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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Natural] Return (完)

수퍼내추럴 팬픽 Return 마지막 편입니다.
드디어!

왠지 샘에게 죄책감이 좀 듭니다만. -_-;;

* 아시다시피, 4시즌 2화와 3화 사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M_ [SPN] Return (完)| less.. |샘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연습중인 육상부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높았고 가을바람은 상쾌했다. 젊다 못해 아직은 덜 영근 근육들이 이곳저곳에서 꿈틀거렸다. 이곳에서는 아무런 갈등도, 어둠도, 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은 별천지였다.

그는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연습 중인 숀을 발견했다. 햇빛 아래서 밝게 빛나는 소년의 모랫빛 머리카락은 어디서든 금방 눈에 띌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오래도록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던 숀이 마침내 자신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장대를 쥐고 도움닫기 준비 자세를 취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소년이 달린다. 힘찬 두 다리가 크게 공중을 내어닫고 마침내 중력을 박차고 뛰어 오른다.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의 몸에는 가히 아름답다는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고 샘은 생각했다. 가느다란 막대가 지면에 우뚝 서자 유연한 몸이 활처럼 휘며 가로대 위를 날았다.

그러나 그의 발꿈치는 그를 더 높이 올려 보내길 거부했다. 숀이 의식적으로 재빨리 다리를 걷어 올렸지만, 이미 한쪽 지지대에서 이탈한 가로대는 덜컹거리며 바닥으로 추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샘은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고 생각했다. 손등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올려다보던 샘은 고정대를 벗어난 가로대의 한쪽 끝이 마치 필름을 거꾸로 돌린 듯 위쪽으로 급격하게 튕겨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숀이 안전하게 매트 위로 떨어졌다. 가로대는 충격에 흔들거렸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숀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샘은 웃을 수 없었다. 그는 딘의 말을 떠올렸다. 숀의 형 미치가 죽었고, 양부가 죽었고, 미치는 숀의 삼촌을 죽였고, 렉스를 죽였고, 짐을 죽였고, 편의점 아저씨를 죽였고, 앞으로 또 누구를 해칠지 모른다. 이제 그는 거기에 더해 급격히 향상되기 시작한 숀의 높이뛰기 기록이 그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말해주어야 했다.

어쩌면 하나쯤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어쩌면 그냥 저렇게, 아무 것도 모른 채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은지도 모른다. 소년은 어렸을 때 헤어진 형의 추억 따위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라면서 금세 잊어버릴 것이다. 자신을 부둥켜안고 울던, 어른들을 향해 고함치던, 추운 밤 한 이불 안에서 껴안고 함께 발장난을 치던 누군가 따위.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주었고,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 따위.

숀은 샘이 아니니까.

샘은 깍지 낀 두 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므로 딘도, 아무 것도 몰라도 될 것이다. 하나쯤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딘과 함께 만났던 셰릴이 숀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소녀는 숀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더니 샘을 돌아보며 손으로 가리켜보였다. 숀이 눈을 찡그리며 샘을 바라보았다. 샘은 고개를 들었다. 숀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샘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탠드 아래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년을 본 것은 그 때였다. 숀보다 몇 살 많아 보이지도 않는, 어지럽게 헝클어진 어두운 금발에 지저분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새파란 눈동자를 지닌 소년이었다. 미치는 꼬깃꼬깃한 점퍼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아무런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걸음걸이로 다가오더니 샘을 마주보고 똑바로 섰다.

샘은 그렇게 지친 눈동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만난 지상에 묶인 영혼들은 모두들 분노에 가득 차 있거나, 광기에 번들거리거나, 텅 비어있거나, 장난꾸러기 어린아이 같은 유혹적인 눈매를 하고 있었다. 미치는 달랐다. 그는 삶에, 아니 죽음에 지친 눈을 하고 있었다.

“딘은 잘못 알고 있어. 숀을 위해서가 아냐.”
샘은 미치의 표정 없는 얼굴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너를 위해서야, 미치. 아무도 모르는 너를 숀에게 알려주고 싶은 거야.”

미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악수를 청하듯 자연스럽게 한 손을 쑥 내밀었을 뿐이다. 샘은 미치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이렇게 쉽게, 다른 사람의 가슴에, 마음에, 심장에 손이 닿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욕망하는 사람의 심장을, 아무런 장애도 없이 이렇게 한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샘의 심장이 수축했다. 미치가 손을 비틀었다. 샘은 비명을 지를 듯이 입을 벌렸다. 갑작스런 들숨으로 부푼 가슴이 통나무처럼 빳빳하게 굳었다. 샘의 팔다리가 파드락거리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누군가 옆에서 새된 비명을 질렀다. 당황한 발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미치의 어깨 너머로 놀란 눈을 하고 얼어붙은 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샘의 심장근육이 점점 죄어오는 손아귀 위로 부풀어 오르려고 비명을 지르며 발악했다.

“샘!”
멀리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심장을 더욱 아프게 옥죄어 온다고 샘은 생각했다.
























