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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Wars] Snow flakes

* 옛 홈페이지에 있던 녀석을 옮겨왔습니다. 이야, 추억이 새록새록이군요.

[Star Wars] Snow Flake

우주에 중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중 하나인 얼음 행성 ‘호스’, 이 커다란 하얀 행성의 대기권에 들어서자 웨지의 작은 엑스윙은 거센 폭풍우에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데드 스타가 붕괴된 후로, 제국은 오히려 포위선을 나날이 좁혀왔다. 그 동안 공화군이 거처를 옮긴 행성들만 세어보는 데만도 R2 로봇의 프로세스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소규모 편대로 이루어진 부대들이 그럭저럭 이곳저곳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저항을 계속했지만 물량과 규모를 내세운 제국의 반란군 소탕작전은 시시각각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제국의 첩자들은 공화군의 기지를 끈질기게 발굴해냈고, 결국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을 만한’ 척박한 땅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 아래 지도부는 이 ‘호스’를 찾아냈던 것이다.

문명을 지닌 존재들이라면 결코 발을 내딛으려 하지 않을 이 불모의 땅에 건설대가 파견되어 거대한 발전소를 짓는 데만 2개월, 그리고 격납고를 포함한 거주 지역 건설의 기초를 쌓는 데에 2개월이 걸렸으니, 기지 이전 준비에만 거의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공화군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대규모의 피난이었다. 그렇다, 호스로 오는 것은 일종의 ‘도주’였다.

그리고 그 ‘도피준비’ 기간 동안, 공화군 내의 젊은 파일럿들 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년 전에 있었던 데드스타 공격 작전에서 공화군은 훌륭한 조종사들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수많은 베테랑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남아있는 것은 일련의 신참내기 파일럿들과 몇 명의 교관급 지도자들뿐이었다. 데드스타 작전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조종사들은 그 한번의 경험으로 숙련자가 되어 있었다. 비워진 자리는 신속하게 채워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운 새로운 인물들이 얼마나 그 자리에서 버텨낼 지는 각자의 운과 실력에 달려 있었다.

웨지가 소속되어 있고 루크 스카이워커가 리더를 맡고 있는 로그 편대도 마찬가지였다. 데드스타를 파괴한 공으로 루크가 승진을 한 후 결성된 엑스윙 편대 로그는 처음에는 풋내기들과 소속 부대를 통째로 잃어버린 갈곳 없는 이들로 이루어진 불안한 곳이었다. 그러나 몇 번의 결전을 치르고 나자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게되는 횟수가 늘어났고, 이제 로그 편대에는 공화군 내에서도 몇 안 되는 베테랑 파일럿들이 소속된, 위험한 일만 도맡는 ‘해결사’ 부대라는 별칭이 붙어 다니게 되었다.


[#M_계속 보시려면 눌러주시압|닫으셔도 됩니다.|웨지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하늘을 마주하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엑스윙의 속도를 줄였다. 다행히도 기온이 너무나도 낮은 탓에 눈송이는 미세한 가루에 가까워서 기체에 크게 피해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바람은 동체가 마치 간질 발작이라도 하는 양 뒤틀어댔고, 기류를 자칫 잘못타면 다른 행성의 땅바닥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단단한 얼음 구덩이에 코를 박게 될 지도 몰랐다.

머리 위의 아스트로메크 R5가 삑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착륙할 때 조심해, 이렇게 추운 곳이라면 재활용 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품이 얼어붙어 버릴 거야.”
인간이라면 비명소리에 가까울 듯한 전자음이 새어나왔다. 기계가 내는 날카로운 소리에 웨지는 눈썹을 찡그리고는 조종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우리가 호위선이라고는 하지만 저런 얼음 위에 착륙하라니 자고로 윗대가리들이란……내려간다, R5!”

대기권에서의 속도감이란 현저한 것이었다. 별들 속을 날아다니는 엑스윙의 덮개 사이를 통과해 들어오는 것이 있을 리는 없었지만, 뺨에 차가운 바람이 광속의 속도로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충격이 느껴지자, 웨지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앉아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상상 외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디로 눈을 돌려야할지도 모를 온통 하얀 세상. 현실감이 웨지의 몸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신호를 차단해 버린 듯 보이는 하얀 화면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어떤 처지에 있는 것인지,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눈 앞에는 티끌 한점, 더러움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 눈이 멀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우주 공간에서 느끼는 고독감에는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들이 함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순백색의 세상이었다.

