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Wars] 끝은 또다른 시작

* 옛 홈페이지에 올렸던 녀석을 옮겨왔습니다.

[Star Wars] 끝은 또다른 시작

“여어!”
“웨지!”
루크 스카이워커는 웨지 안틸레스의 손을 잡고 흔들다가 그대로 친구의 몸을 껴안았다.
“살아있는 자네 얼굴을 보니 기쁘군.”
“이쪽도 마찬가지!”

웨지가 루크의 포옹을 풀더니 그의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죽음의별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정신이 날아가는 줄 알았다고. 이 멍청하고 무모한 친구야.”
루크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레이아가 말해 준 거야?”
“음. 내가 물어봤거든.”

웨지는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의 눈길을 피하는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지친 얼굴에, 약간 충혈된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말이야. 아마도 황제와 한판 승부라도 내러 갔나보다 했지.”
루크가 고개를 들고 피식 웃었다.
“한판 승부라……”
“제발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이야기나 좀 해 봐. 난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는 거, 알지?”
웨지는 갑자기 풀린 긴장으로 노곤해진 몸을 억지로 경쾌하게 놀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M_계속 읽으시려면 눌러주십사|닫으셔도 됩니다|조그만 초록색 행성 엔도, 그 가운데 ‘살아남은’ 동맹군들이 모여앉은 이워크 마을은 모스 아이슬리의 술집이 무안할 정도로 떠들썩했다. 아직도 붉게 타오르고 있는 죽음의별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검은 하늘에서는 축포가 터지고 있었고, 인간형 생물들과 비인간형 생물들, 심지어 로봇과 드로이드들마저도 한데 어우러져 주위에서 주워담을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이용해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냈으며, 사람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서로의 생존과 귀환을 축하했다. 헤어졌던 친구들,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할 각오로 떠나갔던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나타날 때마다 공화국을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 사이에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그 때마다 악수를 나누고 서로를 포옹하고 흩어진 사이에 있었던 활약상을 전해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웨지 안틸레스는 그 중에서도 영웅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는 엑스윙 파일럿들로 이루어진 레드 편대를 지휘하며 밀레니엄 팔콘의 랜도 칼리시안과 함께 죽음의별 중심부를 파괴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마주치는 사람마다 등을 두드려주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특히 공격대에 끼지 못하고 엔도의 기지를 폭파하러 갔던 무리들과 마주칠 때에는 몇 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해 주어야 했다. 츄이한테 잡혔을 때에는 말로는 부족해 온갖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 신나게 그 때의 상황을 중계해 주었고, 그가 동작을 바꿀 때마다 츄바카는 그 커다란 손으로 웨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함께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었다. 웨지 역시도 솔로와 레이아, 그리고 츄바카가 도대체 어떤 경로로 털북숭이 이워크들을 동맹군에 끌어들였는지 그 사정을 듣느라 자신을 축하해주러 오는 사람들을 물리쳐야 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 모든 이야기를 웨지에게 들려준 이가 바로 C-3PO라는 점이었지만. 그 빌어먹을 말많은 드로이드 덕분에 그는 루크가 특유의 검은 제다이 복장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다른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장면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인사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 죽음의별 안쪽은 어땠어? 내부 장식은? 황제는 소문대로 꽤 괜찮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나? 나야 아직 덜 만들어진 철골더미나 에너지 덩어리만 보고 와서 말이야.”
옆에 앉은 루크가 한참동안 땅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자, 참지 못한 웨지가 농담을 건넸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몰랐다. 호스에서 한쪽 손을 잃어버리고 돌아온 루크를 접한 후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공화군 최고의 영웅이며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공화국의 수호자는 때때로 웨지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어서 가끔씩은 과연 그가 자신과 장난을 치며 무모하게 엑스윙을 몰고 다니던 바로 그 청년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웨지.”
“응?”
“자네…….아버지 말야, 어떤 분이셨나?”
“엑? 웬 우리 아버지?”
웨지는 난데없는 루크의 질문에 턱을 긁적거렸다. 벌써 수염이 엷게 자라나 있었다.

“흠, 뭐…그렇게 물어본다면야……호탕한 성격이었다고 말해야 하나. 뭐 다투기도 많이 했지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시기도 했으니까. 전투기나 우주선에 대한 지식들은 대부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들이지. 사람 다루는 법을 알려준 건 주로 어머니였고. 커다란 몸집에 수염투성이에, 약간은 촌스럽고 목소리도 커다란, 멋없는 아버지였지. 해적들과 같이 서 있어도 해적으로 오인 받았을 거야, 아마.”
웨지는 팔짱을 끼고 킥킥거렸다.

