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Natural 낙서] 먹귀

샘은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평소에 딘의 식욕이 좀 지나치긴 했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동안 전국을 횡단하며 신문을 뒤져도 그럴듯한 사냥거리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자 딘은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인지 어느날부터 미친듯이 먹어대기 시작했다. 아침점심저녁을 가리지 않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다 못해 칼로리가 폭발할 것 같은 푸짐한 음식을 입 속에 쑤셔넣었고, 편의점이 눈에 띌 때마다 곱게 지나치지 못하고 군것질거리를 한아름 사들고 왔으며, 한밤중에 모텔방에서도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자동판매기를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샘이 한대 얻어맞을 각오를 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혹시 임신이라도 한 게 아니냐고 물었을 때 평소처럼 위트 넘치는 말대꾸를 하기는커녕 마지막 남은 싸구려 초코바 하나를 입 안에 우겨 넣으며 눈썹만 치켜 올리는 딘을 본 샘은 진심으로 형의 지갑을 빼앗고 손발을 묶고 냉장고에 자물쇠를 채워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다.  

이 같은 행각이 2주일 쯤 지속되자 샘은 마침내 맞아죽을 각오로 다이어트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딘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의외로 딘은 동생의 말에 순순히 응해주었다. 일도 없이 무위도식하며 빈둥거리다 보니 스스로도 내심 어느 순간 손에 잡힐지 모르는 허릿살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샘은 곧 그 결정을 후회해야 했다. 식욕에 삐딱한 장난기까지 결합된 딘은 먹거리를 발견할 때마다 샘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나 이거 먹어도 돼요, 엄마? 이건요? 이건요?”라고 일일이 물어보며 낄낄거렸고, 하루종일 계속되는 ‘먹어도 돼?’에 지친 샘이 “안돼! 죽어도 안돼! 굶어! 차라리 굶어! 정 배고프면 암염탄을 씹어 먹어!”라고 발작을 할 참이면 갈망과 처량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 샘은 딘이 그런 표정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진열장에 놓여 있는 파이를 응시하며 손가락을 빨았다.  

그리하여 그날 밤, 하루빨리 흥미로운 일감을 찾아 형의 권태- 와 식탐 – 을 물리쳐야겠다는 일념으로 노트북을 꺼내놓고 인터넷을 조사 중이던 샘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 그렇게 먹고도 주릴 수 있다면 말이지만 – 침대에 쓰러져 잠든줄만 알았던 딘이 뒤뚱뒤뚱 일어나 등뒤에서 부시럭거리며 먹을 것을 찾기 시작하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우, 인간아, 제발 좀…”
“새미새미, 나 이거 먹어도 돼?”
딘이 예의상 약간 소심하게, 하지만 웃음기를 잔뜩 띈 목소리로 등 뒤에서 물었다.
“그래, 먹어. 제발 먹어. 뭔진 모르지만 먹어. 나도 이젠 지친다.”
“아, 그럼 나 이것도 먹어도 돼?”
“먹어, 다 먹으라니까. 난 굶을 테니 형 혼자 다 먹어. 꾸역꾸역 돼지같이 다 처먹어. 그리곤 피둥피둥 쪄버려.”
“오! 양보하는 정신! 그럼 나 이것도 먹어도 돼?”
“아, 진짜 인간아, 네가 무슨 다섯 살짜리 어린애냐! 나한테 안 물어봐도 되니까 그냥 다이어트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맘대로 하라고!”

