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7년 8월월

아토믹 블론드(2017)

인터넷 지인의 도움으로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며칠 전이긴 했는데.

기존의 흔하디 흔한 냉전시대 첩보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타이틀을 보니 원작이 있더군요.

스타일은 좋습니다.
샤를리즈 테론과 소피아 부텔라의 비주얼이 아름답고
액션도 좋아요.

무식하게 치고받기보다 역시 여성이다보니
도구의 사용도 다양하고 처절하기도 합니다.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아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습니다.
어흑 언니 이제껏 이런 거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대.

그러나 로레인의 성별만 바꿨을 뿐,
그 외의 캐릭터 특성과 스토리는 기존의 첩보 영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서
델핀이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
소피아 정도의 배우를 데려왔으면 스토리상 그보다 중요한 역을 줘야 할 것 아닙니까.
아니면 그냥 남배우를 데려와서 그런 식으로 사용했었어야죠.
그게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에도 부합하고 말이죠.
[그건 그렇고 소피아 진짜 예뻐요. 정말로 사랑스럽습니다. 세상에.]

사실 생각해보면 전 정보를 전혀 모르고 영화를 보러 가서
처음 나오는 캐스팅에 눈이 뒤집어졌지만요.
토비 존스에 엥? 제임스 메커보이가 나와? 빌 스카드가드? 존 굿맨? 히익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매커보이 군은 이제 저런 ‘나쁜 남자’ 역할을 그만 둬야 합니다.
한 두개면 이해를 하겠는데 지금 얼마나 많은 닮은 캐릭터를 연속으로 하고 있는 겁니까.
안그래도 이런 인물이 지겨운데
영화의 마무리가….젠장, 작고 약삭빠르고 나쁜 남자 매커보이한테
카메라 똑바로 쳐다보고 쓸데없이 독백 읊조리는 것 좀 그만 시켜요.
이제껏 지겨울 정도로 봤는데
심지어 영화 내내 샤를리즈가 얼마나 멋있는지 봐라!!! 를 보여놓고
갑자기 이런 연출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전체적으로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안 잡힌다고요.

참, OST가 끝내 줘요.
정말 너무 익숙한 음악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전체적으로 스타일리시한 화면도 그렇고
중반까지는 참 좋더라구요.

시간때우기로 보러 가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때 늦은 냉전시대의 허무함과 덧없는 정치게임, 뭐 그런 게
빠졌더라면 오히려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택시운전사(2017)”

어쨌든 꼭 봐야할 것 같아서
가족들과 함께 보고 왔습니다.

영화의 톤은 마음에 들었어요.
담담하게, 기자인 피터의 카메라처럼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항상 약간 멀리서 접근하고
[이 영화가 가깝게 다루는 건 주인공 뿐이에요. 주인공은 중간에 거의 거리가 없는 듯이 바짝 붙어 있죠]
나중에는 잠시 꿈을 꾸었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들게 합니다.

그러다보니 제게는 오히려 극적인 장치들이 굉장히 거슬리더군요.
너무나도 흔한 클리셰적인 장면과 설정들도요.
딴건 그렇다치고 추격전과 갓김치 장면 좀 어떻게 합시다. 젠장, 열심히 보다가 두 장면에서 감정이 팍 식어버렸습니다. 정말로 그런 장면이 꼭 필요했을까요? 그리고 그놈의 늘상 나오는 홀아비와 딸….

관객은 택시운전사 김만섭에 이입해서 조금씩 영화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부분은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송강호잖아요. 거의 원맨 쇼에 가까운걸요.
관객들은 끊임없이 클로즈업되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 표정과 똑같이 반응합니다.

재미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인공인 그는 공통점을 느끼는 이입 대상입니다.
광주 출신인 제게 그는 외국인 기자인 피터보다도 더 멀고 바깥에 있는 외부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불만인 것 같은데,
전 이 영화가 잔인한 장면들을 최소한으로 자제해주어 기쁩니다.
딱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고 전시하지 않아준 데 대해,
카메라를 반대쪽으로 비춰 산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비참함과 비통함을 전달한 방식이
고마웠습니다.
물론 등급 문제가 컸겠지만, 전 그게 이 영화의 훌륭한 미덕이라고 봐요.

아쉬운 게 없었냐고 하면 물론 아니죠.
전 “화려한 휴가”와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안을 보여주는 다른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고 펑펑 울긴 했지만 그래도 그 영화는 제가 바랐던 게 아니라서 많이 실망한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도 기대한만큼 해냈고
기대한 정도로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는 때는
인터넷에서 거짓정보를 뿌려대며 왜곡하는 놈들이 사라질 때, 너무나도 확고하여 더 이상 정치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되지 않을 때일 겁니다.

그 때가 오기를 기원합니다.

덧. 초반에 카센터 사장인 정석용 씨와 송강호 씨의 연기가 문자 그대로 물흐르듯 합이 맞아서 입을 헤 벌리고 감탄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타이밍을 잴 수가 있지.

덧2. 평범한 사람들을 보여주려고 했던 건 이해하겠지만 그렇게까지 지방민들을 전부 못생기게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

덧3. 저는 그가 익명을 댈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이해해요. 당시에는 솔직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테고, 그동안 숨죽이고 살았다면 사실 지금도 – 만일 살아 있다면 – 주변 상황에 따라 여전히 나설 수 없을 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