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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아리아

너무 오랫동안 책을 안 읽어서 일단 국내 작가부터 시작하기로.

 이제까지 읽은 곽재식 작품들은 다들 좀 시끄럽고 산만한 데가 있어서 읽고 있으면 귓가가 근질거렸는데 – 거의 코니 윌리스 급이었다. – 의외로 이 작품들은 톤이 낮춰져 있었다. 발표년도가 섞여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익숙해진 걸까.아니면 내가 이제껏 한쪽으로 치우친 작품들만 읽었던 걸까. 아마 후자 쪽이 아닐까 싶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웃었던 작품은  “박흥보 특급”. “박승휴 죽어라” 도 좋았어. 이렇게 쓰고 보니 내 취향이 극명히 드러나는군. “토끼의 아리아”는 드라마화 덕분에 워낙 제목을 많이 들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구나. 정말로 ‘간’ 이야기였을줄은. 이 맥주 탐정이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다.

읽는 내내 내가 ‘동시대 작가의 동시대 작품을 읽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듀나 작품을 읽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이 내가 익숙한 상황과 문화적 배경이 근간이라는 사실이었는데 듀나가 나보다 몇 년 앞서있다면 곽재식 작품 속의 배경은 내가 살고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같은 ‘연도’와 함의를 공유한다. 어릴 적부터 늘 ‘과거’ 작가들의 ‘과거’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과거’ 작품들을 읽어왔는데, 내가 세월을 벌써 이렇게 따라잡았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르 카레가 현 시대를 배경으로 쓴 작품을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동시에, 가끔은 시대상을 남기는 데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다. 사회고발도 좋지만 플롯과의 균형이 맞지 않아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 가끔 짧고 둥그스름한 몸뚱이가 앞쪽이 더 비대해 기울어진 채 작은 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양새처럼 느껴진다. 젠장, 역시 표현력을 늘려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