샘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연습 중인 육상부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도 날씨는 쾌청했고, 잔뜩 기합이 들어간 구호 소리와 고함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려왔다. 간혹 며칠 전에 있었던 사건을 기억하는 친절한 학부모나 학생들이 샘에게 다가와 몸은 괜찮느냐고 물어보면 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괜찮아요. 그리곤 다시 연습 중인 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숀은 오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첫 시도에서 그는 가로대를 뛰어넘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추락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엉덩이에 걸려 실패했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가로대에 어깨를 부딪쳤다. 소년은 쓰러지고 좌절하고 화를 냈다. 짜증을 내며 장대를 내팽개쳤다가 다시 터벅터벅 걸어가 힘을 주어 끌어 당겼다. 소년은 다시 준비 자세로 들어갔다.

***

“이해할 수 없어.”
침대 위에 지친 몸을 접어 기댄 채, 샘은 나지막이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난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야. 숀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고.”

반대쪽 침대 위 한 가득 부품을 늘어놓고 총을 닦고 있던 딘이 코웃음을 쳤다.

“사냥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숀에게 미치가 여기 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왜 나를 공격했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가.”
“난 할 수 있어.”

샘은 고개를 돌려 딘을 바라보았다. 딘은 기름 먹인 천을 든 손을 멈추고 샘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짧게 마주쳤다. 딘이 눈가를 누그러뜨리며 피식 웃었다. 샘은 어디선가 저렇게 지친 눈빛을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는 천생 동생인 거야, 새미.”

딘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총을 닦는 일로 돌아갔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샘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딘과는 달리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샘은 딘의 가슴에, 심장 위에 손을 올릴 수 있다면 그도 딘처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도 상상 속에서도, 손가락은 전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무리 용을 써 봐도 까딱도 하지 않았다. 샘은 침대 맡에 등을 기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숀은 아홉 번째 시도에서 가로대를 뛰어 넘었다. 소년은 매트 위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신나는 덤블링으로 자신의 성공을 자축했다. 장대를 주워들고 운동장 구석에서 까르르 웃고 있는 린다를 향해 뛰어갔다.

샘은 멍하니 땀방울에 젖어 빛나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품속에서 전화기가 울렸다. 누군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5분 뒤,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샘은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루비였다.

샘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 끝



+++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이라 좀 서두른 감이 있어서 템포가 지나치게 빠르군요.

그건 그렇고 수뇌가 정말 기록 여러개 깨네요. 스타워즈 때도 안하던 짓을. ㅠ,ㅠ
[하지만 루크, 당신은 내게 있어 언제나 일순위!!!]

이제 재방까지 일주일 남았습니다. 그동안 알차게 충전했으니 슬슬 준비해야겠어요. ^^*

_M#]

[SuPerNatural] Return (5)

수퍼내추럴 팬픽 “Return” 5번째입니다.
아마도 다음편이 짧지만 마지막이 될 것 같군요.
그런데 뭔가…애들 성격이 걷잡을 수 없이 변하고 있어요, 끄응. 역시 길어지면 이런 문제가. -_-;;

어, 저를 원망하시면 안 됩니다. 비록 AU긴 하지만 [전 기본적으로 모든 슬래쉬 팬픽은 AU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4시즌 2화와 3화 사이라 해피엔딩따윈 애초에 없다고요. ㅠ.ㅠ


[#M_ [SPN] Return (5) | less.. |숀 애들러는 네 살 때 브래들리 집안에 입양되었다. 버려진 아이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들이 작고 허름한 국도변 모텔에 들이닥쳤을 때, 숀의 나이는 세 살이었다. 그리고 문앞에서 경찰들을 맞이한 것은 작은 동생의 손을 꼭 붙들고 선 여덟 살 난 마이클 애들러였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경찰의 추궁에 모텔 직원은 한 남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고 일주일 전부터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부모님은 어디 있느냐는 경찰의 물음에 마이클은 대화를 거부했다. 소년이 자진하여 입 밖에 내는 말은 단 두 문장 뿐이었다. “아빠가 데리러 올 거예요”와, “숀은 어디 있나요?”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고, 형제는 보호소에 맡겨졌다. 마이클이 세 살 난 어린 동생을 데리고 도망치려다 세 번째로 붙잡혔을 때, 아동복지국 직원들은 형제를 떨어뜨려놓는 것이 두 아이의 복지와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들은 복지국 직원의 팔과 다리를 물어뜯는 마이클의 사지를 붙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야 했다.

숀 애들러는 네 살 때 숀 브래들리가 되었다. 마이클 애들러는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고아원과 양육가정을 전전했다. 사소한 사건으로 소년원에 잠시 들어가긴 했지만 마이클은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았고, 특히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열여섯 살 생일이 지나고 얼마 후 마이클은 수많은 다른 고아들처럼 거리로 사라졌다.

일 년 뒤, 소년은 교외의 한적한 도로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수사 결과 경찰은 마이클이 한밤중에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도로를 홀로 걷고 있었고, 뒤늦게야 그를 발견한 자동차 운전자가 급히 핸들을 꺾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고한 운전자 또한 불운을 비켜가지 못했다. 경찰은 도로 옆 수풀에서 아름드리 나무를 들이받은 자동차와 운전자를 발견했다. 운전자의 이름은 카일 브래들리였다.

앨리스 브래들리는 남편의 생명을 앗아간 불쌍한 고아 소년을 동정했다. 숀 브래들리는 아빠를 빼앗아간 정체모를 누군가를 증오했다. 지문 조회를 통해 신원이 밝혀진 마이클 애들러의 시신과 그가 지니고 있던 소지품은 화장되었다. 그 중에는 브래들리 가족이 살고 있던 마을의 지도와 전화번호 목록이 포함되어 있었다.

