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조건의 영향력

의식과 육체의 관계, 안경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고[당시에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것도 지독하게 나빴다. 예전에는 렌즈의 품질이나 도수도 그리 다양하지 않아 두번째 줄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앞에 있는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아 산수 쪽지시험을 볼 때면 교단 앞에 나가 문제를 베껴야 할 정도였으니까.

그 때문인지 나는 거울을 거의 보지 않는다. 거울이란 주로 화장실에서 안경을 벗고 들여다보는 것이며 그래서 내게는 그리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이의 지극정성 노력 끝에 나이가 들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외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내가 가장 신기하게 여긴 것 중 하나는 콘택트 렌즈를 낄 때 많은 사람들이 거울을 들여다 본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아무 것도 안 보일 텐데 도대체 왜?라고 생각했던 내게 실제로 사람들이 그 거울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설고, 내가 이상하게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못생겼다는 게 아니다. 그저 낯설고 신기한 거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생김새는 아닌 것 같다. 평소에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팔, 다리 등은 익숙하건만 얼굴만은 이상하다. 그것이 몸에 붙어있다는 전체적인 모습을 상상하지 못한다. 거울을 볼 때에는 내가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이후에는 잊어버린다. 나는 내가 정확하게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가끔 남들의 말을 듣다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들이 보는 나는 내가 보는 나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서.

나 자신에 대한 이러한 감각은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나는 사람들을 제대로 알아보거나 기억하지 못하며 특히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세세한 면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히 붙여대고 찬찬히 살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누군가에게 “방학 동안에 예뻐졌구나”라고 말했더니 옆에 있던 애가 “쟤 쌍커풀 수술했잖아.”라고 말한 적도 있다. 난 걔 눈에 쌍커풀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러한 것이 반복되면 가시적인 것을 넘어 성격 그 자체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나는 사람들 간의 미묘한 신호를 쉽게 포착하지 못한다. 내 손짓과 반응은 매우 크고 과장되어 있다. 주위 환경이 보이지 않으니 처음부터 신경을 아예 쓰지 않는다. 폭넓은 주의력과 관찰력이 부족하다. 내 눈에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청각이라는 감각을 차단하면 눈을 뜨고 있어도 현실에서 완벽하게 괴리되어 내부로 침전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어렸을 때부터 “놀라운 집중력”이라는 소리도 간간히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꾸준히 주지시켜야 했다. 전체적으로 뿌옇고 희미해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현실감각을 극심히 해치며, 커다란 화면이나 뚜렷한 문자 속의 세상을 보다 가깝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부추긴다.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피부에 닿을 정도로 현실적인 비현실 속에 머물다 어딘가 몽롱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현실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 길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감상문에는 “그러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현실로 돌아와야 해.”라는 문구가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나는 아직도 그 주문을 애용한다. 지하철 계단을 한 발짝 내려갈 때마다 발 아래가 안개 낀 아지랭이처럼 흐릿하니 멀리 떨어진 공간처럼 보이는 건 현실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3인칭 작가가 주인공을 내려다보듯 평가한다. 멀리서 나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실과 비현실을 뚜렷하게 구분짓는 것은 오직 고통 –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 뿐이며, 나는 그것을 피하고 예방하기 위해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은, 딱 그 정도면 족하다.

우스운 점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현실주의자에 더 가깝다는 것이지만.

자폐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 역시 강도가 약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자폐증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게 맞는 듯 하다. 입에 늘 달고다녔던 말이 “용납은 하지만 이해는 못한다”였으니까. [친구들은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교육’과 ‘습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른다. 그것과 무심함을 활용하면 무의식까지도 속일 수 있는걸.

신체적 조건의 영향력”에 대한 7개의 생각

  1. 핑백: DOODADADA

  2. s.

    저는 누나와 정반대로 지극히 눈이 좋은 편인데, 뜻밖에도 이해가 잘 되네요.(성격 탓이겠죠.) 아무튼, 누나는 웃는 모습이 귀여우니까 괜찮아요. 🙂 생각해보면 십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놀랍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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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마리에

    나도 눈 나쁘긴 한데. ㅎㅎ 그대 만큼은 아니니까 난 성격인듯.
    인간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든 생각하든 전혀 관심이 없고…

    ….그런데, 난 거울을 어렸을 때부터 무서워해서 안 봤어. 그랬더니 내 얼굴이 낯설다는 느낌이 뭔지 알겠다능. ㅋ
    인형하고 거울을 무지 무서워했지 뭐야. 뭔가 다른 게 비칠 것 같아서, 방안에 거울 있는 거 싫어하고, 인형은 밤에 돌아 다닐 것 같아서 싫어하고. 흠…. 나 겁 많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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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난 내가 기억하는 한 항상 눈이 나빠서 어느 쪽이 먼저인지 몰겄어. 기본적인 성격도 확실히 문제이긴 하지만.

      난 그대와 달리 오히려 무서운 게 거의 없는 편. 웬만한 것에 대해서는 그냥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한달까. 어렸을 적 애들이 어두운 걸 왜 무서워하는지도 이해 못했다지. 어차피 안경벗음 암것도 안 보이니까 그런가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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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kesky

      이건 제 이론일 뿐이지만요. ^^* 근데 사람 얼굴 기억못하는 건 진짜 시력이랑 관계있을 거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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