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Wars] DREAM- Back Side

DREAM – Front Side

전편의 미러 버전입니다.
길어져서 접습니다.


[#M_Dream – Back Side|less..|
그는 눈을 뜬다. 공허, 사방이 텅 빈 공허가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투박한 지평선. 휘파람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귓전을 스쳐 지나가며 두서없는 머리카락을 파헤친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하늘이 없다. 잿빛 천장이 찌푸린 얼굴로 공간을 우그러뜨리고 있을 뿐.

몽롱한 기시감이 가슴을 찌른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것이 있어야할 자리로 시선을 돌린다. 묵직한 형체 하나가 밤자락처럼 검은 망토를 모래 바람에 휘날리며 서 있다. 그는 한참동안 의자 깊숙이 걸터앉아 조용히 그 커단 등을 바라본다. 낯설지만,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뒷모습.

검고 고독한 등. 그리고 불투명한 얼굴.
그는 보이지 않는 저 얼굴을 안다고 생각한다.
청년의 얼굴이 눈앞에 또렷이 보이는 듯 하다.
그는 무심코 입을 연다.

“여전히 오만한 표정을 하고 있구나, 옛 제자야.”

느닷없이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청년이 황급히 몸을 돌린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길고 검은 망토 자락이 서둘러 반원을 그리며 춤춘다.
멀리서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눈가를 찡그린다. 하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치 사방에 눈이 달린 것처럼, 모든 각도로 비치는 청년의 얼굴이 뇌리에 인식된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전지전능한 시선으로 제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청년은 지난번 그와 헤어진 이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자 갈기처럼 탐스러운 갈색 머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오만한 턱과 고집 센 입술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완고함을 흘린다. 눈 옆의 희미한 상저 자국이 빛을 발하며 얼굴에 강한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그 푸른 눈동자, 절대로 곁눈질하는 법 없는 그 눈동자가 불꽃을 넘실대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태양이라도 되는 듯.

“그래, 그리고 여전히 어린애 같은 얼굴을 하고 있구나.”

버릇처럼 비꼬는 언사가 튀어나온다.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이미 희끗희끗 해져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하나둘 피어오르는 주름살의 존재를 느낀다. 한때 강인했던 자신의 손이, 이제는 섬세함이라고는 망각의 개울에 던져버린 듯 거칠게 무뎌졌음을 실감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늙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의 옛 제자는 전혀 늙지 않았다.

전혀 변하지 않았어.

“하지만 당신은 많이 변했군, 옛 마스터여.”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옛 제자가 응수해온다. 그리운 목소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꿈속에서 들어왔던 목소리. 이런 만남이 아니라면 벌써 오래 전에 잊어버렸을 목소리. 더 이상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 청년의 목소리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가느다랗게 떨리기 시작한다.

그는 눈을 감는다.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똑같은 장면을 보고 똑같은 일을 겪고 똑같은 결과를 본다. 그는 과거를 경험하듯 미래를 경험한다. 미래를 보듯 과거를 본다.

그래, 바로 지금.

바닥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한, 굵고 묵직한 숨소리가 말한다.

“당신은 죽었어.”

분노와 증오. 망치처럼 그의 몸을 내려치는 격렬함의 무게. 이 목소리의 주인은 그의 제자가 아니다. 그의 옛 제자는, 그의 옛 동료는, 이런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이건 그가 아는 목소리가 아니다. 아나킨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래.”

그는 천천히,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너의 환상일지도 모르지.”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눈앞에 선 커다란 검은 형체에게로. 얼마 전까지 그의 어린 파다완이었고, 그의 어린 친구였으며, 그의 형제였던 자에게.
이제는 그의 적이 된 자를 향해.

“하지만 너도, 과연 살아있는 것일까?”

그는 발을 멈춘다. 마주하고 있는 청년의 얼굴이 실룩거린다. 금방이라도 욕설을 뱉어낼 것 같은 입술이 으르렁거린다. 그는 조용히, 옛 제자의 아름다운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너도, 나의 환상은 아닐까?”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나킨.”

순간적으로 커다란 검은 몸이 움찔거린다.

“아니. 베이더.”

한숨을 내쉰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다.

“그래, 내가 잘못 봤다. 넌 아나킨이 아냐. 적어도 더 이상은 아니지.”