다시 한번, R5가 삑삑거리며 주인의 관심을 끌었다. 웨지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벨트를 풀었다.
“저 혹한에 나더러 나가라는 건 아니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아스트로메크는 다시 말대꾸를 했다.
“저 미친 눈보라 속에 나갈 정도로 정신 나간 녀석 따위는 우리 로그 편대에 없어.”
웨지는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고는 등을 깊숙이 뒤로 기댔으나 화면에 다타난 글귀를 보고 다시 몸을 앞쪽으로 잡아당겼다.
“R2D2의 주인은 루크다. 그 녀석이 지금 뭘 한다고?”
웨지는 다시 헬멧을 집어들어 머리에 쓰고는 명령을 내렸다.
“열어라. 나간다.”

조종복은 일종의 방한복이다. 흔히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우주 공간은 수없이 많은 얼음조각들이 떠다닐 정도로 추운 곳이다. 따라서 파일럿이 입는 조종복 역시도 어느 정도의 방한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조종석 안은 밀폐된 공간, 이렇게 하얀 세상을 얼려버릴 정도의 기온에서 버틸 수 있을 정도는 결코 아니다. 헬멧으로 어느 정도 얼굴을 보호한 다음 엑스윙 바깥으로 뛰어나온 웨지는 “로그 편대에는 있을 리 없는 머저리 로그 리더”에게 한마디 단단히 해줄 참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부신 세상 한 가운데 서 있는 주황색의 형체를 똑똑히 볼 수 있는 거리에 다가가서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엑스윙 안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런 혹한의 얼음 투성이 땅에서 낭만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어제끼고 말 것이다. 그러나 웨지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종족이었다. 조종사라는 종족은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검은 공간에서 고독을 즐기는 종족인 동시에,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는 지상을 동경하는 민족이며, 그러면서도 항상 그 곳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영혼들이다. 반짝이는 별들에는 자유가 숨어있지만, 자유를 손에 쥔 손간, 그것은 곧 굴레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꿈을 꾸는 부류들이다. 그들은 별들 사이에서 하얀 날개를 펼치고 꼬리를 길게 남기는 천사들을 만나고 언젠가 그 아름다운 생물을 뒤쫓아 옆에서 함께 달리리라 맹세하는 전설의 신봉자들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우주에서 둘째간다면 서러울 코렐리안인 웨지 자신도 지상에 발을 디디고 있는 그 어떤 종족보다도 낭만적일 것이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 새하얀 세상에, 눈을 찌르는 것 같은 밝은 형체 하나가 굳게 서 있었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하얀 가루들이 우주에 수없이 존재하는 나선형의 은하들처럼 소용돌이를 그리며 춤추고 있었지만 그 존재는 단지 그 주홍색 엑스윙 조종복 주변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헬멧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사방의 눈과 얼음에서 새어나오는 은빛에 그의 금발머리가 반짝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친구가 선 채로 얼어붙은 것이 아닌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웨지는 순간 루크의 손에 눈길이 미치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저 빌어먹을 정신나간 자식은 심지어 장갑도 벗고 있잖아! 그는 안에서 치밀어오르는 뜨거운 감정에 추위조차 잊어버리고는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루크에게 성큼거리며 다가갔다. 보통 때라면 십 미터 밖에서라도 접근하는 자신을 무심코 알아차리는 그 친구는, 묘하게도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정신나간 듯 눈송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웨지는 거친 몸짓으로 루크의 손을 확 낚아챘다. 루크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냐? 아무리 도움이 안 되는 장갑이라 해도 여기서 몇 분이라도 벗고 있으면 단숨에 동상이다. 박타 치료가 그렇게 받고 싶은 거야?”
“아, 그럴 생각은 없어.”
게다가 루크의 손에는 살짝 얼음이 덮여 있었다. 손바닥의 온도 때문에 눈이 녹았다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얼어버린 것이다.
“뭐, 뭐야?”
웨지의 당황한 말투에 비해 루크는 어딘가 멍한 말투로 대답했다.
“너무 가벼워서……”
“뭐?”