빠지직. 이성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샘은 하루종일 은행부채처럼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짜증을 한꺼번에 터트리며 거칠게 몸을 돌렸다. 도끼눈을 치뜬 샘의 시선이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쪼그리고 앉아 내려다보고 있던 딘의 눈과 마주쳤다. 샘은 두 눈을 느릿하게 깜박거렸다. 침대 위에는 딘이 차마 단정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자세로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샘은 천천히 시선을 다시 돌렸다. 딘과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옷을 입은 ‘그것’이 샘을 바라보며 창피한 짓을 하다 걸렸을 때 딘이 그러는 것과 꼭 닮은 뻔뻔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붉고 도톰한 입술이 휘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지퍼를 열듯 귀밑까지 좌악 찢어졌다. 입안 가득 촘촘하게 박혀 있는 육식동물의 이빨이 강철 빛으로 번쩍거렸다. 줄로 갈아놓은 칼날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빨들 사이로 투명한 침이 줄줄 흘러내려 침대에 누워있는 딘의 셔츠에 얼룩을 남겼다. 흠뻑 젖어 미끌거리는 두툼한 혓바닥이 힐끔 나왔다 사라졌다.

시간과 공간이 일그러졌다. 시계의 초침소리가 멎었다. 위대하도다,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은 진짜였군요. 자신을 주시하던, 딘과는 전혀 닮지 않은 핏빛 눈동자가 깜박, 하고 움직였을 때 샘은 처음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세포 하나하나까지 새겨 넣은 혹독한 훈련에 감사하며 본능적으로 상체를 틀어 노트북 옆에 놓인 나이프 손잡이를 더듬었다.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디인!!!!!”

책상 위의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샘이 휘두른 칼날이 ‘그것’이 앉아있던 자리를 갈랐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그 자리에 없었다. 딘을 닮은 몸의 윤곽이 희미해지더니 서서히 사라져갔다. 체셔고양이처럼 공중에 둥둥 뜬 머리통이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춰갈 무렵 진짜인지 환청인지 모를 가르랑거리는 목소리가 샘의 귓전에 부딪쳤다.

“쳇, 아까워라. 저게 제일 먹고 싶었는데….”

샘은 몸서리쳤다.




[#M_끝?|less..|
“야, 너 뭐하냐. 달밤에 체조하냐?”
부시시 잠에서 깬 딘이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말했다. 한 손에 칼을 쥔 채 방 가운데 오도카니 서 있던 샘은 얼빠진 표정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는겨? 기분 나쁘게. 무슨 귀신이라도 봤냐?”
딘이 툴툴거리며 배를 문질렀다.
“야, 그건 그렇고 뭐 먹을 거 없냐? 배가 허전하네. 아까 식당에서 네가 못먹게 한 샌드위치 지금 먹어도 돼?”
“안돼애!!!!”
샘이 째진 목소리로 빽! 소리질렀다.


– 진짜 끝.

_M#]




모티브는 어렸을 적 유행했던 그 이야기. 근데 그거 일본 거예요, 한국 거예요?


덧. 미샤킹과 생수통, 그리고 달걀들.
나 미치. ㅠ.ㅠ 진짜로 저기서 삐약거리는 어린 졸개들이 태어나는 건가?? 미샤 씨가 품는 건가!!! 크핫핫.

[SuPerNatural 낙서] 먹귀”에 대한 16개의 생각

  1. 딘걸

    오오 웃다가 갑자기 무서워졌어 ㅋㅋㅋ 그래도 어릴 때 들은 이야기는 건너편 아파트 창문에서 턱받침하고 있다가 다다다다다 팔로 기어 오는 얼굴이 쵝오였지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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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심늘보

    일본 괴담같기도 한데 자세한 건 저도 모르겠어요. 아아 이번 먹귀는 정말 섬찟했어요. 샘이 돌아보는 게 조금만 늦었다면 으으으…부들부들. 너무 늦지 않았던 새미가 정말 굿죱입니다.

