로 이름난 그였지만, 아주 작은 실수 하나가 심각한 사태를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지금처럼 뼈저리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아침에 스카이호퍼를 타고 나올 때까지만 해도 청명한 하늘이었다. 기계장치에 치명적인 모래 폭풍이 언제 불어올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타투인에서도 레이더를 사용하면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가지고 폭풍을 피할 수 있었다. 배터리는 충분했고 레이더는 완벽했다. 연료가 좀 간당간당해 보이긴 했지만 금세 돌아갈 예정이었으니 상관없었다. 심지어 정성들여 닦은 선체마저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하지만 빅스의 자랑스러운 비행선은 지금 모래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바보 같은 다크라이터, 어째서 예비용 배터리는 충전하지 않은 거지? 이래서야 루크 녀석에게 그렇게 잔소리를 할 자격이 없지 않나!

불행히도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유일한 이동 수단은 움직이지 않는다. 콕핏에는 비상용으로 들고 다닐 블라스터 하나 없었다. 무기 없이 타투인의 사막을 방황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여기가 어딘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바위산 너머 라스 농장에서 한참은 떨어진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대였다. 제일 가까운 수분 농장으로 향한다 해도 모래 산을 몇 개나 넘어야 하며 운이 좋으면 중간에 몇 달마다 한번씩 트레일러를 끌고 가는 자와 족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더 이상 운이 좋아지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해 보였다. 제길, 오늘따라 왜 그렇게 웜프 쥐를 사격하는 게 지겨웠던 걸까. 왜 하필이면 오늘, 이렇게 멀리까지 미친 듯이 날아보고 싶었던 거지?

빅스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컴링크를 두드려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기류에 휘말려 기체가 곤두박질치는 동안, 뭐가 문제였는지 스파크가 몇 번 일더니 배터리가 나가버렸다. 예비용 배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컴링크 역시 아무리 스위치를 올렸다 내려 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방전되면서 어딘가가 망가졌나 보다. 운송 수단은 움직이지 않고, 연락 수단도 없으며, 외부의 공격에 대비한 – 그는 죽어도 샌드피플한테 잡혀 죽고 싶지는 않았다 – 방어 수단도 없다. 그가 유일하게 지니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한 주먹의 예비식량이었다. 뭐, 사실은 간식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하겠지만. 정말로 누군가 우연히 사막 한 가운데를 지나가다가 이 불쌍한 미아를 주워주지 않는 한, 희망은 없어 보였다.

빅스는 두 개의 태양에서 내리쬐는 광선으로 달궈진 선체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부셨다. 그를 이 바닥과 키스하게 만들었던 모래바람은 이미 지평선 건너로 사라지고 없었다. 차라리 추락하면서 산산이 부서져버렸더라면 편하게 죽을 수 있었을 것을, 본능적인 조종 실력 덕분에 짧은 인생 더 힘겹게 마감하게 생겼군. 빅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제국 아카데미 합격증도 받아놓았는데, 빌어먹을.

갑자기 저 멀리 어디선가 기묘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몸에 소름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빅스는 저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타투인에서 태어나 타투인에서 자라났건만, 이런 기괴한 소리를 내는 짐승이 사막에 산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것은 분명 포식자의 울음 소리였다. 숨소리를 죽인 채, 시간이 있을 동안 조종석에 들어가 스카이호퍼의 블라스터로 대응하는 게 낫지 않을까 기회를 재는 사이 그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 서늘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빅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무얼 하는 거지?”
“으악!”
빅스는 그야말로 심장이 몸 밖으로 튕겨 나올 정도로 깜짝 놀랐다.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쳐드는 바람에 불안정한 자세가 무너져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는 천천히, 눈동자를 들어 목소리의 출처를 찾았다. 뾰족한 머리에 날개가 달린 듯한 어두운 형체가 눈앞에 서 있었다.