“고향에 온 줄 알았어.”
“고향?”
웨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네 녀석 고향은 타투인이잖아. 거긴 쪄죽는 데 아니었어?”
“물론 기온은 다르지.”
루크가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 곳도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밖에 보이지 않거든. 온통 노란 세상이지. 그리고 여긴………..온통 하얀 세상이고 말이야.”
“헤에.”
그런 것을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는 건가. 웨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도시에서 태어난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 흩날리는 하얀 것도 모래처럼 거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로군. 딱딱하긴 한데, 가벼워. 게다가 손바닥 위에서라면 곧 녹아버리고 말이지.”
“……………….만져보고 싶어서 장갑을 벗은 거냐.”
웨지가 으르렁거렸다.
“아, 신기해서. 어떻게 해서든 신발 사이로 들어오려고 기를 쓰는 것도 똑같은데?”
루크는 웨지의 말투를 알아차리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듯 즐거운 투뙈 말했다.

“여기서도 길을 잃어버리면 찾을 수 없겠군. 사막이나, 우주에서처럼.”
루크는 웨지가 붙잡고 열심히 문지르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물 걱정은 할 필요 없겠군.”
“물 걱정을 하기 전에 얼어죽겠지.”
웨지가 루크의 손을 집어던지며 투덜거렸다.
“난 지금도 발에 감각이 없단 말이다. 왜 이런 곳에 괜히 나와서 생고생이냐?”

루크가 쓴웃음을 지으며 친구를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눈이잖아?”
“그렇지, 당연히.”
웨지가 허탈한 듯 대답했다.
“한번쯤은 만져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대체 눈을 처음 본 것도 아닐텐데 무슨 그런 난리를……..”
웨지는 문득 입을 닫았다. 그리곤 낮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처음이냐?”

루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내어 웃었다.
“그럼 깡시골의 태양 두 개짜리 타투인의 농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촌뜨기가 눈 같은 걸 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평소에 자신이 루크를 놀리며 부르는 별명을 본인이 비꼬아 말하자 웨지는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그…..그래도 말이지. 상식으로는 알고 있잖아.”
“상식으로는 뭐든지 알고 있어, 웨지. 난 상식으로는 칼라마리 종족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성격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아크바 제독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칼라마리 족을 약간이나마 진짜로 알 수 있었지.”
루크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거지. 너도 알고 있다시피.”

이럴 때만은, 정말로 이런 말을 할 때만은 루크가 그 제다이의 기질을 진짜로 지니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웨지는 그의 스승이라는 오비완 케노비라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고 루크나 레이아 공주, 솔로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지만 그의 의견은 주로 ‘괴짜였군, 그 영감’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제독이나 구 공화국에 있었던, 지금 공화군을 이끌고 있는 많은 지도자들이 케노비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유로 루크를 특별 취급한다는 점이었다. 옛날 이야기처럼만 느껴지던 제다이 나이트가 루크의 주위에서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꿈 같이 모두 지워진 흰 세상 안에서 루크의 유니폼만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루크는 다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웨지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려고 했지만 눈이 부셔서 오랫동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가리개도 없는 루크로서는 작고 딱딱한 알갱이 같은 눈송이가 눈으로 계속 파고 들어와 눈을 뜰 수도 없을 텐데, 신기한 일이었다.

“모래에 비하면 훨씬 부드럽고 가벼운데, 모래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니 놀랍군. 내 경험에 의하면 온 몸의 수분을 앗아가는 사막의 직사광선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였는데 이 곳에서는 그 반대라니.”
“눈이 모조리 치명적이지는 않아. 여기서는 눈이 치명적이라기보다는 이 살인적인 기온이 문제지.”
웨지가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다고 하더군. 눈이 오는 행성에서는 눈으로 장난도 친다며?”

웨지는 할말을 잃었다.
“……………………….어이.”
“왜?”
“제발, 해보고 싶었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다오. 나이와 체통을 생각해.”
루크가 때로는 자신보다도 무모하고 장난기가 넘친다는 사실을 아는 웨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친우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하지.”
루크가 웃으며 대답하자, 웨지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더럽게 춥다. 손발이 안 움직이는데? 엑스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R2한테 잔소리 꽤나 듣겠어.”
“그보다는 시설로 들어가서 의료 드로이드를 부르는 게 좋을 듯 하군. 장담하는데 우린 동상이야.”
“한순간의 무모함 때문이라는 건가. 덕분에 좋은 경험한 셈 치지 뭐.”
“태평한 놈.”

옆에 서 있던 루크가 갑자기 몸을 낮췄다. 뭔가가 웨지의 머리에 날아들었다.
퍽!
“크헉?”

