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즐” (2024)

가난한 나라의 공주님이 머나먼 부자나라 왕자님의 청혼을 받고 가족과 함께 혼인식을 치르러갔으나 실은 용의 제물이 되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오, 재미있었다.
고전적인 동화 비틀기일뿐만 아니라
화면이 화려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혼례복 입는 장면이 너무너무 내 취향이라 즐거웠는데 나중에 단순히 눈의 즐거움을 위한 게 아니라 스토리적으로 이유가 있음을 보여주는 게 좋았어.

아버지의 등장이 내게는 꽤나 반전이었는데, 비록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뒤늦게 뉘우치긴 해도 사실을 알면서 딸을 팔아 넘겼다는 점에서 동화의 탈을 쓴 이 스토리 안에서는 그런 결말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납득했다. 새엄마의 캐릭터도 좋았어. 특히 ‘밧줄 장인의 딸’이라는 세세한 설정이 붙어 있는 부분으로 두 집안의 차이를 뚜렷하게 확인시켜주었고.

내 기억속의 밀리 바비 브라운은 어린아이였는데, 이젠 정말 다 컸구나.
하기야, 난 스칼렛 요한슨도 축구 영화로 처음 접했기에 그가 섹스심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

….밀리 바비 제발 스타워즈 성인 레이아 공주 역할로 영화 하나만 찍어주면 안 될까. ㅠㅠㅠㅠㅠㅠ

이재명 당선

기쁜데….

득표율을 보니 마음이 해소되지 않고 여전히 착잡할 따름이다.

매국노가 열 명 중 네 명…
20대 남성은 75퍼센트가 극우 보수에 차별주의자…

이 나라 괜찮은 거냐.

“씨너스: 죄인들” (2025)

뱀파이어 영화라는 건 알았고,
라이언 쿠글러와 마이클 B 조던이 뭉쳤으니 흑인 중심의 영화일 거라는 것만 짐작하며 아무 정보 없이 보러 갔는데,

극장에 보러 가길 정말 잘했다. 이 영화는 올해 반드시 뭐든 거창한 상을 타야 한다고 생각해.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800년대 서부영화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저들이 살던 세계가 시카고로 대변되는 도시에 비해 변화가 적었다는 의미도 되겠지. 중반까지도 배경과 인물들을 설명하는 데 한참 공을 쏟아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이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헐리우드 영화를 보아 왔음에도 흑인의 역사와 문화는 아직도 낯섦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기 익숙해지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주어서 그 시간들이 불만스럽지 않았다.

클럽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 뒤로는 급격히 음악이 영화의 중심을 꿰차는데 그 매개가 되는 어린 주인공이 다른 사건에 있어서는 존재감이 굉장히 희미하다는 점에서 뱀파이어들의 말대로 그가 영혼을 뒤흔드는 ‘음악’을 전달하는 통로일 뿐이라는 이중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살아있는 역사’이고 그래서 반드시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야 현재를 미래로 이어나갈 수 있기에.

그리고 보고 온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그 장면’은 너무 아름다워서 표현할 말이 없다. 아, 아직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미지를 감정을 그려낼 수 있구나. 아직도 창작에는 남은 공간이 있구나. 이렇게 어우러지는 한과 흥이라니.

“블랙 팬서”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아시아, 특히 북동아시아에서 자라 온 나는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무엇을 자신의 뿌리로 여길지 짐작하기가 힘들다. 1, 2대 이민자라면 모를까 떠나온 지가 너무 오래된 이들은 이제 출신 부족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졌을텐데, 그렇다면 노예시절에 발전시킨 저 문화일까.

신기할 정도로 계속 장르가 바뀌는데 위화감은 크지 않다. 나는 봉준호 이후로 이런 식의 장르섞음이 이제 또 하나의 장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후반부는 호러 영화로서도 나쁘지 않고, 백인들이 또 다른 한과 흥을 지닌 아이리시계 음악을 들고 오는 것도 유쾌했다. 그래, 블루스에 밀리지 않고 대항할만한 건 찾기가 어렵지. 심지어 그 둘의 대립 역사도 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굳이 섹스장면이 그렇게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렇게 거침없는 것도 그들의 특성이니까.

영화가 정말 많은 것을 말하고 있고, 과거의 많은 것을 이어받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크게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들이고.

캐릭터가 너무 ‘여신’처럼 그려진 건 아닌가 하지만 애니 배우가 좋았다. 헤일리는 이제 완전히 성인이 되었구나 싶고. 쿠글러여, 당신이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마이클 좀 그만 벗겨 ㅋㅋㅋㅋㅋ 그리고 중국계 부부로 나오는 두 배우도 좋았다. 특히 부인인 그레이스는 배우도 캐릭터도 좋았어.

스크린X로 봤는데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 기회가 생기면 좋겠지만…과연 내가 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나갈지 모르겠네.

하이 포텐셜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온 범죄수사물.
프랑스 드라마 리메이크작이라고 한다.

굉장히 빼어난 지능과 인지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나
평소 소소한 직장을 전전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주인공이
경찰서 청소부로 일하던 중 우연히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지적한 일을 계기로
수사 자문으로 발탁되어 진행되는 이야기.

이런 수사물이 너무 오랜만이라 대단히 반가웠다.
미국 내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한 것도 있지만
OTT 시대로 오면서 이런 옴니버스 류 수사물이 대거로 줄어서 아쉬웠는데
오랜만에 빈 자리를 채워주었어.

뭐, 능력은 뛰어난데 성격적인 결함이 있다, 는 건 수사물 주인공의 클리셰인데 그보다도 주인공이 애 셋을 키우는 싱글맘이라는 사실이 독특하다. 생각보다 성격도 상당히 무난하다. 처음에는 어딘가 괴팍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 것 같으나 두 화만 정도만 지나도 본인이 예민한 인지능력으로 고생한다는 점만 빼면 아이 셋을 키우면서 참을성도 꽤 강하고, 이해심도 있고, 다른 작품들의 반사회성 주인공들과 달리 사회성도 좋고 사교성도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클로저”의 브랜다 리 존슨이 더 독특한 편이었지. (으앙, 너무 좋아 ㅠㅠㅠㅠ 왜 얘는 OTT에도 안 들어와 있는 거야….ㅠ.ㅠ 가끔 “클로저”랑 “메이저 크라임스”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단 말야. 왜 없는데 ㅠㅠㅠㅠㅠㅠㅠ)

파일럿 이후 캐릭터를 개성적으로 밀고 가지 못하고 처음부터 아예 ‘착한 드라마’로 노선을 잡은 걸로 보인다. 실제로 수사물의 질로 따지자면 절반 정도의 에피소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데… 2시즌도 아니고 1시즌 13화짜리 작품이 벌써부터 이러면 조금 문제가 있다. 작가진의 능력 부족인 건지, 아니면 2시즌에 가서야 자리를 잡을 건지.

대신 캐러덱과 소토를 비롯해 오즈와 대프니까지 팀원들은 모두 귀여워서 마음에 들어.
그게 참 장점과 단점이 현저하게 존재하는지라 이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렵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