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플레이어 원

첫부분은 제대로 된 디스토피아 소설이라서 오, 생각보다 의외인걸,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 이 미친놈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렇군. 정말 팬질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이건 집착을 넘어서,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걸 옮긴 역자가 불쌍해질 지경이었어. ㅠ.ㅠ

그런데 확실히 스토리 자체에 긴박감이 있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지막 챕터에 와 있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훌륭하지 않은가.
나보다 앞선 세대이긴 해도 내게 익숙한 레퍼런스도 많아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었고. 

아르테미스와의 이야기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조금 사족처럼 느껴지긴 하는데
작가와 주인공이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오타쿠를 기반으로 한다는 걸 생각하면
일종의 메타라고도 여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넘어갈만 하다.

다만 그놈의 ‘일본문화’에 대한 인식마저 정말 어디다 내놔도 비웃음을 살만한 ‘서양 오타쿠’ 그 자체라… 일본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작가여, 주변에 일본계 미국인이 한 명도 없단 말이냐. 내지는 현대 일본 문화도 전혀 찾아보지 않았단 말이냐. 어떻게 그 부분까지 80년대에서 단 한 치도 업그레이드가 안 되어 있는 거지.

끝부분에 카타르시스는 좋았는데 마무리는 미흡하다.
거기서 끝나는 거야? 아니 정말, 여기서 끝난 거냐고?
그럴려면 홀리데이의 마지막 메시지 왜 넣은 거야.
아니 물론 그 주인공이 메시지를 듣고 스위치를 팍 끈다! 고 결정한다면 오히려 캐릭터 붕괴가 맞긴 하겠지만. 그래도 “아, 잘 놀았고, 생각해볼만한 윤리적 메시지도 넣었으니 다 이루었도다.”의 느낌이 강해서 조금 어리둥절.

“얼터드 카본”(2018)

인간의 정신을 기억저장소에 보관하고 백업할 수 있게 되어, 그게 부서지지 않는 한 육체를 갈아 타며 영원히 살 수 있는 사회.

뭐랄까, 이렇게까지 80년대를 표방해도 되는 걸까
하고 첫 화면부터 의심스러웠던 작품.
그런데 놀랍게도 원작 소설이 2008년 작이었다.
아니 설마…원작도 이런 내용은 아니겠지. 제발 설정만 가져왔다고 말해줘.
안 그러면 너무 슬플 거 같은데.

그런데 보는 내내 “아, 이거 너무 촌스러”라고 생각하면서도
재미있게 봐서 내 감수성 촌스럽구나 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자라며 보내온 시대가 그렇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 걸까 싶기도 하고. 캬캬캬캬캬
여하튼 리들리 스콧이 참 많은 걸 잘못했어. 

매 화마다 벗기기로 계약하고 배우들에게 얼마나 줬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도대체 왜 이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애들을 거의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벗기는 거지. 굳이 문란함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으로 보여줄 필요는 전혀 없잖아. 아니면 그정도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자신이 없는 건가? ]
앞부분은 매우 흥미롭게 보다가
확실히 뒤쪽에서는 실망하는 부분이 늘었는데

나는 이 이야기의 기본 틀이 혁명과 종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그 이야기는 심지어 겉핥기도 하지 않고 지나가고 결국은 너무 개인적인 수준에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시즌을 염두에 둔 기획인건지 어쩐지
여하튼 굉장히 용두사미가 되어 버렸다.

하여간 사상적 주축 없이 사랑에 매달리는 사내자식이란. -_-;;;

하지만 언니 절 가져요!!!!

조엘 킨나만이 그 커다란 정치에 항상 소중히 갖고 다니는 유니콘 가방이 귀여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