윈체스터 형제는 경찰 보고서를 앞에 두고 한참 동안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딘이 의자에서 일어나 재킷을 집어 들고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을 때, 샘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형.”
“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딘이 돌아보았다. 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딘은 축 처진 샘의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몸을 돌렸다.
“금방이면 돼.”

한 시간쯤 뒤 딘이 모텔방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샘은 커다란 몸집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방 안을 이리저리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여어.”
“어떻게 됐어?”
 “잘. 나 때문인지 이번엔 꼭꼭 숨겨놨더라.”

딘이 허리춤에서 손때 묻은 그림책을 꺼냈다. 샘의 시선이 그 손의 움직임을 쫓았다.
“형, 생각해 봤는데…”
“그리고 이것도 발견했어.”
딘이 재킷 안주머니에서 작은 공책을 꺼내 탁자 위로 던졌다. 샘은 자기 앞에 놓인 공책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뭔데?”
“일단 읽어 봐.”

한참 뒤, 샘은 공책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맙소사.”

딘이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사오기 전에 죽었다는 삼촌이 최초의 희생자라는 데 20달러 건다.”
딘이 한 손으로 뒷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동생이 죽은 뒤에 입양된 조카 몸을 주물럭거리는 자식은 죽어도 싸다고 생각하지만.”
샘은 여전히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엔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동생을 행복하게 해준답시고 다른 방해물들을 다 제거한 거지.”
딘이 쓰게 웃었다.
“참 눈물 나는 형제애야. 그렇지 않냐?”
샘이 고개를 들었다.
 
“형.”
“왜?”
“진짜로 닥터수스 책을 태울 작정이야?”
“뭐?”
샘의 간절한 눈빛을 본 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건 또 뭔 헛소리야?”

“형도 일기장을 읽었으니까 알 거 아냐. 숀은 자기한테 형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어. 찾아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고. 게다가 지금까지 그림책을 소중히 간직한 걸 봐. 형이 손대는 것조차 싫어했잖아. 이건…미치가 숀에게 남긴 유일한 물건이야. 정말로 그냥 이렇게 없애버려도 되는 걸까?”

딘이 얼굴을 찡그렸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는데? 그동안 우리가 태운 시체들은 다 어쩌고? 남의 집안 납골당에 쳐들어가서 산산이 때려 부수고 남의 가게 침입해서 죽은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 태운 게 한 두 번이냐? 근데 왜 이번에만 안 되는데?”

“그냥…”
샘은 자신의 시선이 딘의 가슴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다음 말을 애써 꿀꺽 집어 삼켰다. 샘의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행동인지, 딘이 손을 들어 올려 가슴 위에서 대롱거리는 애뮬렛을 보호하듯 단단히 움켜쥐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샘. 미치를 없애려면 이걸 태워버려야 한다고. 다른 물건은 하나도 안 남았단 말이다.”
“딘.”
“샘.”
딘이 칼날 같은 어조로 공기를 갈랐다.
“미치는 살인을 했어. 그 애는 분노로 가득찬 귀신 나부랭이야.”
“분노가 아니라 동생에 대한 애정이겠지.”
“사람을 죽이는 게?”
“형이 그런 말을 하다니 그거 참 충격적인걸.”

샘은 자기도 모르게 묻어나오는 비아냥에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딘의 얼굴이 드라이아이스처럼 싸늘해졌다.

“경우가 달라. 그 땐 네 목숨이 달려 있었어.”
딘이 턱을 낮추고 두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렸다.
“숀은 학대당하고 있었어!”
샘 역시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대꾸했다.

“그런 건 산 사람에게 맡겼어야지! 미치는 죽은 몸이었잖아! 의도만 좋으면 다 되는 줄 알아?”
 딘이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샘도 똑같은 동작으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 그래. 진짜로 백만번 양보해서 동생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이승에서 떠돌다가 애를 도와주려고 그랬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은 아이들한테는 무슨 변명을 할 거냐? 그저 조금 심술궂게 굴었다는 이유로, 단지 여자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는 이유로 죽은 애들한테는? 그래그래, 처음에는 도저히 보다 못해 동생을 구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저질렀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자기감정을 제어하지 못해서 생긴 사고였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인데? 흙탕물에 발을 담그면 거기서 끝인 줄 아냐? 오물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온 몸에 튀고 악취가 배는 거야.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돼. 자기는 아니라고 말해도 서서히 사악함에 물들어 가지. 점점 더 익숙해지고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 나중에는 즐거움까지 느낄지도 몰라. 분노와 악의에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야.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새미, 한번 타락의 길에 들어서면 걷잡을 수 없는 법이야! 후회해도 소용없고 되돌릴 수도 없어!”

순간, 딘에게 도전하듯 온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던 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는 무심결에 자세를 낮추고 꽉 잠긴 목소리로 쥐어짜듯 속삭였다.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야, 형?”

