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2017)

아는 분 덕분에 히든 피겨스 시사회에 가게 되어 보고 왔습니다.

원래 기대작이기도 했고 영화가 잘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기대한만큼의 작품이라 기분이 좋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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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나사에서 일하던 이른바 컴퓨터, 여성 인간계산기들 중에서도 ‘흑인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들어 여러 분야에서 과거에 무시되었던 여성들의 존재가 다시 조명되고 있는데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유색인종이었던, 그래서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층에서 조직과 역사에 남은 중요한 사건들을 뒷받침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하는 일’만큼이나 그들의 ‘삶’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부당한 취급을 받고 억압당하는 입장에서도, 그들 역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거죠.
흑인, 그리고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는데,
그게 정말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소소한 부분을 그려놓은지라 더욱 인상적이에요.
저렇게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이모양인데 그 위의 층위는 볼 필요조차 없다는 거죠.
60년대가 워낙 격동적이었던 때라 미시적인 것들도 전부 거시적인 것들과 연결되고요.  

이 영화의 영리한 부분은 그렇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울분이나 격렬한 흔들림을 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주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수면을 톡톡 치는데, 그마저도 지금 현대의 눈으로 보면 경악을 주기에 충분하고, 쉴새없이 그 작은 감정들이 꾸준히 이어지는지라 총합은 거의 비슷합니다.
가장 서러워야 할 부분에서 경쾌한 음악을 틀어주면 서러움이 두 배가 되죠.
백인들의, 그리고 남성들의 반론이 들어올 부분을 거의 완전히 차단하고 있고,
어찌보면 지나치게 착하고 깔끔하고 강박적으로 신경썼다는 느낌마저 드는데
아직까지 이 두 배로 겹친 소수자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이렇게까지 벽을 탄탄히 세워 신경써야 한다는 점이 안타깝고 화가 나네요.
중심인물은 타라지 헨슨의 캐서린 존슨인데,
개인적으로는 옥타비아 스펜서의 도로시 본과 자넬 모네의 메리 잭슨의 이야기가 더 많았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그 정도로 다른 두 캐릭터의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아무래도 제가 후대인이다 보니 캐서린의 일이 과거의 업적을 의미한다면 도로시와 메리의 일은 미래를 향하고 있어서 그럴 겁니다.  
앞으로 이런 영화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을 거예요. 서양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서도요.
전 요즘 헐리우드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
오바마 8년 정부의 영향이 크다고 보는데,
마치 김대중-노무현을 거친 한국 문화계가 이명박 정권 초기에 가장 다양한 이야기를 활발하게 쏟아냈던 것처럼 말이죠.
미국이 앞으로 트럼프의 4년을 어떻게 견뎌낼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빨리 후퇴하지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덧.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했더라면 좋았을 거예요. 이중적인 의미이긴 하지만 정 안되면 하나를 희생해서라도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제목을 보고 대충은 알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덧2. 원래 ‘컴퓨터’는 ‘계산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였지만 지금의 우리는 컴퓨터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기계’를 떠올리고, 그래서 작중에서 사람들을 계속해서 컴퓨터라고 지칭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묘햡니다. 당시에 그들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하나의 부품처럼 취급했는지가 단어의 뉘앙스에서 느껴진달까요. 실은 그냥 그때 사용하던 단어였을 뿐인데 말이죠.
덧3. 극적인 효과를 위해 실은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들을 끼워넣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통쾌하지만 당시에는 역시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던 겁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아직 여성들이 중심인 영화에는 상도 잘 주지 않는데.  
덧4. 여성들이 중심이다 보니 여성들간의 상호교류가 활발한 반면 남성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흑백 여성들간의 갈등과 대화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주인공과 백인 남성 중요 인물간의 교류는 스토리에 딱 필요한 정도만 있을 뿐 그 이상의 여지가 없어요. 이렇게 바꿔놓고 보니 정말 예전 영화들이 얼마나 남성중심적이었는지 실감하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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