자신의 눈을 속이고, 마음을 속이고, 아무리 진실을 덮어버리고 싶더라도,
진실은 진실이다.

“아무리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너는 죽은 자다. 아무 곳에도 존재치 않는, 꿈속의 추억. 그 뿐이야.”

그래서 그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내가, 너를 죽였구나.”

그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다시금 눈을 감고 싶다. 그러나 그는 결코 고개를 떨구지 않는다. 의무감이 그의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그는 처연하게 서서 기다린다. 스스로 자초한 결과를 의연히 맞이한다.

청년의 눈동자가 샛노랗게 빛나는 순간, 검은 몸뚱이가 하늘 높이 부풀어 오른다. 익숙한 얼굴 위에 낯설고 차가운 마스크가 내려 꽂힌다. 탁한 핏빛이 검은 인공 안구 위에서 번들거린다. 날카로운 기계음이 사납게 튀어 오른다. 사막 깊숙이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렇게 거듭해서 친구를 잃는다.

회색빛 천정을 뚫고 나갈 정도로 거대해진 그 사악한 기계덩어리가 무기를 빼어든다.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든다. 그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그것을 올려다본다.

고통에는 익숙해져있다.
그는 잠자코 운명을 기다린다.
붉은 칼날이 그를 가로지르기를.







그는 눈을 꼭 감았다. 이것이 꿈이라면, 눈을 감았을 때에만 확실한 결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미 잠에서 깨어났음을, 슬픈 꿈은 이미 끝났으며 가혹한 현실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천천히,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10년 동안 보아온 갈색 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벤은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키며 조그맣게 신음을 내뱉었다. 비현실에서의 고통은 현실 세계에도 못지않은 여파를 끼쳤다. 완벽한 제다이라면 그러한 부조화를 극복할 수 있으련만, 그는 더 이상 제다이가 아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두 손에 피곤한 얼굴을 파묻었다. 베이더를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옛 제자를 칼로 베고 은둔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만 해도 그는 심심찮게 꿈속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더랬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붉은 행성에서 청년은 그에게 기계 팔을 내밀며 절규했다. “도와줘요. 도와줘요, 오비완.” 핏발어린 눈동자가 측은해 가슴에 피멍이 들 정도로 처절하게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러나 그는 꿈속에서조차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에.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며 교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도 과거를 바꾸려들지 않았다. 포스에 사무치게 후회한다 하더라도, 해야 했던 일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도움을 울부짖던 청년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구석에 앉아 눈물짓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동안 그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아나킨을 내려다보는 꿈이 계속되었다.

벤은 청년이 눈물과 고독을 극복하고,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로 똑바로 걷기 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의 표정이 단단해지고 그의 몸짓과 걸음걸이가 위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나킨이 베이더로, 청년의 얼굴이 검은 마스크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냉소 또한 늘어갔다. 자신의 무기력을 탓하며.

꿈속의 베이더가 자신을 관찰하는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과 동시에 꿈의 간격 또한 서서히 늘어갔다. 이렇게 죽어본 것은 실로 몇 년 만이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나타난 베이더는 지난번과 달리 일말의 주저도 없이 라이트세이버를 휘둘렀다.

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몇 년 뒤의 베이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어쩌면 오늘이 아나킨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니었을까. 완전히 어둠에 잠식되면, 더 이상 베이더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그는 징조를 무시하도록 교육받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베이더의 꿈은 이중의 칼날이었다. 그는 아나킨을, 아니 베이더를 만날 때마다 새록새록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에 중독이라도 된 듯 잠자리에 들 때마다 헛된 기대를 품었고, 동시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될까봐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다. 발각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베이더 또한 그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소년의 정체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공포.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실수만은 절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벤은 창문을 열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누르스름한 지평선 너머 오렌지색 태양 하나가 슬며시 얼굴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곧 또 하나의 태양이 나타나면 언제나 다름없이 타투인의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언제나와 다름없이.
때가 올 때까지.

_M#]
덧. 아아, 역시 내공이 너무 딸려요……ㅠ.ㅠ 글 잘쓰시는 분들이 진정 부럽군요.