이번에는 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쥔 주먹이 스르르 풀리면서 긴장감에 떨던 어깨가 상처 입은 짐승마냥 힘없이 아래로 쳐졌다.
“미치는 사라져야 해.”
한참 동안 넋이 나간 듯 조용히 서 있던 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미치를 이대로 내버려 두자는 게 아니야.”
샘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집게와 엄지로 콧잔등을 누르며 말했다. 오 하느님 제발, 형이 모른다고 해 주세요.
“단지 숀에게 기회를 주자는 거지.”
딘이 입술을 핥으며 빈정거렸다.
“네가 무슨 제니퍼 러브 휴잇이냐? 가족상봉 모임이라도 열어 줄 거야?”

“숀에게는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 그리고 우리에겐 그 아이의 추억을 박탈할 권리가 없고.”
“오, 추억! 말 한번 잘했다. 어느 쪽이 더 잔인할 거 같아? 우리가 조용히 일을 처리 하고 난 다음에 ‘그리고 모두들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아니면 그 불쌍한 어린애한테 ‘얘야, 우리가 네가 어렸을 때 잃어버린 형을 찾았단다. 그런데 벌써 죽어서 귀신이 됐더라. 게다가 지금도 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엉덩이를 닦아주고 있다지. 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네 형은 네 친구들을 죽이고 다니는 무시무시한 살인귀야. 짜잔, 놀랐지? 그건 그렇고 네 형이 죽은 게 네 아빠 때문이라고 내가 말 했었냐? 아니다, 그게 아니라 네 아빠가 죽은 게 네 형 때문이었던가?’라고 말해주는 것?”
딘이 숨을 몰아쉬며 차갑게 내뱉었다.
“쓸데없고, 주제넘고, 건방진 참견이야.”

샘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딘을 바라보았다. 그는 형이 이렇게까지 과민반응을 할지 예상하지 못했고, 그 이유도 짐작할 수 없었다.

“샘.”
잠시 후, 딘이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 애들은 우리가 아냐.”
샘은 짙게 가라앉은 딘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모를 리가 없었다. 단지 그는 이해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다.

“네 쬐끄만 머리통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가 모를 줄 아냐? 아버지가 조금만 부주의했더라면 우리가, 아니 내가 한 발짝만 삐끗했더라면 얘네들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다 헛소리고, 바보 같은 생각이야. 아버지는 끝까지 우릴 버리지 않았을 거고, 우린 훨씬 똑똑하니까 탈출에도 성공했을 거고, 나는 억울하게 죽었더라도 귀신으로는 돌아오지 않았을 거야.”
“그거야 모를 일이지.”
울컥 화가 치민 샘이 반항기 다분한 어투로 쏘아붙였다.
“형은 미치가 아니니까.”

딘은 피곤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응, 그래. 나는 미치가 아니니까. 아무리 끝내지 못한 일이 있어도, 아무리 한스러운 일이 있어도 나는 죽음에서 돌아오지는 않을 거야.”

그는 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덧붙였다.

“아무리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해도.”

마치 투명한 모래시계 안의 모래가 흘러내리듯 온 몸의 기운이 뻥 뚫린 구멍 사이로 허물어져 내렸다. 샘은 남은 조각이나마 산산이 깨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바닥에 발을 단단히 고정시켜야 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우리는 방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서 있는 딘조차도 실체가 아닌 유령처럼 느껴졌다. 방금 땅속에 묻힌 관에서 너울거리며 빠져나온, 샘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영혼.

샘은 내심 딘에게서 그와 다른 이야기를 듣길 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응, 내 영혼이 그런 거지같은 계약에 묶여서 지옥으로 가지만 않았더라면 나도 너를 떠나고 싶지 않았을 거야. 늘 너를 지켜보고 있었을 거야. 언제나 네 곁에 머물렀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네게 돌아왔을 거야. 새미.

그러나 그의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사냥꾼 딘 윈체스터는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는 죽었었고, 그의 말마따나 이 세상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 험하고 고독한 세상에 샘을 홀로 버려두고.

저 말끔한 면상을 으스러지게 갈겨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너도 숀이 아니야.”
딘이 한층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래, 그렇지만 언젠가 미치가 될지도 모르지.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샘은 겁을 먹은 듯 주춤거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딘의 이마에 의아한 주름살이 선을 그렸다.
 
샘은 고개를 떨구고 풀 죽은 목소리로, 그러나 여전히 고집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나라면 알고 싶을 거야.”

딘은 샘이 로봇처럼 뻣뻣하게 굳은 몸짓으로 등을 돌리고 문 밖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가운 불꽃같은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문짝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딘은 오랫동안 방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제기랄.”

딘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익살맞은 그림책을 집어들고는 지저분한 벽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패대기쳤다.

“염병할!!!”

– 계속


덧. 딘은 거짓말쟁이에 허풍쟁이. -_-;;;
덧2. 그리고 방금 사랑고백을 들은 주제에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는 샘은 바보. -_-;;; 어이, 방금 네 형 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천지개벽할 사건이 일어났다고.  

_M#]

[SuPerNatural] Return (4)

수퍼내추럴 팬픽 Return 4번째입니다.

* 오늘은 아무리 100퍼센트 순수한 눈으로 봐도 여성향입니다. 그래봤자 PG-13이지만.
* 전 역시 이쪽에 소질이 없군요. -_-;;;; 연애물은 너무 힘들어요. ㅠ.ㅠ 다음부터 이런 거 쓰나 봐라, 흑.  