“제길, 아까워라.”
뒤쪽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노린 건 농장 꼬마였는데, 하필이면 헬멧 쓴 다른 꼬마가 끼어들다니.”
웨지는 잠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 서 있었다. 옆에서 루크가 낄낄거렸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코렐리안 식 눈놀이인가?”
“코렐리안 식은 무슨 얼어죽을.”
웨지가 꽉 다문 이빨 사이로 내뱉었다.

한 솔로가 커다란 웃음소리를 내더니 다시 몸을 굽혀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그의 뒤쪽에는 밀레니엄 팔콘이 착륙해 있었는데 입구에는 레이아 공주가 우키의 털가죽에 온 몸을 파묻은 채 얼굴만 내어놓고 있었다.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맙소사, 제발 열 살먹은 꼬마들처럼 굴지말고 안으로 들어와요, 한! 루크!”
루크가 웨지를 돌아보았다.
“도전을 받았으면 거기에 응해줘야겠지?”
“아니, 제발, 그러니까 그런 도전 따위에는 응해주지 마!”

웨지의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루크는 한 아름의 눈을 그러모았다. 이 곳의 눈은 다른 지방과는 달리 힘을 주어도 한데 뭉치지 않았지만 눈을 처음 보는 루크로서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는 듯 했다.

“장갑! 제발, 루크! 장갑 끼라고!!!!!”
웨지는 소리를 지르는 것과 동시에 몸을 수그렸다. 루크가 팔에 모아든 눈을 공중으로 흩뿌렸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눈 무더기를 멀리 던지려다가 생각한대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자신의 앞으로 던져버리는 형국이었다.
“이런 천하에 헛 같은 녀석 같으니!”
웨지가 루크에게 소리쳤다.

솔로가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제대로 하는게 하나도 없구만, 애송이!”
“젠장, 왜 안 되는 거지?”
루크가 촌뜨기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투덜거렸다.

“한! 팔콘이 얼어서 시동도 안 걸린다고요! 세 사람 모두, 돌아가면 의료 드로이드들에게 절대로 치료해주지 말라고 경고할 테니까 알아서 해요!”
레이아 공주의 소리에 맞춰 츄바카가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혈기에 넘치는 두 청년들의 귀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웨지는 솔로의 도발에 넘어간 루크에게서 몇 발짝 뒤로 떨어져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세상에 눈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하나둘 볼 수 있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건설대가 몇 명이나 쓰러져가며 완성한 거대한 발전소였다. 그리고 그 배경에 맞추어 얼음 위에 착륙해 있는 로그 편대의 엑스윙들, 와이윙들이 보였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 우주 공간에서 활약하는 전투기들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이 행성의 환경에 걸맞게 조정한 다른 스피더를 사용해 이에 익숙해지도록 얼마간 훈련을 거쳐야겠지. 커다란 수송선은 대개 눈에 띄지 않게 엄폐된 비밀 문을 통해 안에 착륙해 있을 것이다.

거대한 무덤. 순간적으로 웨지는 이 하얀 세상이 거대한 무덤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눈은 소리를 먹어치운다. 눈은 도망치는 자들의 발자국을, 그들의 모습을 숨겨주지만 동시에 차갑게 얼려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리고 숨결을 얼린 몸뚱이 역시 하얗게 덮어 자신 안에 묻어버릴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도록. 항상 쫓겨다니는, 그리고 살아있을 때 조차도 항상 죽음을 뒤에 달고 다니는 공화군에게 어울리는 은신처였다. 이 하얀 죽음의 행성은.

“그러니까, 안전할 거다, 이 곳은.”
웨지는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적어도 당분간은.”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당분간이면 충분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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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루크보다 웨지가 더 똑똑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_-;;; 이럴 예정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리는군요…ㅠ.ㅠ

과학적 실수에 대한 코멘트는 받지 않습니다. 이봐요, 이 영화는 우주 공간에서 소리가 나는 영화라구요…..[쿨럭]


[Star Wars] 끝은 또다른 시작

* 옛 홈페이지에 올렸던 녀석을 옮겨왔습니다.

[Star Wars] 끝은 또다른 시작

“여어!”
“웨지!”
루크 스카이워커는 웨지 안틸레스의 손을 잡고 흔들다가 그대로 친구의 몸을 껴안았다.
“살아있는 자네 얼굴을 보니 기쁘군.”
“이쪽도 마찬가지!”