“아픈 기억을 꺼내는 건가?”
루크가 조용히 물었다.
“아냐아냐, 그렇지 않아. 하긴, 그 때만 해도 참 미친 듯이 날뛰고 다녔는데 말이야.”
웨지는 멍한 표정으로 눈 앞의 허공을 주시했다.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렸으니까. 게다가 코르섹(코렐리아 수비대)은 해적들을 잡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됐거든. 아마도 그 때 돌아다녔을 때 얻은 조종술도, 그 때 삭이지 못한 분노도 지금 내가 여기 와 있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야. 아아 그렇지. 그리고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공화군에 있지도 않았겠지.”

웨지가 루크에게 고개를 돌리고 씨익 웃었다.
“아버지 덕분에, 항상 ‘반항하는’ 기질을 몸에 익히게 됐거든.”
그 말에 루크도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니, 얼굴도 알지 못하는 부모님이 궁금해진 거야?”

루크와 웨지는 야빈 전투 이후로 몇 년을 같은 편대에서 활약하며 우정을 쌓은 사이었고, 따라서 두 사람 모두 서로의 과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특히 제국에 대한 반감으로 입대한 젊은이들은 다른 모든 과거는 함구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제국에 반기를 들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언젠가 자연스레 본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마련이었다. 루크는 우주 스테이션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웨지의 부모님이 해적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그가 어린 나이에 홀로 떠돌며 범인들을 추적했던 사실을, 그리고 그 후 공화군을 위해 밀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웨지는 루크가 타투인에서 삼촌 부부의 손에 자라났다는 것을, 전 공화국의 제다이라는 오비완이 그를 앨더란에 데려오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록 승진은 루크 쪽이 빨랐지만, 야빈 전투라는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엑스윙 파일럿 가운데 가장 어리면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인 건가.”
“아냐?”
루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적어도 그 중 한 분의 얼굴을 막 뵙고 온 참이야.”
“뭐라고? 어디서?”
웨지는 잠시 입을 헤 벌리고 앉아 있다가 루크의 반응에 놀라 저도 모르게 다시 물었다.
“죽음의별에서?”

공화군의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부모님이 제국군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혹은 그 반대로 나이가 조금 든 지휘관들의 자식들이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해 제국군으로 복무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너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며?”
“지금은. 방금……장례식을 치르고 왔지.”
“죽음의별에서?”
웨지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죽음의별에 계시던 아버지를 모시고 나와서,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루크는 고개를 들고 웨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웨지, 정신차리고 잘 들어. 레이아를 제외하고 네게 최초로 고백하는 거다. 어차피 한은 레이아를 통해 알게 될테니까.”
루크의 단호한 말투와 밝은 푸른 눈빛에 웨지는 잠시 몸이 굳었다.
“가, 갑자기 조금 무섭게 돌변하는군. 뭔데?”
“황제가 죽는 것을 내 눈앞에서 봤어. 다스 베이더가 죽였지. 그리고 황제가 입힌 상처 때문에 그도 역시 죽었고.”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윗선에다가 보고는 한 거야?”
잔뜩 긴장했던 웨지가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베이더는….내 아버지였다.”

루크는 한참동안, 아무런 반응없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웨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웨지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무엇인가를 살피려는 듯이 눈동자를 날카롭게 굴리며 루크를 관찰하는 듯 했다. 마음만 먹으면 웨지가 그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루크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공화군의 공적이 바로 네 아버지였다고?”
“그래.”
“얼굴을 본적도 없다면서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느낌으로.”
“코렐리안 상인이 밑지고 판다고 하는 말보다 더 황당한 소리로군.”
웨지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루크가 다시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웨지가 입을 열었다.
“알아알아, 제다이 나으리. 네가 ‘느낌으로’라고 하는 말보다 더 믿을 수 있는 건 없지.”

루크는 천천히, 그리고 빠른 속도로 격렬하게 동요하는 웨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녹색 눈의 파일럿은 이해력과 적응력이 그 누구보다도 항상 빨랐다. 