[#M_ [SPN] Return (4) | less.. |“렉스는 숀을 괴롭혔고, 존은 숀이 좋아하는 린다의 남자친구였고, 편의점 주인은 숀을 도둑으로 몰았지. 숀이 끔찍이도 마음에 든 모양이야, 이 미치라는 녀석은.”
딘이 시동을 걸며 말했다.

“뭔가 안 맞아…”
샘이 중얼거렸다.
“뭐가?”
딘이 슬쩍 조수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의 금발이 자동차 앞 유리를 통해 비쳐 들어오는 햇빛에 한층 밝게 반짝였다. 샘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숀은 6개월 전에 이 마을에 이사 왔어. 사건이 일어난 건 그 후의 일이지. 숀한테 어렸을 때부터 귀신이 붙어 있었다면 지금 저렇게 멀쩡히 걸어 다닐 수도 없을걸. 브래들리 부인의 말을 들어봐도 어린 시절에 상당히 건강하고 평범한 아이였던 것 같고. 차라리 지금 이 집에 지박령이 붙어있거나 숀에게 폴터가이트가 들러붙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 집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지. 우리가 아는 한 폴터가이스트는 학교나 편의점까지 쫓아갈 수 없고 말이야.”
“그래서?”
“일단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미치라는 상상친구는 이번 일과 관계가 없다는 거야. 이 마을에 이사를 온 뒤에 뭐가 들러붙었다고 봐야지. 당사자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거나 숀에게 상당한 영매 끼가 있지 않는 한 귀신들은 주 경계선을 넘어서 쫓아오긴 힘드니까 말이야. 하여간 숀을 보호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숀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거나, 지금 처지가 비슷하다거나?”
“응. 그리고 어쩌면 그 영혼이 미치인 척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정신이 나가서 진짜로 그렇게 믿고 있든가,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숀에게 접근하려고 일부러 그러고 있든가.”

“흠.”
딘이 입을 열었다.
“숀은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이었어. 경찰이라니까 겁을 좀 먹은 것 같긴 했지만 주눅이 들거나 죄책감 같은 게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자기랑 별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던데.”
 “그럼 소위 단독범행이라는 거로군.”
샘은 등받이 깊숙이 몸을 기대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육상부 선수고, 열두 살 때 아버지가 죽었고, 편모슬하에서 자라고 있지…”
“그런 놈들한테까지 일일이 다 귀신이 붙는다면 세계멸망도 그리 어렵진 않겠다.”
딘이 차가운 어조로 비꼬았다.

“어이, 샘?”
조수석에서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자 딘은 고개를 돌렸다.
“벽난로 위에 사진이 놓여 있었어….”
샘이 눈을 반쯤 뜬 채 웅얼거렸다.
“야, 너 정말 괜찮은 거야? 눈이 완전 풀렸다고. 이봐!”
딘이 오른손을 내밀어 다리를 접고 좌석 아래로 거의 미끄러지다시피 한 샘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샘의 몸이 물결치듯 힘없이 흔들렸다.
 
“그거 알아, 형? 브래들리 집에는 갓난아기 사진이 없었어.”
마침내 샘이 마치 침대에 누워있는 양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뜨고 딘의 녹색 눈을 바라보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눈에 띄게 안도한 딘이 한 손으로 핸들을 꺾으며 물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인데 말이야. 가장 오래된 사진이래야 숀이 한 네다섯 살 쯤? 왜 그랬을까?”
“무지막지 못생겼었나보지, 너처럼. 주름투성이에 새빨개서는.”
딘이 투덜거렸다. 그 말에 샘은 어린애처럼 씨익 웃었다.
“확인해 볼 테야?”

***

“이 짓 진짜 오랜만이다.”
샘의 등 뒤에 바싹 붙어 있는 딘이 어딘가 들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쉿.”
샘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부드럽게 손을 놀렸다.
“야, 잘 좀 해봐. 너 나 없다고 그새 연습 안 했지?”
“시껏.”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사무실은 어두웠다. 창 밖에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긴 했지만 어둠에 익숙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문 앞에 잠시 서 있던 형제는 천천히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난 서류를 뒤질 테니 넌 컴퓨터를 맡아.”
 딘이 소리 없이 책상을 가로질러 철제 캐비닛으로 향했다.

“형.”
뒤따라 컴퓨터를 향해 걸어가던 샘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딘도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고개를 기울였다. 잔뜩 긴장한 귀에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형제는 본능적으로 책상 밑으로 몸을 날렸다.

“아우!”
“쉬잇!!!”
딘이 무의식중에 팔을 펼쳐 샘의 입을 가로막는 시늉을 했다. 사무용 책상은 180센티미터가 넘는데다 탄탄한 근육으로 무장한 두 형제가 숨기에는 지나치게 비좁았다. 샘은 서랍 손잡이에 뒷머리를 심하게 부딪쳤고, 사실상 딘은 샘의 한쪽 다리 위에 앉아 있었다. 문 앞에서 발소리가 멈추더니 플래시에서 뿜어 나온 긴 빛줄기가 머리 위에서 이리저리 춤추기 시작했다.