“어, 어, 어…….”
“괜찮나, 젊은이?”
그림자는 날개를 쳐들더니 뾰족머리를 뒤로 젖혔다. 아니, 후드를 벗었다. 빅스는 뜨거운 모래바닥에 엉덩이와 손바닥을 대고 앉아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스피더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인간의 형체를 한 그림자가 고개를 둘러보며 말했다. 빅스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어, 예. 예.”
“다친 곳은 없고?”
“아, 네, 없습니다.”
빅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의 모래를 털고 될 수 있는 한 상대방을 자세히 보려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여기저기 헤져 너덜너덜한 갈색의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정신없이 헝클어진 백발, 주름진 얼굴. 웃고 있는 건지 찡그리고 있는 건지 모를, 미묘한 표정이 담긴 얼굴.

“어, 누구시죠?“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할 말인 것 같은데.”
“아, 전 빅스 다크라이터라고 합니다. 앵커헤드 쪽에 살아요.”
“그 말썽꾸러기 무리들? 난 벤 케노비라고 하지.”
뭔가 희미한 기억이 빅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그 미친 노친……..흡.”
순간적으로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 것 같았다.
“내 평판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으니 굳이 확인해주지 않아도 돼. 그건 그렇고…..”
그는 빅스의 스카이호퍼를 올려다보았다.
“뭐가 문제지?”
“배터리가 나갔어요.”
빅스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소문대로 정신이 나간 노인네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무엇보다 이 허허벌판에 말이 통하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었다.
“통신도 안 되고요. 꼼짝없이 죽는구나 했죠.”
“흐음. 내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긴 한데…..”

빅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끼어들었다.
“어차피 메인은 맛이 갔으니까 예비 배터리만 충전하면 돼요. 아, 그리고 혹시나 연료도 조금만 나눠주시면 안 될까요?”
은둔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벤 케노비는 푸른 눈을 들어 빅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빅스는 약간 움찔거렸다.
“염치없는 젊은이로군.”
벤이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빅스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기에 내버려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 필요한 걸 챙기고 따라오너라. 미친 노인네가 무섭지 않다면 말이지만.”
마지막 말에는 어딘가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빅스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부랴부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그래서, 이번 계절부터는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해요.”
“제국 아카데미?”

오두막은 아늑했다. 가져온 장비를 재정비하는 동안 빅스는 마음이 놓여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벤 케노비는 생각보다 기분 좋게 빅스의 이야기를 받아주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하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머리를 살짝 한 쪽으로 기울였다.

“그래, 제국군이 되려고?”
“아뇨!”
빅스는 무심코 큰 소리로 대꾸했다가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목을 움츠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국은 최악이라고요.”
그는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그렇다면 왜 제국 아카데미에 들어가지?”
벤의 목소리에 따지려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노인은 순수하게 호기심에 물어보는 것 같았다.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보는 싸구려 스피더가 아니라 진짜 전투기를 몰 수 있으니까요. 제국의 돈으로 최고의 교육을 받은 바로 그 파일럿이 나중에 거기서 배운 것들을 응용해서 뒤통수를 치는 거야말로 진짜 복수일 것 같지 않아요?”
“호오.”
벤이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댔다.
“복수에 대해 아주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구나.”
“그럴 수도 있죠. 아, 젠장. 내가 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아저씨가 제국 첩자일지도 모르는 데 말입니다. 심지어 루크한테도 한 적이 없는데.”
“루크?”
노인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날카로워졌다.
“있어요. 스카이워커라고, 귀여운 녀석이죠.”

빅스는 아직 나이어린 친우의 얼굴을 떠올리고 씨익 웃었다.
“나이도 어리고, 순진해 빠진 주제에 조종실력 하나는 끝내주죠. 건드리면 발끈하는 게 놀리는 재미가 있달까. 녀석을 두고 혼자 아카데미에 가는 게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에요.”
“왜지?”
벤이 조용히 물었다.
“나보다도 더 아카데미에 가고 싶어 했는데, 걔네 삼촌이 반대해서 못 갔거든요. 실력은 충분한데 말입니다. 일부러 앞에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보다도 훨씬 솜씨가 좋아요. 가끔씩은 진짜 인간 같지가 않다니까요. 나도 녀석과 같이 입학하고 싶었지만……어떻게 보면 오히려 이게 나은 걸지도 몰라요.”
빅스는 머리 뒤로 손깍지를 끼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녀석은 아직 어려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못 받아들일 지도 모르니까요. 내가 왜 아카데미에 가려고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몰라요.”