    그리고 미샤킹… 끄윽끄윽끄으으으으으으으윽! 5개 국어로 삐약거리는 졸개병아리들을 생각하며 전 컴퓨터 책상을 팡팡 내리치며 웃었어요. 미샤킹 만세.ㅠㅠ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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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사실은 뒤돌아봤을 때 이미 모조리 먹어치우고 핏자국만 남아있는 설정으로 가려고 했는데 형제에게 너무 모진 것 같더라고요, 흐흐.
      5개 국어로 삐약거리는 졸개병아리들, 꺄아! 그러나 저 달걀들은 대부분 삶은 달걀이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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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과주스

    먹는다는 말에 그만 얼굴이 화끈한 건 저뿐인가요(…)
    갑자기 인형 얘기가 생각났네요. 왜 그 아기하고 인형하고 단 둘만 남겨두지 말라고 한 괴담말이에요. 저는 그때 항상 맥도널드 광대가 생각나곤 하는데 그래서 저는 광고에서 그 광대가 애들하고 천진하게 놀고 있으면 굉장히 무섭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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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어머, 아닙니다. 제대로 캐치하신 거예요. 요즘엔 더 이상 먹는다는 표현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니까요.
      오, 저도 저런 괴담류 중에서 그 인형 이야기가 제일 섬득했어요. 제 머릿속에서도 그 광대 인형은 언제나 맥도널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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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갑자기 등골이 오싹….이라는 표현보다는 섬뜩해졌다는게 더 어울릴것 같아요. 후아후아 딘의 얼굴로 씨익 찟어지는 웃음 짓지마!! 떠올라버려!! 이러구ㅠㅠ 한동안 선선했다가 오늘 또 갑자기 더워졌는데…이런게 바로 더위를 물리치는 무서운 이야기네요ㅠㅠ 샘이 몸서리칠때 저두 같이 덜덜 떨었어요.
    그런데 미샤킹덕분에 회복했습니다ㅋㅋㅋ아니다….미샤킹과 어린 졸개들….이게 더 무서운 걸지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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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서역 누님 Lj에서 ‘미샤킹의 경우는 J2와 달리 팬들이 무슨 이상한 질문을 할지가 아니라 미샤킹이 무슨 말/돌발행동/질문을 할지가 더 무섭다’고 쓴 걸 읽었죠. 저, 그거 보고 진짜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다 똑같구나!! 라면서 감탄했어요. 아우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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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과쨈

    언니 나 딸기 먹어도 돼…였었나요? 동생 입장으로서 엄청 무서웠던 이야기에요 ㅠㅠ 딘을 먹다니 쩝쩝; 딘이 좀 맛나보이긴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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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어, 제가 들은 이야기는 형제였고 ‘이거 먹어도 돼?’였는데. 얘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나 봐요?
      딘이 좀 맛나보이긴 하죠.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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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나마리에

    딘걸님 얘기한 그 팔꿈치로 다다다다 기어오는 여자 얘기는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들었다가 온 교실이 떠나가게 비명을 질러서 반 애들이 짜증 냈던 일이.;; 아니 그건 다른 얘기던가… 투신 자살해서 머리로 콩콩 뛰어다니는 학생 애기도 듣다 죽을 뻔..
    아니다. 비명 지른 건 어메이징 스토리(맞나?) 얘기 듣다가였는데….
    각설하고 먹어도 돼, 얘기는 들어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갸웃

    식탐 딘 귀여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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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푸핫,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무서워했구나. ^^ 하긴 그 때 한참 그런 이야기가 유행이었지. 머리로 콩콩콩은 나도 싫었어. 어메이징 스토리는 거의 다 좋아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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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클라삥

    정 배고프면 암염탄을 씹어먹으라는 말에서 개미퍼먹어가 생각났어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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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웃, 전 말씀하신 개미퍼먹어가 뭔지 몰라서 인터넷 뒤져봤어요. 흑, 텔레비전을 안 보니 이런 일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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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디오티마

    흠, 전 모티브가 됐다는 이야기를 못 들어 본 것 같아요.
    와구와구 먹어대는 딘이와 그걸 짜증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는 새미가 바로 떠올라요. 아이구~ 귀여운 녀석들.
    찢어진 입 하니까 판의 미로의 그 장교랑 조커가 생각났어요. 둘 다 입 찢어지는 부분 반쯤 가리고 봤었는데… 무서워요.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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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와구와구 먹는 딘 너무 좋아요. 어쩜 그리 귀여운지. 요즘엔 계속 술만 마셔서 참 슬픕니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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