샘은 눈을 들었다. 딘의 손바닥이 코앞에 멈춰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자신의 숨결이 딘의 손가락을 휘어 감는 장면을 상상했다. 자신의 입술이 뱉어낸 덥고 축축한 공기가 딘의 손바닥을 깃털처럼 가볍게 간질이다가 거친 마디가 박힌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 소용돌이처럼 둥그렇게 휘며 손가락 사이의 빈틈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아마도 딘은 이 모든 과정을 자신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샘은 눈을 떴다. 자신의 것인지 딘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숨소리가 별안간 거칠어졌다. 두 개의 숨소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림노래를 부르더니 어느 순간부터 입맞춰 합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멍하니 딘을 바라보았다. 그의 형은 몸을 측면으로 살짝 기울인 채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수 있는 자세로 웅크리고 앉아 뒤쪽에서 일어나는 일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온 몸의 감각을 곤두세운 모습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 밉살스런 적수를 앞에 둔 고양이를 연상시켜서, 등위로 부드러운 털이 빳빳하게 일어서 있다는 착각마저 일 정도였다.

샘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보이지 않는 손가락을 내밀어 유혹하듯 살짝 벌려진 딘의 입술을 건드려 보았다. 낮에 딘의 등과 맞닿았던 가슴에, 그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던 어깨에 아찔한 기운이 스멀거리며 퍼져나갔다. 손가락을 움직여 붉고 도톰한 곡선을 따라 조심스레 쓸었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입술에 닿았던 그 느낌을 떠올리면서. 딘의 입술은 따뜻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그는 손가락 끝에서 불꽃이 터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뇌가 흐물거렸다. 잔뜩 긴장한 채 바닥을 짚고 몸을 지탱하고 있는 자신의 진짜 두 손이 바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손끝에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감촉에 좀 더 대담해진 샘은 점차 아래로 이어지는 강인한 얼굴선을 천천히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염자국이 까칠한 동그란 턱을 지나 푸른 힘줄이 살포시 도드라진 목을 스치니 손가락 아래서 자그마한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아래로, 계속해서 아래쪽으로. 샘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기꺼이 복종했다. 살짝 소름이 돋아 있는 양쪽 쇄골을 한 번씩 어루만지고 살며시 두드려보고 오랫동안 희롱한 뒤에 목이 늘어진 티셔츠를 조금만 헤치고 들어가면, 그 밑에는 윈체스터 형제의 표식인 문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샘은 앞으로 일평생 시력을 잃는다 해도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검은색 문양의 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마치 혀를 굴려 그 맛을 음미하듯 피부 위로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문질렀다. 이 세상에 단 둘, 오직 우리들만의 것.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 그날 오랜 수소문 끝에 찾아간 예쁘장한 오컬트 문신전문가 아가씨의 뭉툭한 바늘이 아쉬운 듯 마지막 흔적을 남기고 머뭇거리며 그들의 피부를 떠난 이래 이 세상에서 오로지 샘만이, 딘의 동생인 그만이 외치고 주장할 수 있는 것.

아니, 틀렸다.

문득 샘은 깨달았다.

지옥개에게 갈가리 찢긴 딘의 몸뚱이는 이미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였다. 지금 그의 형이 입고 있는 육신은 세포 하나하나, 신경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그가 본 적 없는 천사의 작품이었다. 딘의 피부를 빼곡히 뒤덮고 있던 수많은 상흔과 흉터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 어두운 색의 셔츠 아래 숨어 있는, 샘에게서 10대 계집애같다는 수치스러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어느 날부터 갑자기 노출을 꺼려하던 딘의 몸은 흠집 하나 없는 100퍼센트 신품이었다. 아무 자국도 남지 않았고, 아무 것도 새겨지지 않았다. 오직 천사의 손자국뿐이었다.

천사는 딘에게서 윈체스터 형제의 증표를 앗아가고 그 대신 자신의 낙인을 남겼다. 이제 딘의 육신은 마지막 터럭 하나, 티끌 하나까지 온전히 천사의 것이었다. 그는 이 지상에서 숨을 쉬는 한 영원히 천사에게 속한 몸이었다.

순간, 샘은 미칠 듯한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샘.”
귓전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에 샘은 불현듯 현실로 돌아왔다. 딘이 거리낌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플래시 불빛과 묵직한 발소리는 한참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어둠 속에서 한참 동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 쪽도 시선을 떼려 하지 않았다. 샘은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질투와 분노와, 갈망이었다. 샘은 딘이 어떤 표정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애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샘이 몸을 기울이고 두 사람의 입술이 가까스로 스칠 뻔한 순간, 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경련이 일어 후들거리는 다리를 안간힘을 다해 똑바로 세우고는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대외용 미소를 얼굴 가득 지어 보였다.
“저런 뚱땡이 경비원한테 걸릴 뻔하다니, 나 없다고 너무 게으름 피운 거 아냐? 너 내일부터 당장 지옥훈련이다, 오케이?”  

겁쟁이.

캐비닛을 향해 발을 옮기는 형의 등을 바라보며 샘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잔뜩 힘이 들어간 양손을 가슴 앞에 올리고 손가락을 꿈틀거려 보았다. 그리곤 자신의 두 손을 모아쥐고 그 손가락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그것들은 여전히 어딘가에 맞닿아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다시는 잃을 수 없는 소중한 것에.