“친구를 믿어보는 게 좋을 지도 모르지.”
벤이 기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이상하게도, 빅스는 노인이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때가 되면요. 내가, 아니 그 녀석이 때가 되면요.”

“왜 그렇게 제국을 싫어하는 거냐?”
“아저씨, 진짜 돌았어요?”
빅스는 채 생각할 틈도 없이 불쑥 말을 내뱉었다.
“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는데요?”
“너처럼 제국 아카데미에 들어가 제국을 섬기는 군인들?”
“쳇. 말장난 하자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빅스는 상체를 똑바로 일으켰다.

“옛날에는 노예 제도가 불법이었대요. 알고 계셨어요?”
“아.”
벤 케노비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 알고 있단다. 이곳 타투인에서는 공공연하게 거래되곤 했지만.”
“뭐, 자바 더 헛 같은 무법자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불법이었어요. 그렇죠?”
“그래.”
“난 어렸을 때부터 그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적어도 옛날 공화국 시절에는 노예제도를 폐지하려고 했고, 여기처럼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면 대부분 성공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아예 노예제도를 합법화해버렸죠. 자유민들조차도, 심지어 종족 전체를 노예로 만들어버렸다고 들었어요.”
“나도 들었다.”
노인의 말투에 씁쓸한 기색이 묻어나왔다.

“친구 하나를 사귄 적이 있었는데……”
빅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녀석 아버지가 아주 예전에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 하나로 하루아침에 가족 전체가 뿔뿔이 흩어져 노예로 팔려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내가 아는 다른 녀석 하나는 팔이 네 개 달렸다는 이유로 공무원 교육을 받지 못했고요. 학교에서 그 분야 최고 점수를 받았는데도!”

벤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빅스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청년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당해요. 지나치게 부당하단 말입니다.”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노인과 청년은 아무말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갑자기 충전기에서 나는 삑삑거리는 소리가 오두막 안의 정적을 깨트렸다. 빅스가 고개를 들었다.
“아, 다 됐나 봐요.”
“그래.”

벤 케노비는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탁자 쪽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무심한 투로 말했다.
“앨더란이라는 행성을 아니?”
어색한 분위기를 후회하고 있던 빅스는, 갑자기 바뀐 화제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가까스레 정신을 추스르고 대꾸했다.
“그럼요. 돈도 많고 예쁘고, 힘도 센 행성이죠.”
벤은 말을 이었다.
“아주 진취적인 행성이지. 부당한 것이라면 질색하는 지도자가 다스리는 곳이야.”
“그래요?”
빅스는 대체 이 노인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혹시 나, 실수한 게 아닐까?
“코루스칸트에 있는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되면, 한번쯤 앨더란을 찾아가 보려무나.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을 게다. 그리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도 많이 사귀게 될 거고.”
“네?”
벤은 빅스의 물음표를 무시했다.
“내가 좋은 술집을 하나 가르쳐 주마. 너처럼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지. 반항심이 가득한 친구들 말이다.”
빅스는 의심어린 눈초리로 벤을 쳐다보았다. 벤은 빛나는 푸른색 눈동자로 빅스의 갈색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그 곳을 좋아하게 될 거야.”

***

빅스는 달렸다. 아니, 그는 날았다. 서쪽 지평선에서 두 개의 태양이 흩뿌리는 붉은 빛줄기가 스카이호퍼 앞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욕망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며칠 후, 그는 아카데미에 입학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앨더란을 방문할 것이다. 그래서 사막의 미친 노인이 알려준 그 어두침침하고 좁고 지저분한 술집에서,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그 나이 또래의 젊은 친구들과 마음을 맞춰볼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사막을 비추는 햇살처럼 어둔 세상을 밝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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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 다크라이터(Biggs Darkligher),
어두운 시대, 동맹군의 앞날을 비추던 수많은 빛줄기 가운데 한 명.
삭제 신을 추가해 출시된다는 새 DVD 박스에서는 왕따 당하는 루크를 감싸주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빌며. ^^*
그리고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 태어난, 그 수많은 주인공들의 단짝 친우들에게도 건배.

덧. 실제로 Skywalker 전에 Darkligher가 주인공 이름으로 고려되기도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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