웨지가 루크의 포옹을 풀더니 그의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죽음의별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정신이 날아가는 줄 알았다고. 이 멍청하고 무모한 친구야.”
루크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레이아가 말해 준 거야?”
“음. 내가 물어봤거든.”

웨지는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의 눈길을 피하는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지친 얼굴에, 약간 충혈된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말이야. 아마도 황제와 한판 승부라도 내러 갔나보다 했지.”
루크가 고개를 들고 피식 웃었다.
“한판 승부라……”
“제발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이야기나 좀 해 봐. 난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는 거, 알지?”
웨지는 갑자기 풀린 긴장으로 노곤해진 몸을 억지로 경쾌하게 놀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M_계속 읽으시려면 눌러주십사|닫으셔도 됩니다|조그만 초록색 행성 엔도, 그 가운데 ‘살아남은’ 동맹군들이 모여앉은 이워크 마을은 모스 아이슬리의 술집이 무안할 정도로 떠들썩했다. 아직도 붉게 타오르고 있는 죽음의별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검은 하늘에서는 축포가 터지고 있었고, 인간형 생물들과 비인간형 생물들, 심지어 로봇과 드로이드들마저도 한데 어우러져 주위에서 주워담을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이용해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냈으며, 사람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서로의 생존과 귀환을 축하했다. 헤어졌던 친구들,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할 각오로 떠나갔던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나타날 때마다 공화국을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 사이에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그 때마다 악수를 나누고 서로를 포옹하고 흩어진 사이에 있었던 활약상을 전해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웨지 안틸레스는 그 중에서도 영웅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는 엑스윙 파일럿들로 이루어진 레드 편대를 지휘하며 밀레니엄 팔콘의 랜도 칼리시안과 함께 죽음의별 중심부를 파괴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마주치는 사람마다 등을 두드려주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특히 공격대에 끼지 못하고 엔도의 기지를 폭파하러 갔던 무리들과 마주칠 때에는 몇 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해 주어야 했다. 츄이한테 잡혔을 때에는 말로는 부족해 온갖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 신나게 그 때의 상황을 중계해 주었고, 그가 동작을 바꿀 때마다 츄바카는 그 커다란 손으로 웨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함께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었다. 웨지 역시도 솔로와 레이아, 그리고 츄바카가 도대체 어떤 경로로 털북숭이 이워크들을 동맹군에 끌어들였는지 그 사정을 듣느라 자신을 축하해주러 오는 사람들을 물리쳐야 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 모든 이야기를 웨지에게 들려준 이가 바로 C-3PO라는 점이었지만. 그 빌어먹을 말많은 드로이드 덕분에 그는 루크가 특유의 검은 제다이 복장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다른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장면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인사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 죽음의별 안쪽은 어땠어? 내부 장식은? 황제는 소문대로 꽤 괜찮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나? 나야 아직 덜 만들어진 철골더미나 에너지 덩어리만 보고 와서 말이야.”
옆에 앉은 루크가 한참동안 땅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자, 참지 못한 웨지가 농담을 건넸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몰랐다. 호스에서 한쪽 손을 잃어버리고 돌아온 루크를 접한 후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공화군 최고의 영웅이며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공화국의 수호자는 때때로 웨지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어서 가끔씩은 과연 그가 자신과 장난을 치며 무모하게 엑스윙을 몰고 다니던 바로 그 청년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웨지.”
“응?”
“자네…….아버지 말야, 어떤 분이셨나?”
“엑? 웬 우리 아버지?”
웨지는 난데없는 루크의 질문에 턱을 긁적거렸다. 벌써 수염이 엷게 자라나 있었다.

“흠, 뭐…그렇게 물어본다면야……호탕한 성격이었다고 말해야 하나. 뭐 다투기도 많이 했지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시기도 했으니까. 전투기나 우주선에 대한 지식들은 대부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들이지. 사람 다루는 법을 알려준 건 주로 어머니였고. 커다란 몸집에 수염투성이에, 약간은 촌스럽고 목소리도 커다란, 멋없는 아버지였지. 해적들과 같이 서 있어도 해적으로 오인 받았을 거야, 아마.”
웨지는 팔짱을 끼고 킥킥거렸다.