마침내 딘의 닦달에 정신을 차린 샘이 컴퓨터 앞에 앉아 한창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무렵 평소와는 달리 농담 한 마디 없이 서류뒤지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던 딘이 조그맣게 탄성의 소리를 내질렀다.
“찾았다!”
“나도.”
샘이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꾸했다.
“우리 생각이 맞았어.”

“허.”
“허.”
원하던 것을 찾아내 종이를 팔랑거리며 넘기던 딘과 가운데손가락으로 페이지다운 버튼을 쉴새 없이 눌러대던 샘이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딘이 사냥감을 발견한 음흉한 늑대마냥 커다랗게 히죽 웃었다.

“안녕, 미치.”

– 계속

+++

……윽, 내가 써 놓고도 답답해 죽겠다. 

_M#]

[SuPerNatural] Return (3)

….우와, 저 달리는군요. 놀라워라.
오늘은 별거 없어요. ^^*
끊임없는 대화, 대화만이 있을 뿐. -_-;;;
그건 그렇고 글을 어디서 끊어 올려야할지 잘 모르겠군요, 끙.



[#M_ [SPN] Return (3) | less.. |다음날 샘이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햇빛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입에 칫솔을 문 채 그의 침대 옆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아 있는 딘의 얼굴이었다. 딘은 칫솔을 쥔 손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샘의 얼굴을 멀거니 응시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샘이 후다닥 몸을 일으키고 뭔가를 묻듯 눈썹을 치켜 올리자 딘이 손바닥을 보이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우갸바쟈구릉.”

“뭐?”
샘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묻자 딘이 욕실로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공주님 아니랄까봐 잘도 잔다고.”
딘의 턱에 치약거품이 묻어 있었다.
“누가 보면 죽은 줄 알겠다. 밤새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샘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딘은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했는지 능글맞게 웃었다.
“나 몰래 밤마다 혼자서 여자라도 만나고 다니는 거면 저승구경 한번 거하게 하게 될 줄 알아라, 새미.”

여느 때와 다름없는 가벼운 농담 속에서 무언가 싸늘한 기운이 피부를 날카롭게 훑고 지나간 듯 느껴진 것은 아마도 샘의 죄책감 때문일 터다. 샘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한 채 최대한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시트를 확 젖히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침부터 여자타령이야?”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는 최상의 방법이지. 현실은 새스콰치도 울고 갈만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바보 동생밖에 없지만.”

딘이 피식 웃더니 샘에게 수건을 집어 던졌다.
“빨리 그 털북숭이 몸뚱이에 물이나 묻히고 나와. 오늘은 할 일이 많다고.”

***

숀 브래들리는 매우 평범한 중산층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갈색 머리에 온화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 현관문을 열었다.

“뭘 수사하고 계시다고요?”
“고등학교 육상부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죽은 사건에 대해서 조사 중입니다. 부검 결과 심장마비라는 결론을 얻긴 했지만 우연이라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어서요. 마약이라든가, 혹은 다른 원인이 있지나 않은지 다른 학생들에게서 정보를 모으고 있죠.”
“우리 숀은 약 같은 건 안 해요!”
샘의 말에 브래들리 부인이 자지러지듯 소리쳤다.
“아, 그럼요. 물론이죠. 당연합니다. 누가 뭐래요. 그저 아이들과 잠깐만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라니까요.”
딘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숀은 집에 있나요?”
“네, 위층에요.”

딘은 샘을 돌아보았다.
“내가 숀과 이야기를 해 볼 테니 넌 엄마랑 같이 있어.”
샘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이내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딘은 계단을 올라가며 버릇처럼 EMF 측정기를 꺼내들었다. 집안 전체에서 눈에 띄게 강한 기운이 포착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수치는 편의점보다 낮았다. 흥미로운 것은 전파가 한 군데 집중되어 있기보다 집안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 집은 터무니없는 자리에 세워져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딘은 기기를 주머니 안에 집어넣고 방문을 두드렸다.
“숀 브래들리?”

학교 운동장에서 본 모랫빛 머리칼의 소년이 문을 열었다.
“네?”
“경찰서에서 나왔다. 내 이름은…”
“내 잘못이 아니에요.”
“뭐?”
신분증을 찾아 주머니를 뒤지던 딘이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요.”
숀의 하늘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해요. 진짜로요. 하지만 제 잘못은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 것뿐이라고요.”
“어이어이어이, 이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딘이 미간을 찌푸린 채 숀을 바라보았다.
“그런 일이 뭔데?”

숀이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그 일 때문에 오신 게 아니에요?”


샘은 브래들리 부인이 권하는 대로 소파에 앉아 찻잔을 집어 들고 거실을 둘러보았다.
“아늑한 집이군요.”
“고맙습니다. 얼마 전에야 겨우 사람 사는 집 같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숀이 전학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한 반년 쯤 전에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답니다.”
브래들리 부인이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했나요?”
“네.”
“세상에나, 그렇게 어린 애들이.”
브래들리 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시아주버님도 얼마 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답니다. 요즘엔 운동부족이니 뭐니 해서 젊은 나이에도 그렇게 가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아, 물론 육상부 아이들은 운동부족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요.”
브래들리 부인이 재빨리 덧붙였다.

