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영화라는 건 알았고,
라이언 쿠글러와 마이클 B 조던이 뭉쳤으니 흑인 중심의 영화일 거라는 것만 짐작하며 아무 정보 없이 보러 갔는데,
극장에 보러 가길 정말 잘했다. 이 영화는 올해 반드시 뭐든 거창한 상을 타야 한다고 생각해.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800년대 서부영화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저들이 살던 세계가 시카고로 대변되는 도시에 비해 변화가 적었다는 의미도 되겠지. 중반까지도 배경과 인물들을 설명하는 데 한참 공을 쏟아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이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헐리우드 영화를 보아 왔음에도 흑인의 역사와 문화는 아직도 낯섦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기 익숙해지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주어서 그 시간들이 그리 불만스럽지 않았다.
클럽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 뒤로는 급격히 음악이 영화의 중심을 꿰차는데 그 매개가 되는 어린 주인공이 다른 사건에 있어서는 존재감이 굉장히 희미하다는 점에서 뱀파이어들의 말대로 그가 영혼을 뒤흔드는 ‘음악’을 전달하는 통로일 뿐이라는 이중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살아있는 역사’이고 그래서 반드시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야 현재를 미래로 이어나갈 수 있기에.
그리고 보고 온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그 장면’은 너무 아름다워서 표현할 말이 없다. 아, 아직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미지를 감정을 그려낼 수 있구나. 아직도 창작에는 남은 공간이 있구나. 이렇게 어우러지는 한과 흥이라니.
“블랙 팬서”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아시아, 특히 북동아시아에서 자라 온 나는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무엇을 자신의 뿌리로 여길지 짐작하기가 힘들다. 1, 2대 이민자라면 모를까 떠나온 지가 너무 오래된 이들은 이제 출신 부족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졌을텐데, 그렇다면 노예시절에 발전시킨 저 문화일까.
신기할 정도로 계속 장르가 바뀌는데 위화감은 크지 않다. 나는 봉준호 이후로 이런 식의 장르섞음이 이제 또 하나의 장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후반부는 호러 영화로서도 나쁘지 않고, 백인들이 또 다른 한과 흥을 지닌 아이리시계 음악을 들고 오는 것도 유쾌했다. 그래, 블루스에 밀리지 않고 대항할만한 건 찾기가 어렵지. 굳이 섹스장면이 그렇게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렇게 거침없는 것도 그들의 특성이니까.
영화가 정말 많은 것을 말하고 있고, 과거의 많은 것을 이어받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크게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들이고.
캐릭터가 너무 ‘여신’처럼 그려진 건 아닌가 하지만 애니 배우가 좋았다. 헤일리는 이제 완전히 성인이 되었구나 싶고. 쿠글러여, 당신이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마이클 좀 그만 벗겨 ㅋㅋㅋㅋㅋ 그리고 중국계 부부로 나오는 두 배우도 좋았다. 특히 부인인 그레이스는 배우도 캐릭터도 좋았어.
스크린X로 봤는데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 기회가 생기면 좋겠지만…과연 내가 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나갈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