[Star Wars] DREAM- Back Side”에 대한 19개의 생각

  1. 당근

    이런 염장이라니요…..OTL
    네, 그래요. 아나킨을 죽인 건 오비완이지요.
    그리고 아나킨이 죽는 순간 오비완도 죽었지요. 정말이지 징한 사제관계에요. ㅠ.ㅠ

    응답
  2. 체샤고양이

    다스베이더와 벤 케노비는 함께 태어났죠…ㅡㅜ

    응답
  3. AMAGIN

    너무너무 잘 쓰시는데요.ㅠㅠ 죽음과 재생을 함께 한 사제라니…너무 맘 아파요…

    응답
  4. 세이

    빌빌빌빌…(모기약 맞은 모기마냥 죽어간다) 벤 편과 베이더 편이군요… 완전한 벤도 완전한 베이더도 아니라 벤 편과 베이더 편이라 하긴 애매하지만 그 애매함이 더 가슴아프게 하네요ㅠ_ㅠ
    그렇게 함께 태어났는데 같이 죽지 못했으니…(버럭!! 삼국지냐!!)
    전 벤이 루크한텐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완전히 죽었다고 말했지만 자신의 마음 일부분에선 ‘아나킨이 살아나줬으면’ 하는 희망을 품었을거라고 생각해요. 말로 하진 못했겠지만…ㅠ_ㅠ

    응답
  5. misha

    아니킨과 오비완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 서로는 ‘유일한’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였든간에 말이죠.
    …그래서 더욱 더 보는 이는 가슴이 갈기갈기 에이지만요. ㅠ_ㅜ

    응답
  6. 돌.균.

    전 글 잘쓰시는 누님이 더 부럽소이다 -ㅅ-
    타투인의 태양을 바라보면 벤은 얼마나 착잡한 심경이었을까요. ㅠ_ㅠ

    응답
  7. hina

    슬프네요..ㅠㅠ
    그렇잖아도 무척이나 많은 생각에 잠겼었답니다.
    lukesky님 글을 보면서도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아픔이긴하지만, 그게 참 묘한 아련함도 간직하고 있는 거 같아요, 저들의 관계는..

    (+) 상영회 부럽습니다~~
    저도 다같이 스타워즈 보면서 꺄악거리고 싶어요..^^
    (++)어쩐지 아나킨과 오비완, 베이더와 벤은 다른 사람인 거 같습니다.. 그게 본인들의 의지보다는 운명 때문이라는 느낌이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이야기라 그런지 갑자기 가슴이 막 뭉개지는 것 같아요..ㅜㅜ

    응답
  8. lukesky

    당근/ 정말 지독하죠. 그렇게 이중적인 면이 겹치는 사제라니. ㅠ.ㅠ
    깃쇼/ 아핫 ^^*
    라스/ 루카스 씨 나빠요오….엉엉엉.
    체샤고양이/ 예. 베이더-벤-루크는 동시에 태어난 셈입니다. 부자관계와 사제관계가 거기서 또 묘하게 돌고도는, 끝내주는 관계죠.
    AMAGIN/ 저 얽히고 섥히는 운명이라는 것이 세 사람의 운명을 가지고 놀았달까요. ㅜ.ㅜ
    세이/ 그래도 같은 포스의 굴레 안에서 다시 만났잖아요. ^^* 망상을 떠나 영화만으로 보자면, 전 클래식 때의 두 사람은 정말로 추억도 아닌 기억만을 지니고 있을 뿐 애틋함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나도 오랜 시간동안 다른 길을 걸었거든요. 그러면서도 벤과 베이더는 어딘가 비슷한 점이 있으니 그 또한 벗어날 수 없는 아이러니죠.

    응답
  9. lukesky

    misha/ 누가 서로의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었겠습니까아. ㅠ.ㅠ
    asura/ 제가 보기엔 아수라 님 쪽이 더….쿨럭.
    돌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의 심정으로 루크를 바라보며 힘을 냈을 거야. -_-++++++
    rucien/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비밀글/ 만만치 않은 민폐커플입니다, 이 사람들. -_-;;;; 제 생각으로도 배우의 이미지를 떠나, 오비완과 벤은 확실히 다른 사람 맞는 것 같습니다. 베이더와 아나킨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이죠. 중심에 원형이 아직 살아있긴 하지만 겉을 둘러싼 두꺼운 껍질 부분은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다른 종류의 성격을 만들어낸 거죠.
    풀팅/ 3편 따윈 없소이다!!

    응답
  10. ㅁAㅁ

    베이더와 아나킨이 다르듯 오비완과 벤이 다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미처 못했네요. 듣고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응답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