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벽난로 위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액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평범한 가정집을 방문할 때마다 그런 사진들을 살펴보는 게 좋았다. 언젠가 자신이 자라 가정을 꾸리면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진들로 채워 넣을 거라고 다짐한 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는 늘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원했다.

“제 남편이에요.”
샘의 시선을 눈치 챈 브래들리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검은 머리에 어딘가 호방해 뵈는 중년 남성과 어린 숀, 그리고 브래들리 부인이 공원에서 환히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숀이 열두 살 때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고 말았죠.”
“유감입니다.”
샘은 찻잔으로 시선을 내리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남편은 숀을 참 많이 사랑했어요.”
브래들리 부인이 꿈을 꾸는 듯한 말투로 회상했다. 그녀에게는 어딘가 소녀 같은 기미가 남아 있었다.
“그이가 죽은 뒤엔 아주버님이 숀을 아들처럼 보살펴주셨죠. 자식이 없었거든요.”
브래들리 부인이 찻잔을 입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어째서 하느님은 그렇게 착한 사람들을 빨리 불러들이시는 걸까요.”

…..가끔은 그들을 다시 내려 보내기도 한답니다, 부인.

브래들리 부인은 샘의 질문에 대해 거침없이 대답해 주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거워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최근 높이뛰기 기록을 눈부신 속도로 갱신하고 있는 숀이 무척 자랑스러운지 얼마 후에 열릴 주 대항 경기에 대해서도 시간을 들여 열띤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한참 뒤,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샘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딘이 껑충거리며 2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야기는 다 했어?”
“어.”
딘은 찻잔 옆에 놓인 초콜릿 쿠키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그만 가자.”

막 현관문을 나서던 딘은 문득 생각난 듯 몸을 돌리더니 브래들리 부인에게 지나가듯 가벼운 말투로 물었다.
“아, 혹시 미치가 누군지 아십니까, 부인?”
“누구요?”
“미치요. 혹시 어렸을 적 숀에게 그런 이름의 친구가 있었나요?”
“아.”
브래들리 부인의 얼굴에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미치는 숀의 상상친구였어요.”
“상상…..뭐요?”
“상상친구요. 어린 아이들이 상상으로 지어낸 친구들 있잖아요. 같이 소꿉장난을 한다든가 그릇을 깨놓고 자기 잘못을 뒤집어씌운다거나 할 때 아주 편리한 존재죠.”
브래들리 부인은 숀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는지 장난스레 웃었다.
“숀은 미치가 정말로 있다고 우겨대곤 했죠.”

형제는 의미심장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미치에 대해선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문 뒤에서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샘이 물었다.
“숀의 책상 위에 오래된 그림책이 하나 있더라고. 닥터수스의 ”초록색 달걀과 햄“이었는데, 야, 너 기억 나냐? 너도 그 책 무지 좋아했다? 처음엔 날마다 수십 번씩 읽어달라고 조르더니 나중에는 내가 만들어준 멋진 달걀후라이에 초록색 물감까지 쳐 부어서 한동안 달걀 소리만 들어도 토할 거 같았어. 우웩.”
딘이 헛구역질 흉내를 냈다.
“딘.”
샘이 으르렁거리며 경고했다.

“여하튼 완전 더럽고 막 찢어지고 그런 수준이었는데, 열다섯 살짜리 사내자식이 어린애 그림책을 갖고 있으니 좀 웃기잖냐. 그래서 들고 한번 훑어보는데 숀이 아주 경기를 일으키면서 다시 뺏어가더라고.”
딘이 딱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튕겼다.
“표지 안쪽에 어린애 글씨로 미치라는 이름이 적혀 있더군. 그림책 페티쉬라도 있냐고 물어보니까 애가 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더라.”
“그야 당연하지.”
샘이 한숨을 내쉬며 재킷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었다.

“그건 그렇고 그거 알아?”
“뭘?”
“편의점 주인이 죽기 전에 붙잡은 도둑 말이야.”
딘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웃었다.
“숀이야.”
“헤.”
샘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경찰이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새파랗게 질려서는 털어놓더라고. 처음엔 뭔 소린가 했지만.”

“그러니까 죽은 세 사람이 모두 숀과….우헉!”
아무 생각 없이 딘을 쫓아가던 샘의 발이 튀어나온 보도블럭에 걸렸다. 샘의 긴 다리가 휘청거리더니 팔을 허우적거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앞쪽으로 기울어졌다.

“컥!”
딘이 숨 막히는 소리를 내질렀다. 샘은 자신의 몸이 마치 딘을 뒤에서 덮치는 자세로 딘의 등 뒤에 얹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샘의 턱이 딘의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딘의 목덜미가 뺨을 간지럽혔다. 순간적으로 샘의 심장이 멎었다.

“…..넌 걸음마도 못하냐.”
가까스로 보도와 박치기를 면한 딘이 보기 흉하게 기우뚱한 자세로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는 굳이 고개를 돌리는 수고도 하지 않았다.
“이건 명실상부 살인미수야.”
“미안.”
샘은 서둘러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번에도 운동화를 잃어버리거나 하면 너한테 여자 가슴이 달렸다고 로드하우스에 대자보를 써 붙일 거다, 샘.”
딘이 씩씩거리며 임팔라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알아보기 힘든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샘은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질렀다. 티셔츠 아래 느껴지던 체온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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