“언제?”
루크는 웨지의 질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른손을 잃었을 때, 그가 직접 말해주었지.”
“매정하고, 무정하고, 지독한 부성이로군.”
웨지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투덜거렸다. 그는 지저분한 발로 흙바닥을 헤치기 시작했다. 루크는 조용히, 친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뭐, 좋아. 어쨌든 황제가 아버지인 것보다는 그래도 낫구만. 게다가 황제를 직접 없앤 것도 베이더라며?”
한참 후에 들려온 웨지의 말에, 루크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웨지는 때로 한을 무한케 할 정도의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었고, 이번에도 루크는 조금이나마 머릿속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마지막에 베이더는 내 아버지로 돌아왔지. 예전에 그가 제다이였던 시절로.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눈을 감으셨고, 지금은 옛 지인들과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 걸로 믿어”
루크는 눈을 내리깔고 방금 보았던 아버지와 요다, 그리고 오비완의 영을 떠올렸다. 모든 것을 끝낸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이제 만질 수도, 다가갈 수도 없지만, 루크는 그들이 이 우주에서 그 누구보다도 평온한 포스를 지니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새롭게 탄생할 새로운 공화국의 영웅으로 취급해야겠군. 어쨌든 결과만 들여다보았을 때.”
웨지는 약간은 비꼬는 듯한 말투에서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바꾸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설명할 작정이지?”
“사실대로 보고하는 수밖에 없지. 어차피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아크바 제독과 몬 모스마에게 모두 털어놓아야 할 테니까.”
“네가 제다이 훈련을 받은 이후로, 넌 엑스윙보다 오히려 정치가들과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니 말야.”
“어쩔 수 없지. 그들이 알고 있는 한, 나는 유일한 제다이니까.”
루크는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딘가에 숨어있을 다른 제다이들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루크.”
“응?”
“내가 말할 필요도 없고, 너라면 알아차리겠지만…”
루크는 말꼬리를 흐리는 웨지의 모습을 미소를 띠며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네 편이다.”
웨지가 고개를 똑바로 들고 루크의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물론 공화군에 있어 누구보다도 중요한 존재인 너를 높은 사람들도 어떻게 할 수 있으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정말로 만의 하나라도 누군가가 이 일로 너를 음해하려고 하거나 공격하려고 한다면, 나는 항상 네 편에 서겠어. 내 말뜻 알지?”
“그래.”
루크는 잠시 숨을 내쉬며 자신을 둘러싼 진실과 따스한 감정으로 가득 찬 포스를 음미했다.
“그래, 친구.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렇다면 좋아. 내가 저기 가서 음료수를 들고 올테니 우리 한잔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긴~~~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돌아왔을 때 다른 사람한테 붙잡혀 있으면 아까 한 말 취소해 버리겠어.”
웨지는 무릎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아아,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 아직도 우주공간에서 휭휭 돌아가는 엑스윙 안에 앉아있는 것 같아. 오랜만에 제대로 된 중력이 있는 행성에 내려오니 몸이 적응하기 힘들군.”
웨지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잠시 서 있더니 루크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그래도 오늘밤만은, 우키와 팔씨름을 해서 이길 정도의 여력이 남아있어. 자네가 또 다른 폭탄 같은 선언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이제 더 이상 그런 건 없겠지?”

루크는 자신에게 윙크를 해 보이고 음료수 쟁반을 들고 있는 R2D2에게 걸어가는 웨지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불렀다.
“그런데 말야, 웨지.”
“응?”
웨지가 돌아보았다.
“레이아는 내 누이야.”
쿵!

그 후로 오랫동안, 포스를 느끼는 루크의 능력으로도 웨지의 그 커다랗고 이상한 비명소리가 그가 앞에 서 있던 이름모를 이워크에게 걸려 넘어지면서 무심결에 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마지막으로 터트린 폭탄에 의한 것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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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픽 중에 언급된 웨지의 과거는 스타워즈 EU 설정입니다. 웨지의 부모님은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가 15세 때 우주 해적의 습격을 받아 두 분 다 돌아가시게 됩니다. 고아가 된 웨지는 홀로 해적들을 추적하여 그들을 소탕하고, 이후 공화군을 위해 밀수를 하다가 아예 공화군에 합류하지요.

웨지는 에피 4 때 루크와 함께 유일하게 귀환한 엑스윙 파일럿이고, 에피 5 때는 루크가 데고바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 친구입니다. 호스 전투 때 케이블이 망가지자 루크가 제일 먼저 찾은 사람도 웨지였으니, 두 사람이 어떤 동료였을지 대충 짐작이 가지요. 틀림없이 누구보다 믿고 뒤를 맡길 수 있는 좋은 친구였을 겁니다.  제 생각이긴 하지만, 루크가 무모한 청년이었을 시절에는 한보다 오히려 훨씬 죽이 잘 맞았을 지도 몰라요. 나이가 가장 비슷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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