“아픈 기억을 꺼내는 건가?”
루크가 조용히 물었다.
“아냐아냐, 그렇지 않아. 하긴, 그 때만 해도 참 미친 듯이 날뛰고 다녔는데 말이야.”
웨지는 멍한 표정으로 눈 앞의 허공을 주시했다.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렸으니까. 게다가 코르섹(코렐리아 수비대)은 해적들을 잡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됐거든. 아마도 그 때 돌아다녔을 때 얻은 조종술도, 그 때 삭이지 못한 분노도 지금 내가 여기 와 있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야. 아아 그렇지. 그리고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공화군에 있지도 않았겠지.”

웨지가 루크에게 고개를 돌리고 씨익 웃었다.
“아버지 덕분에, 항상 ‘반항하는’ 기질을 몸에 익히게 됐거든.”
그 말에 루크도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니, 얼굴도 알지 못하는 부모님이 궁금해진 거야?”

루크와 웨지는 야빈 전투 이후로 몇 년을 같은 편대에서 활약하며 우정을 쌓은 사이었고, 따라서 두 사람 모두 서로의 과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특히 제국에 대한 반감으로 입대한 젊은이들은 다른 모든 과거는 함구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제국에 반기를 들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언젠가 자연스레 본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마련이었다. 루크는 우주 스테이션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웨지의 부모님이 해적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그가 어린 나이에 홀로 떠돌며 범인들을 추적했던 사실을, 그리고 그 후 공화군을 위해 밀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웨지는 루크가 타투인에서 삼촌 부부의 손에 자라났다는 것을, 전 공화국의 제다이라는 오비완이 그를 앨더란에 데려오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록 승진은 루크 쪽이 빨랐지만, 야빈 전투라는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엑스윙 파일럿 가운데 가장 어리면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인 건가.”
“아냐?”
루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적어도 그 중 한 분의 얼굴을 막 뵙고 온 참이야.”
“뭐라고? 어디서?”
웨지는 잠시 입을 헤 벌리고 앉아 있다가 루크의 반응에 놀라 저도 모르게 다시 물었다.
“죽음의별에서?”

공화군의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부모님이 제국군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혹은 그 반대로 나이가 조금 든 지휘관들의 자식들이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해 제국군으로 복무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너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며?”
“지금은. 방금……장례식을 치르고 왔지.”
“죽음의별에서?”
웨지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죽음의별에 계시던 아버지를 모시고 나와서,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루크는 고개를 들고 웨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웨지, 정신차리고 잘 들어. 레이아를 제외하고 네게 최초로 고백하는 거다. 어차피 한은 레이아를 통해 알게 될테니까.”
루크의 단호한 말투와 밝은 푸른 눈빛에 웨지는 잠시 몸이 굳었다.
“가, 갑자기 조금 무섭게 돌변하는군. 뭔데?”
“황제가 죽는 것을 내 눈앞에서 봤어. 다스 베이더가 죽였지. 그리고 황제가 입힌 상처 때문에 그도 역시 죽었고.”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윗선에다가 보고는 한 거야?”
잔뜩 긴장했던 웨지가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베이더는….내 아버지였다.”

루크는 한참동안, 아무런 반응없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웨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웨지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무엇인가를 살피려는 듯이 눈동자를 날카롭게 굴리며 루크를 관찰하는 듯 했다. 마음만 먹으면 웨지가 그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루크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공화군의 공적이 바로 네 아버지였다고?”
“그래.”
“얼굴을 본적도 없다면서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느낌으로.”
“코렐리안 상인이 밑지고 판다고 하는 말보다 더 황당한 소리로군.”
웨지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루크가 다시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웨지가 입을 열었다.
“알아알아, 제다이 나으리. 네가 ‘느낌으로’라고 하는 말보다 더 믿을 수 있는 건 없지.”

루크는 천천히, 그리고 빠른 속도로 격렬하게 동요하는 웨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녹색 눈의 파일럿은 이해력과 적응력이 그 누구보다도 항상 빨랐다. 

