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글을 쓰지 않으면 표현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걸 새삼 실감 중이다.
아무래도 신체 말단이 점점 둔해지는 게 느껴져 얼마 전 필사를 시작했는데,
남의 글을 베껴 쓰다 보니 그 사실이 점점 더 절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필사를 시작하고 한 달도 안 돼
색잉크 몇 개와 만년필 두 자루를 더 마련했다.
운이 좋았는지 마침 그 시기에 할인을 하고 있었다.
할인 기간이 끝나고 나니 곧바로 가격이 쑥 올라갔지만.
여하튼 필사책도 생각보다 빨리 소진되어 결국 공책을 샀는데,
내게는 베낄 책이 딱히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책이야 많지만 사춘기 때와 달리 이제는 감명받은 문구를 따로 표시해둘 나이도 아니라.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책과 일회용 만년필을 들고 다니며 뭔가 생각날 때마다 적곤 했는데
한 십년 전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갖고 있던 모든 일기장을 물에 적셔 찢으며 그 공책들도 떠나 보냈다.
그냥 그때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불시에 떠나고 나면 남은 것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에.
컴퓨터로 뭔가를 쓰면 확실히 속도가 빨라지지만
손글씨로 일기를 적기 시작해야 할까 고민이 되네.
모든 게 결국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하다.
나이들었다는 또 다른 증거 같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