“언제?”
루크는 웨지의 질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른손을 잃었을 때, 그가 직접 말해주었지.”
“매정하고, 무정하고, 지독한 부성이로군.”
웨지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투덜거렸다. 그는 지저분한 발로 흙바닥을 헤치기 시작했다. 루크는 조용히, 친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뭐, 좋아. 어쨌든 황제가 아버지인 것보다는 그래도 낫구만. 게다가 황제를 직접 없앤 것도 베이더라며?”
한참 후에 들려온 웨지의 말에, 루크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웨지는 때로 한을 무한케 할 정도의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었고, 이번에도 루크는 조금이나마 머릿속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마지막에 베이더는 내 아버지로 돌아왔지. 예전에 그가 제다이였던 시절로.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눈을 감으셨고, 지금은 옛 지인들과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 걸로 믿어”
루크는 눈을 내리깔고 방금 보았던 아버지와 요다, 그리고 오비완의 영을 떠올렸다. 모든 것을 끝낸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이제 만질 수도, 다가갈 수도 없지만, 루크는 그들이 이 우주에서 그 누구보다도 평온한 포스를 지니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새롭게 탄생할 새로운 공화국의 영웅으로 취급해야겠군. 어쨌든 결과만 들여다보았을 때.”
웨지는 약간은 비꼬는 듯한 말투에서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바꾸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설명할 작정이지?”
“사실대로 보고하는 수밖에 없지. 어차피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아크바 제독과 몬 모스마에게 모두 털어놓아야 할 테니까.”
“네가 제다이 훈련을 받은 이후로, 넌 엑스윙보다 오히려 정치가들과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니 말야.”
“어쩔 수 없지. 그들이 알고 있는 한, 나는 유일한 제다이니까.”
루크는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딘가에 숨어있을 다른 제다이들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루크.”
“응?”
“내가 말할 필요도 없고, 너라면 알아차리겠지만…”
루크는 말꼬리를 흐리는 웨지의 모습을 미소를 띠며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네 편이다.”
웨지가 고개를 똑바로 들고 루크의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물론 공화군에 있어 누구보다도 중요한 존재인 너를 높은 사람들도 어떻게 할 수 있으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정말로 만의 하나라도 누군가가 이 일로 너를 음해하려고 하거나 공격하려고 한다면, 나는 항상 네 편에 서겠어. 내 말뜻 알지?”
“그래.”
루크는 잠시 숨을 내쉬며 자신을 둘러싼 진실과 따스한 감정으로 가득 찬 포스를 음미했다.
“그래, 친구.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렇다면 좋아. 내가 저기 가서 음료수를 들고 올테니 우리 한잔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긴~~~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돌아왔을 때 다른 사람한테 붙잡혀 있으면 아까 한 말 취소해 버리겠어.”
웨지는 무릎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아아,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 아직도 우주공간에서 휭휭 돌아가는 엑스윙 안에 앉아있는 것 같아. 오랜만에 제대로 된 중력이 있는 행성에 내려오니 몸이 적응하기 힘들군.”
웨지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잠시 서 있더니 루크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그래도 오늘밤만은, 우키와 팔씨름을 해서 이길 정도의 여력이 남아있어. 자네가 또 다른 폭탄 같은 선언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이제 더 이상 그런 건 없겠지?”

루크는 자신에게 윙크를 해 보이고 음료수 쟁반을 들고 있는 R2D2에게 걸어가는 웨지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불렀다.
“그런데 말야, 웨지.”
“응?”
웨지가 돌아보았다.
“레이아는 내 누이야.”
쿵!

그 후로 오랫동안, 포스를 느끼는 루크의 능력으로도 웨지의 그 커다랗고 이상한 비명소리가 그가 앞에 서 있던 이름모를 이워크에게 걸려 넘어지면서 무심결에 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마지막으로 터트린 폭탄에 의한 것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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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중에 언급된 웨지의 과거는 스타워즈 EU 설정입니다. 웨지의 부모님은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가 15세 때 우주 해적의 습격을 받아 두 분 다 돌아가시게 됩니다. 고아가 된 웨지는 홀로 해적들을 추적하여 그들을 소탕하고, 이후 공화군을 위해 밀수를 하다가 아예 공화군에 합류하지요.

웨지는 에피 4 때 루크와 함께 유일하게 귀환한 엑스윙 파일럿이고, 에피 5 때는 루크가 데고바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 친구입니다. 호스 전투 때 케이블이 망가지자 루크가 제일 먼저 찾은 사람도 웨지였으니, 두 사람이 어떤 동료였을지 대충 짐작이 가지요. 틀림없이 누구보다 믿고 뒤를 맡길 수 있는 좋은 친구였을 겁니다.  제 생각이긴 하지만, 루크가 무모한 청년이었을 시절에는 한보다 오히려 훨씬 죽이 잘 맞았을 지도 몰라요. 나이가 가장 비슷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